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의 위상은 지난 3월의 제 1회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대회를 통해 크게 높아졌다. 일본은 한국에게 3전 2패했는데도 결승에 진출, 우승까지 했다. 한국은 단 한번 졌는데 4강에 머물렀다. 해괴한 대진방식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을 연달아 꺾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그런 감동 속에서도 우울한 그림자 2개가 서린다. 첫째, 스포츠는 세계로 뻗어 나가는데 경제는 주춤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선수단은 준비를 철저히 했고 선수들 모두 어떤 상대와 겨루더라도 이기겠다는 각오와 결의를 다졌다. 모든 선수들이 잘 싸웠다. 특히 해외파 선수들이 큰 몫을 했다. 그들은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았고 살아남으려고 뛰고 있다. 국내파 선수들 역시 이들에 못지 않은 기량을 지녔다. 모든 선수들은 잠시도 멈칫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기업 스포츠정신 필요
스포츠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경제문제에는 왜 이런 각오와 결의로 접근하지 않는가. 무엇을 하건, 무엇을 만들건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하고 일류가 되려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스크린 쿼터 축소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협상도 예외일 수 없다. 스포츠에 쏟는 정성의 절반이라도 경제에 돌린다면 경제가 이렇게 처지지 않을 것이다.
둘째, 야구대표선수들이 잘 싸웠다고 해서 그들에게 병역특례를 부여한 것은 문제라는 점이다. 야구대회기간 중 일부 고참선수들은 “후배들의 병역혜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병역문제 때문에 열심히 뛰었다는 말이 아닌가.
병역특례결정이 원칙과 기준 없이 이루어지고, 대회가 진행중인데 여론에 편승해 병역특례를 결정한 것은 절차상으로도 문제였다. 일각에서는 각종 세계선수권대회 입상자에게는 왜 병역혜택을 주지 않느냐고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국위선양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불만도 나온다.
병역문제와 관련된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크리스티 매튜슨은 한 시대를 풍미한 투수(373승 188패, 방어율 2.13)였다. 병역을 면제받은 상황이었지만 1918년 38세에 “누구나 가야하는 길을 특별한 이유나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며 의무를 회피하는 비겁자가 되지 않겠다”며 자원 입대해 1차 대전에 참전했다.
밥 펠러 역시 대단한 투수(1938~51년 간 풀타임으로 뛴 10시즌에서 다승 1위 6번, 탈삼진 1위 7번)였다. 최고전성기였던 1941년 23세 때 연봉재계약을 하기 위해 구단으로 가던 중 일본의 진주만 공격 뉴스를 듣고 가정사정상 징집대상이 아니었지만 3일 후 군에 자원 입대했다. 44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1945년 8월 제대, 다시 야구영웅으로 돌아와 노히트 노런, 다승왕과 탈삼진왕 등 기록을 세웠다.

국민적 의무는 지켜야
테드 윌리암스는 ‘꿈의 타율’로 불리는 4할 고지에 마지막으로 오른 타자였다. 1943년 24세 때 해군에 입대, 3년 간 복무한 후 메이저리그에 복귀, 최우수선수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1952년 33세 때 한국전쟁에 다시 참전, 약 2년 간 복무한 후 리그에 복귀, 안타행진을 이어갔다. 그는 두 번이나 참전한 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 말은 “나는 야구선수 이전에 미국의 국민이다”였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선수가 왜 없겠는가. 어쨌든 운동선수가 전성기에 운동을 중단하는 것은 고통일 수 있다. 그렇다면 국위를 선양한 출중한 선수들에게 마음껏 운동할 수 있도록 선수생활을 끝낼 때까지 군대소집을 연기해주거나 선수생활을 접은 후 어떤 형태로든지 군복무에 버금가는 활동을 하게 하는 방법 같은 걸 찾아야한다. 국위를 선양한 운동선수들에게 배려가 따르는 건 마땅하다. 하지만 그 배려가 왜 병역혜택이어야 하는가. 군복무를 안 하도록 배려하면서 그걸 특혜로 여긴다면 병역의무란 도대체 무엇인가.

류 동 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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