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주)엠아이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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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주)엠아이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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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2.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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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정왕동 시화공단에 자리잡은 (주)엠아이텍. 본사가 있는 제2공장 입구에 들어서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지게차가 눈에 띈다. 포장된 제품을 컨테이너로 열심히 실어나르고 있다.
건너편 창고에선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이 회사의 주력제품인 ‘알루미늄 휠’이다. 이것은 자동차 바퀴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겉표면은 반들반들한 게 마치 쇼윈도에 진열된 고급 스텐레스 스푼의 표면 같기도 하고 잘 닦인 거울 같기도 하다.
이처럼 이 회사의 제품이 일반 알루미늄 휠과 확연히 구별되는 이유는 휠에다 특수 크롬도금을 했기 때문이다. 크롬도금 휠은 일반 휠보다 휠씬 크고 가격도 두배나 된다.
이 회사는 이 제품으로 지난해 290억원의 매출(경상이익 48억원)을 올렸고 이중 94%(약 275억원)가 수출이었다. 올해는 이미 상반기에만 1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98년부터 수출을 시작해 5년만에 일궈낸 값진 성과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매출실적이 자체브랜드로 달성됐다는 점이다. 이 회사의 제품중엔 OEM방식으로 생산된 것이 하나도 없다. 자체브랜드명 ‘엠케이더블유(MKW)’와 ‘바조(BAZO)’는 미국 자동차부품시장에서도 알아준다.

OEM제품 하나도 없어
엠아이텍 대표인 김성진사장(54)은 명지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73년부터 6년간 금호실업(주) 일본 동경지사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82년 석진교역(주)이란 무역회사를 차렸다. 12년간 무역업에서 신뢰를 쌓은 덕에 일본 자동차부품업체인 포프(Porf)사와 합작으로 94년 (주)미진정공(현 엠아이텍)이란 자동차 머플러 제조회사를 설립했다.
미진정공은 포프사에 머플러를 납품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95년 일본 불황과 포프사도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미진정공은 제품도 생산해보지 못하고 막을 내려야할 위기가 찾아왔다. 특히, 97년 찾아온 IMF사태는 김사장을 벼랑끝으로 몰아갔다.
김사장의 무역회사 석진교역이 당시 해외에서 외상(Usance)으로 물건을 잔뜩 납품받은데다 새로 설립한 미진정공도 대부분 외채로 설비투자를 한 상태였는데 환율이 두배 이상 뛰면서 빚더미에 나앉게 된 것이다. 김사장은 은행의 빚독촉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결국 김사장은 무역회사를 접고 집을 팔고 국민연금을 해약하는 등 빚을 정리했다. 빚정리를 위해 4∼5억원의 사채까지 끌어다 써야 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수출이다. 그는 “환율이 올랐으니 살 수 있는 길은 수출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합작회사인 포프사 대표들을 만나 “판로가 없으니 미진정공이 직접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겠다”는 양해를 구했다.

애프터마켓을 잡아라
이때부터 김사장은 일반소비자(자차운전자)들을 타겟으로 하는 애프터마켓에 본격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크롬도금 알루미늄 휠’이다.
크롬도금 알루미늄 휠은 당시 미국에서 주로 생산되던 제품으로 세계적으로 그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살게 되면 외모에 신경을 쓰듯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잘사는 사람, 잘사는 나라일수록 최고급 휠인 ‘크롬도금 휠’을 사용하게 된다.
게다가 크롬도금 휠은 그 성질상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알루미늄에 크롬을 입히려면 꼼꼼한 사람의 수작업과 특수화학처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대규모 시설을 갖춘 대기업에서 이를 생산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 김사장은 이것을 노렸다.
그러나 문제는 크롬도금 기술이 매우 까다로워 당시로선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만 생산되고 있었다.
그러나 김사장은 수년간 연구개발과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제품을 만들어 98년 자체브랜드 ‘엠케이더블유(MKW)’와 ‘바조(BAZO)’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수출길을 텄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자동차쇼인 라스베가스 새마(SEMA) 박람회에 참가했다. 경기도에서 지역중소기업을 위해 공동으로 설치한 부스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처음엔 미국사람들이 믿지 않으려 했습니다. 크롬도금 기술은 자기네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품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혹시 하자는 없는지 그리고 사후보장은 되는지’의심스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김사장은 “이들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더욱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제품을 만들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납기를 지켰다”고 한다.
그는 보다 쉬운 판로인 OEM(주문자상표 생산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자사브랜드를 고집하며 소비자들을 기다렸다.
“OEM제품은 내 물건이 아니라 바이어의 물건입니다. 내가 스스로 시장을 개척할 수 없고 언제나 거래처에 의해 좌우될 뿐이죠. 기업이 영구히 성장하려면 반드시 자기브랜드를 가져야 합니다.”

인내심 갖고 고객 기다려라
이런 그의 고집 때문인지 3년전부터 이 회사의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99년 33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이듬해 2000년 67억원으로, 다시 2001년엔 200억원, 지난해엔 290억원으로 늘었다.
특히 그는 3년전 미국의 한 바이어로부터 “엠아이텍은 반품이 거의 없지만 미국제품은 20∼30%이 반품이라 불만이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에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론 우리제품도 경쟁력이 없으면 언제든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도 뼈져리게 느꼈다”고 했다.
최근 들어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엠아이텍을 비롯한 후발업체들의 추격에 가격경쟁력을 잃고 중국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김사장은 이에 대비, 지난해초 중국 산동성에 5천평 규모의 공장 건립을 시작, 지난해말 공장을 완공했다. 현재 약 500백명의 직원을 채용, 공장가동을 80%까지 정상화시켰다.
중국공장 준공을 통해 가격경쟁력은 어느 정도 해결된 셈이다.
김사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모든 것이 경영자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한순간이라도 마음을 딴 데 두는 순간 회사는 무너진다”면서 “갓 창업한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정신을 쏟는 것처럼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양옥석기자
yangok@kfs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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