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가 사라진 썰렁한 서해안 잿빛바다.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만 백사장이고 그 외에는 질퍽한 갯벌만이 황량하게 펼쳐지는 바다. 한해의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는 이즈음 남보다 일찍 서해를 찾은 것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낙조’에 핑계거리를 만들었다. 수많은 서해안 해변에서도 남녘의 영광의 백수해안 도로를 선택한 것은 아직도 그곳엔 늦가을의 햇살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전남 영광에는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에 맞춰 새롭게 조성된 ‘백수 해안드라이브’길이 있다. 이 해안길이 생기고 나서는 영광여행이 한층 즐거워진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금방이라도 바닷물이 넘실거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구불구불 아름다운 해안 길을 만들었다.
해안 길은 길용리 원불교 성지에서 홍곡거리 해안을 끼고 장장 19km나 이어진다. 홍곡-길용리-법성포를 잇는 반대 순서로 찾아도 상관없다. 백수 해안 길은 생긴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영화 마파도(동백마을) 촬영지로 알려진 이후 발 빠르게 소문이 나서 평일에도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들 정도가 됐다.
국내에서 손꼽을 수 있는 아름다운 해안드라이브 길. 바다너머, 법성포구가 차창 밖으로 비껴가고 이내 백제 불교 도래지 기념관 진행된 모습도 엿보인다. 그저 숨 가쁘지 않게 천천히 차를 움직이면 된다.
가는 길 초입에 만나는 모래미 해수욕장. 백수읍 삼두구미(三頭九尾)의 하나인 구수리 구시미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서의 모래찜질은 신경통에 크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붉게 익은 해당화 열매길이 30리
해안 길에는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의 일곱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옛사람들은 이 섬들을 조합해 ‘칠뫼’라는 이름을 붙였다. 칠산바다는 법성포 앞바다를 거쳐 전북의 위도와 곰소만, 고군산반도의 비안도까지 이어진다. 이름조차 고독해 보이는 자그마한 ‘고두섬’은 도로 가까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이 계절, 백수 해안 길에서 눈길을 잡아끄는 붉은 열매가 있다. 해안 길을 따라 30리 이어지는 해당화 길. 여름철, 분홍 잎을 피워내 새악시처럼 수줍게 꽃잎을 떨구던 해당화가 열매를 맺어 씨앗을 산출하기 위한 막바지 힘을 쏟고 있다. 붉디붉은 열매는 대부분 추위에 ‘입술 주름’을 만들었지만 아직도 성성하게 제 색을 띠며 남녘의 바다 햇살을 받으며 해맑게 미소 짓고 있는 열매도 남아 있다.
아직도 꽃잎이 남아 있는 억새꽃이 휘어진 도로변에 바람결에 하늘거리며 은빛으로 출렁거릴 때 바다까지도 지는 햇살에 일렁거린다. 잠시 몽롱한 현기증이 난다. 그외 진주 정씨 가문의 열부들은 왜군의 수모를 피하기 위해 바다에 투신, 정절을 지켜냈다는 정유재란 열부순절지라는 유적(도지정 지방 기념물 제 23호)지도 만나고 해안 길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는 서너 곳의 전망대도 있다. 모두들 지는 해를 잘 볼 수 있는 장소에 세워놓은 조형물이다.

소금창고와 두우리 해변에서 굴 따기
가는 길목에서 석구미 전통 해수찜(061-352-6944)이라는 팻말을 따라 호기심에 내려가 본다. 좁은 마을길을 지나 바닷가 옆에 자리 잡은 민가 한 채. 집 앞에는 가운데가 움푹 팬 해변 바위가 전통 해수찜 했던 자리. 봄, 가을철이 아니고서는 이용할 수 없는데 약 2백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 시대 사람들도 이 돌 탕에 앉아 해수찜을 즐겼을 터. 밭에 가야 한다는 아낙을 보내고 무화과 열매를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다시 도로변으로 나와 염산면 소금창고를 찾는다.
염산면은 이름에서도 ‘소금 향내’가 난다. 이곳에는 아직도 천일염을 만드는 염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미 소금 채취 작업은 끝이 났고 김장철을 맞이해 창고에 쌓아 두었던 소금양도 많이 줄어들었다는 주민의 말을 듣는다. 이제는 잊혀져 가는 옛 모습의 소금창고는 그들에겐 생업이지만 여행객들에게는 향수를 안겨준다. 너덜너덜 기운 듯한 천막 같은 소금창고 벽면마다 ‘소금 판매’라는 글자와 함께 전화번호가 서투른 글자로 새겨져 있다. 초록빛이 성성한 파밭이 펼쳐지고 갈대, 억새가 그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해주고 있다. 푸름에 취해 잠시 해빙기 봄을 맞이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 외에도 염산면에서는 두우리 해변을 만날 수 있다. 여름철 갯벌 체험장이라는 팻말이 있지만 지금은 유명무실. 물이 빠지면 인근 주민들 몇몇이 나와 돌에 다닥다닥 붙은 굴을 따는 곳이다. 날씨가 차가워져야 살이 통통하게 여무는 것이 굴이다. 굴 따는 아낙들의 부산한 손놀림을 뒤로 한 채 한적한 해변에서 따뜻한 햇살에 취한 듯한 갈매기 한 쌍에 시선이 고정된다.

