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금까지 매년 연초에 중소기업을 위한 특별정책과제를 발표하고 행정력을 동원하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왔다. 재작년에는 중소기업 위기요인 해소방안, 작년에는 혁신중소기업 육성 12대 정책과제가 눈길을 끌었다.
해가 갈수록 더 구체적이고 각론화된 세부사항으로 발전해야 할텐데 금년에는 반대로 뭉뚱그리는 양상이다. 양극화문제를 확대하여 이슈화하는 바람에 중소기업문제는 상대적으로 격하된 감이 있다.

물론 양극화 자체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초점을 잃지 말고 문제의 본질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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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양극화에 대한 지나친 확대해석은 삼가야 한다. 어려운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장바구니를 얼마나 채울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선진국에서도 집 앞에 좌판을 벌여놓거나 주말마다 벼룩시장에서 떨고 서있는 초라한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은 양극화를 확대하여 논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지어 교육, 문화, 스포츠까지 확대하여 양극화문제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확대하면 정작 생계에 시달리는 소시민과 소기업들의 애로가 희석될 수 있다.
둘째, 양극화 해소라는 명분을 위해 정부가 지나친 힘을 행사하면 안된다. “정부는 국민이 필요로 하는, 그러나 국민 각자가 혼자 힘으로 전혀 할 수 없거나 잘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아브라함 링컨의 이 말은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에 관한 명언이다. 최악의 양극화는 바로 권력의 양극화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작년말 이후로 경기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으니 “이제는 분배”라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는듯 하다. 그것은 성급한 속단일 수 있으며, 더 중요한 문제는 계량적 경제지표 몇 가지에만 의존하는 오류이다. 질적 차이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외형적 규모만 보는 사람들은 중소기업을 “작은 기업”이라고 쉽게 정의한다. 그래서 중소기업을 동정하는 시선도 있고 반대로 “중소기업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역시 유산 자본가계급이고 살만한 사람들”이라는 식의 2중적 시선까지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작다는 특징보다 “외롭고 고독하다”는 것이 더 중요한 특징이다.

너희가 중소기업을 아느냐

중소기업 사장은 혼자서 책임을 부담하고 현장에서 작업까지 한다. 외부와의 연결 채널은 단순 취약하다. 매출대금 회수조차 불확실하다. 기술, 노하우 등 자기개발 기회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각종 지원 프로그램이 제공되지만 수백만 업체들의 문전에는 도달하지 않는다. ILO/UNDP의 한 연구보고서(2000)를 보면, 창업 전후의 중소기업들에게 제공되는 컨설팅 서비스의 품질은 극히 저수준이며 그나마 그런 컨설팅이라도 받는 업체는 5% 미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소상공인지원센터는 연간 30만건의 상담실적을 올리지만, 예비창업자 및 중복상담을 제외하면 상담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업자가 90% 이상이 된다. 그들은 음지에 살면서 어떤 정부시책도 그저 강건너 불처럼 막연하게 본다. 도와주겠다고 해도 움추려들만큼 중소기업들은 위축되어 있다.
기업인의 소극적 자세와 인식부족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관료적 절차, 유관기관들의 무성의, 불신, 정보문맹 등 외적 요인이 더 크다.

현대는 읽고 쓰기를 못하는 문맹은 거의 사라졌으나 새로운 종류의 정보문맹이 폭증하고 있다. 요즘 정부가 맞춤형 정책정보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정보홍수 속에서 정보에 목말라 죽는 세상임을 고려해야 한다. 해결할 문제가 무엇인지, 필요한 정보가 어떤 것인지, 그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찾았어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답답한 ‘정보 리터러시(information literacy)의 음지(陰地)’가 있다. 여기에 비하면 교육, 문화, 스포츠의 양극화는 어쩌면 좀 사치스러운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이 재 관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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