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맛의 굴과 참조개구이, 맑은 바다와 멋진 집이 있는 곳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만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가고 싶은 대로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 더 행복할 수가 있다. 딱히 목적 없이 찾은 곳이 거제도다. 봄철 화사한 꽃이 피어날 때가 늘 기억되는 거제도지만 한갓진 2월의 거제 바닷가도 행복할 정도로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둔덕을 거쳐 홍포-망산-여차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 길에서 낙조를 보고 해금강 등 유명여행지를 주만간산으로 찾다가 거제도 여행에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장목항과 칠천도에 대한 정보를 주민에게 얻어 듣고 그곳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거제도 여행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곧추 시내로 향하지 않는다. 구 거제대교를 건너 둔덕방면으로 가면서 바닷가 드라이브를 즐기고, 청마 생가나 인근하고 있는 폐왕성을 찾고 이 길목에서 만나는 겨울별미인 굴 구이를 기억해 두면 된다. 그리고 구조라-신선대-해금강을 들렀다가 여차-망산길을 잇는 까마귀 고갯길에 차를 멈춰 서서 다포도, 소다포도, 대병태도, 소병태도, 가왕도, 어유도, 매물도, 등가도의 섬들에게 눈인사를 보내면 된다.

홍포항의 낙조와 해금강의 일출

이내 홍포항으로 오는 길목에서 멋진 낙조를 바라보면, 최상의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담아낸 것이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 굴 구이를 먹고 일출을 보려면 해금강 근처에서 민박을 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민박집에서 우여곡절을 겪었고 해금강에서 일출을 보지 못한 채 별 맛 느낄 수 없는 홍합밥으로 조식을 해결하고 천천히 차를 돌려 장목과 칠천도를 향해 떠났다.
학동-구조라-장승포를 거쳐 옥포 쪽으로 가면서, 김영삼 전대통령 생가를 거쳐 장목항에 이르렀다. 거제도를 여러 번 왔지만 이 근처는 처음이니, 나름대로 동선을 짜야 할 상황. 장목에서도 두서너 개 길로 나뉘었는데, 우선 칠천도를 찾아간다.

칠천도는 거제에 딸린 제일 큰 섬이다. 실전과 섬 안 장곶마을을 잇는 길인 4백55m의 칠천교가 2000년 1월1일을 기해 개통됐다.
연육교를 건너면서 본격적으로 섬 일주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된다. 칠천도는 어온마을 바닷가에 따뜻한 우물이 있어 온천도(溫泉島)로 불렸다고도 하며 조선조 영조 3년(1769년)에 칠천도가 됐다.
옻나무가 많고 물이 좋아 칠천도(漆川島)라 불리다 칠천도(七川島)로 바뀌었다고 한다. 고려 현종 3년(1012년)때는 목장을 두었다는 기록도 있다. 3개리에 장곶, 어온, 물안, 대곡, 송포, 황덕, 연구, 곡촌, 금곡, 옥계등 10개 마을이 있다.

옻나무와 온천의 섬, 칠천도

칠천도 어온리 물안마을과 송진포, 실전 사이의 해협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우리나라 수군 유일의 패전으로 기록된 칠천량 해전(1597년 7월14-16일)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이 옥에 갇힌 뒤 삼도수군통제사를 맡은 원균이 거느린 삼도 수군 1백30여척이 영등포(현 구영) 앞바다에서 왜장 가또오가 이끈 6백여 척과 맞서 싸우다 이곳으로 후퇴했으나 12척만을 남기고 궤멸 됐으며 통제사 원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이 전사한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역사의 흔적을 안고 있는 지역이다. 연육교를 건너 장곳마을에 들어서면 길이 양 갈래로 나뉘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나 서로 만나게 돼 있다.