싱싱한 어시장과 백하젓 생산지 설도포구
두우리를 비껴 염산면으로 들어서면 멀지 않은 곳에 설도포구를 만나게 된다. 물때에 맞춰 포구 앞을 찾아드는 머구리배들. 오래전에는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는 일시적으로 파시가 생겼는데 지금은 즉석 회를 파는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그날그날 배가 들어와서 잡아온 물고기는 큰 그릇에 담겨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이 포구에서는 작은 새우가 많이 잡혀 오래전부터 젓갈을 담았다. 하얀 새우라는 이름이 붙어 ‘백하젓’이라고 한다. 몇 집 젓갈 매장이 있으며 그 외에는 직접 담가 파는 난전도 있다. 군에서는 국산이 아니고서는 취급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 유일하게 국내산 젓갈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청정해역에서 잡은 살찐 새우와 빛깔 고운 천일염인 염산소금이 빚어낸 설도 육젓. 이제는 젓갈축제를 열 정도지만 아직까지는 외지인들의 손길이 많지는 않다.
무엇보다 포구의 아름다움은 도로 변 너머에 있는 갈대밭이다. 소문나지 않아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은 갈대밭은 광활하다. 바람에 흔들거리며 하염없이 고갯짓하고 있다. 한해가 흘러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고개를 도리질 치는 듯 보이는 것은 순전히 객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곳도 들러보세요 - 법성포 굴비와 백제 불교 도래지 기념관 외

영광 법성포는 굴비의 원산지. 전 지역에서 굴비를 꿰어 말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법성포 뒤켠 산 중턱에는 느티나무 군락지가 있으며 언덕길을 오르면 법성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그 외 백제 불교 도래지 기념관이 있는데 미완공 상태다. 그 외 가마미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해안드라이브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계마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길에서 맞이하는 낙조도 근사하다. 그리고 천년고찰 불갑사도 영광군 관할이다.

■대중교통 : 서울 및 광주, 목포, 전주에서 고속버스와 직행버스를 이용해서 영광까지 간다. 영광직행터미널에서 백수 대신리행 이용.
■자가운전 : 서해안고속도로-영광나들목-영광 방향 23번 국도-영광읍-백수 방면 844번 지방도로(3.5km)-만곡에서 우측 군도로 진입-천정저수지-원불교성지-모래미에서 77번 국도 이용-봉남-염산면. 염산면을 중점으로 찾는다면 설도포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별미집과 숙박 : 백수해안 길에는 간간히 횟집이 있다. 그 외에는 법성포구에서 굴비백반을 맛보는 것이 좋다. 법성포구에 있는 일번지 식당(061-356-2268)은 소문난 맛집이다. 보통 4인기준. 대신 읍내 새마을 금고 뒤켠에 숨어 있는 백재식당(061-356-2268)은 1인분의 백반을 내주는 곳이다. 그 외 만나 식당은 탕종류가 배에서 직접 가져온 싱싱한 해물을 넉넉하게 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는 설도포구의 설도횟집(061-352-8696)이나 포장마차에서 즉석 회를 즐겨도 좋다. 숙박은 백수 고두섬 주변에 숙박지가 있으며 그 외에는 영광읍내나 법성포구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읍내에는 신라호텔(061-353-3333)과 관광호텔 아리아(061-352-7676)등이 있으며 염산면에는 모텔 한곳 뿐 임을 참조할 것.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