10여년전 처음 베트남 땅을 밟았을 때 이름도 생소한 호치민시 탄손낫 공항은 10월말경인데도 불구하고 구름 한 점 없이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순간 한국의 고추, 마늘 등과는 다른 베트남 특유의 냄새가 코를 강하게 자극하니 이곳이 외국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거리는 생각보다 복잡했고 뿌연 먼지(스모그 같은)와 함께 그야말로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인력거(Cyclo) 등 움직이는 모두가 하나가 돼 쉴새없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거리의 시장통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한국의 깨끗한 도로와 가로수, 그리고 맑은 공기, 소리 없이 질주하는 테헤란로의 수많은 자동차들, 잘 정돈된 보도블록, 그것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베트남에 대한 매끄럽지 못한 첫 인상을 가지고 시작한 생활이 어느 덧 긴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이들의 문화와 관습과 습관, 생활 등 스스로 모든 면에서 무리 없이 동화돼 그들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같이 살을 부딪치면서 희로애락을 공유하게 됐다.

‘禮’중요시…자부심 높아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베트남에서 제조업을 고집하며 시작한지 벌써 십여년이 흐른 지금 뒤를 돌아보니 회한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래도 이렇게 베트남의 문화에 관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 내 경험에 비춰 베트남의 전통과 관습 등 이모저모를 여러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회에는 우선 다른 동남아 국가와는 다소 다른 베트남의 문화적 기반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베트남은 다른 여타의 동남아 국가와는 달리 예를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특히 불교와 유교를 바탕으로 한 오랜 문명국으로서 자부심은 우리와 매우 비슷한 문화와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로는 베트남도 우리와 비슷하게 중국 유교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교적 전통을 많은 부분에서 서로 이해하며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베트남의 유교문화는 종교적 의미로서의 유교가 아니라 이들이 살아가는 생활과 행동 그리고 기본 윤리의식의 행동지침으로서의 유교로 지금까지 그 명맥이 뿌리 깊게 유지되고 계승돼 오면서 베트남인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교사상 탓 교육열 대단해
베트남에 유교가 전래된 것은 약 15세기 지금의 수도인 하노이(Ha Noi)에 국가기반을 둔 레(Le) 왕조 시기로 레(Le) 왕조가 국가 통치의 안전성을 꾀하기 위해 각 지방세력들을 유교적 인의예지, 충효사상으로 묶어 두는데 주안점을 뒀기 때문이다.
유교의 위계적 계층체계는 물론 베트남 고유의 전통으로 인해 완벽한 중국식 유교체제가 뿌리내린 것은 아닌 듯 하다. 시간의 흐름으로 베트남 고유의 전통과 중국의 유교가 서로 결합돼 중국식 유교와는 달리 베트남인들에게 맞는 맞춤형으로 변형된 유교라 해야 할 것이다.
교통수단이 현재처럼 발달하지 않은 이 시기에 왕의 세력과 통치하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과거에서 쓴 잔을 마신 뒤 낙향한 유생들이나 퇴역관료들에 의해 그 사상이 전파됐다. 이후 베트남 중부지방의 고도인 훼(Hue,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지방을 국가기반으로 북쪽의 레 (Le)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 성립된 웽(Nguyen) 왕조시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유교적 통지체제와 유교문화가 가일층 강하게 자리잡게 됐다.
이런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과거제도로 인해 입신양명을 토대로 형성된 유교적 교육이 널리 자리를 잡게 됐다.
오늘날 베트남 사람의 향학열은 정말로 대단하며 이렇게 지속되는 학구열은 또한 이러한 유교적 전통에서 온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다음 회에는 베트남의 지정학적 위치와 국민을 구성하고 있는 인종적 특성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정 석 진
Continental Corporatio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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