우선 옆개 해수욕장이라는 팻말을 따라 해안 길을 따라 가본다. 금방이라도 바닷물이 도로변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바다와 가까운 길. 가는 동안 너무나 조용하고 맑은 바닷물,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보면서 섬에 서서히 매료되기 시작한다.
물빛 맑은 바닷속에는 고동이 가득. 물이 빠지면 조개도 쉽게 잡을 수 있단다. 한갓지게 배가 오가고, 대교 밑으로 야트막한 섬과 등대가 밋밋한 바다를 아름답게 표현해주고 있다.

섬 한바퀴를 힘겹게 뛰는 사람들, 굴을 까는 할머니, 그리고 껍데기만 가득 모아둔 굴 껍데기 밭 등등. 그저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쉽지만 섬을 나와 장목으로 나오는 길에 장문포 왜성이라는 팻말을 따라 들어가 본다.
정작 입구의 팻말은 이내 사라지고 마을 하나로 길이 끊어진다. 썰렁하게 빈 횟집. 그리고 몇 가구 되지 않은 어촌. 흥미롭게도 메주를 해풍에 말리는 모습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경사도 높은 산간에 흐드러지게 달린 유자들. 차 한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산길 중간에서 발견한 왜성 팻말. 아직까지 복구조차 되지 않은 이 성곽은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란다.

조선 수군 유일의 패전지 칠천량

한산해전 이후 왜군은 거제도와 칠천량 그리고 부산포까지 해안에 축성을 하고 병력을 주둔 시킨 상태. 칠천량 해전이 벌어진 바다는 미로 같은 곳이고, 육지는 일본군이 주둔한 지역이다.
즉 왜군이 야간에 기습한다면 미로 같은 바다, 왜군이 주둔한 육지로 피할 수 없는 그런 바다가 칠천량이었다.
결국 피곤한 조선 수군이 그 바다 위에서 기습을 당해 패전하고, 패전한 원균이 육지로 피신 중 거제도에서 전사 하게 된다. 당시 왜군들이 우리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쌓은 성곽. 이런저런 이야기는 오랜 세월 속에 묻혀 버린 듯 성곽은 허물어진 채 흔적만 남아 있다.

장목읍내에 들어서면 장목진 객사(시도유형문화재 189호)라는 건물을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 거제부 소속 7개 진영중의 하나였던 장목포진의 관아건물이다. 세워진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장목리 동구에 있던 것을 정조 9년(1785)에 이곳으로 다시 옮겨지었다고 한다. 그저 역사는 세월 속으로 묻혀져 가고 있을 뿐, 일부러 찾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오히려 눈길을 끄는 것은 ‘개조개’라는 생경한 단어다. 바닷가 옆의 어판장을 비롯해 판매점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일제시대부터 개조개라 불렀는데, 이름 뉘앙스가 좋지 않아 지금은 참조개로 불린단다. 약간 비린 맛이 느껴지지만 양념을 잘 해 구워 먹으면 나름대로 괜찮은 조개. 멀지 않은 곳에 로망스 촬영지라는 황포(장목면 구영리)가 있고 멀지 않은 구영항에서는 부산행 배가 운행하고 있다.

부산행 배는 농소항구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 이왕 나선 길, 배를 타고 부산으로 발길을 내딛어도 좋을 일이다. 몇 년 뒤 거가(부산-거제도)대교가 생기면 이곳은 몰라보게 변화될 것이다.


■여행 포인트
칠천도에는 칠천도 횟집(055-633-9011)을 비롯해 펜션도 두어 곳 눈에 띈다. 거제도에서 회를 제대로 먹으려면 성포면에 있는 평화횟집(055-632-5124)을 찾으면 된다. 해금강이 있는 갈곶에는 상흔이 심하다. 그중 지역 주민(한전 부인이 소개한 곳)의 이름을 대면 더 잘해줄 해금강천연송 횟집(055-632-6210)이 있다. 송곡굴구이집(055-632-4200)이 굴구이 원조집이다. 숙박은 노자산 자연휴양림, 해금강 호텔이나 바닷가 옆의 운치 있는 펜션이나 민박 등이 관광지 주변으로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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