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9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 제정을 계기로 대·중소기업간 동반자적 협력관계가 공고히 구축된다면 우리 경제 재도약의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협력을 법을 통해서 하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상생(相生)은 글자 뜻 그대로 서로 사는 것을 뜻한다. 그 반대는 상극(相剋)이다. 서로에게 해를 끼쳐 공멸(共滅)함을 뜻한다. 우주의 질서는 상생의 원리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 상생은 우리 삶의 근원이고 방향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국가, 집단, 개인 간에 무수한 상극적인 다툼이 있어 왔다. 그래도 역사를 지배하여 온 것은 선의의 경쟁과 협력이었다. 다시 말해 상생이었다. 그래서 인류는 지속적 발전이 가능했다.

인류사는 수천년 동안 정체의 역사였다. 경제성장의 역사는 산업혁명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산업혁명을 경제사적으로 보면 분업을 통한 보다 철저한 경쟁과 협력의 시작이었다. 보다 발전적 상생 역사의 출발이었다는 것이다.

상생이 역사 발전 원동력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서의 경쟁은 시스템간 경쟁이라고 한다. 경쟁력은 밸류체인(value chain)을 어떻게 구축하는가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고 한다. 다시 말해 어떤 조직이 보다 효율적인 상생협력 시스템을 잘 구축하느냐에 의해 경쟁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네트워크, 클러스터, 파트너십이라는 표현으로 쓰여지기도 한다.

세계는 바야흐로 이념을 넘어 국가간, 지역간의 짝짓기 그리고 기업간, 금융기관간, 학교간, 기업·학교간 치열한 짝짓기 경쟁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상생협력을 통한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이다.

FTA, 지주회사, 프랜차이즈, 학점교류, 산학연 협력, 관계금융(relationship banking), 대·중소기업 협력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중 가장 역사가 깊고 당위성을 가지는 형태가 대·중소기업간 협력이다. 대기업과 협력중소기업은 하나의 시스템이라 볼 수 있다. 때문에 한 대·중소기업과 다른 대·중소기업간의 경쟁을 시스템간 경쟁이라 한다. 따라서 시스템의 어느 한 부분에 결점이 생기면 그 시스템은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의 문제는 이 같은 낙오의 가능성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가 전제돼야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시점에도 대기업들이 환율하락에 따른 손실을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를 통해 협력중소기업에 전가시키고 있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환율이 오를 때는 이익을 독식하였음은 물론이다. 이는 상생협력이 아니라 상극·비협력의 전형이다.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상극·비협력이 시스템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공멸을 초래하고, 결국에는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인하하는 불합리한 거래관계를 집중조사하여 시정조치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서 부끄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자유시장에서의 거래는 공정한 거래를 전제로 한다. 또한 자기가 노력하고 기여한 만큼 보상을 받는 공정한 배분을 규율로 한다. 이 같은 시장준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자유시장의 장점인 효율성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그 폐해는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가엾이 여겨 도와주라는 것이 아니다. 공정하게 거래하고, 이들이 기여한 만큼을 돌려주라는 것이다. 상생협력의 본질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원시시장은 남는 것과 모자라는 것을 공정히 경쟁하고 교환해서 서로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상생협력의 마당으로 출발했다. 시장은 결코 힘이 남용되고, 불공정이 지배하는 장소가 아니다.

대·중소기업 상생의 길은 바로 우리 먼 선조들의 소중한 꿈이 담겨져 있는 원시시장의 장터 정신을 이어 받는 것이다. 공정경쟁과 공정거래가 바로 그 길이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