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영화를 보고 나서 내내 가고 싶어 몸서리치면서 기대감을 안고 가슴 떨리며 처음 찾았던 청산도다. 당시에도 완도에서 차를 실을 수 있는 큰 배가 운항하고 있어 하룻나절 차로 한바퀴 휑하니 돌고나니 금세 할일이 없어져 버리는 섬이었다. 당시 섬사람들은 순박하기보다는 삶에 찌든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고 음식점 하나 마땅치 않아 겨우 자장면으로 요기를 하고 섬을 벗어난 기억이 청산도의 전부다. 그곳을 이봄에 다시 찾았다. 지금 그 섬은 드라마 봄의 왈츠의 촬영지로 다시 한번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완도항에서 뱃길로 50여분. 도청항에 도착하면 여느 섬의 선착장 모습과 별다르지 않다. 섬에서는 가장 많은 횟집, 모텔, 상가가 선창주변에 흩어져 있다.
읍내를 기점으로 길은 당리와 지리해수욕장길로 나뉘는데, 일반 여행객들은 보편적으로 당리길로 오른다. 이번 여행은 지리해수욕장 주변에서 1박하면서 국화도-진산 몽돌해수욕장-상산-신흥해수욕장-중흥-부흥-읍리-당리 순으로 길을 나선다.
완도군청의 입담 쎈 유영인(061-550-5224)씨와 인상좋은 정성희 면장(061-550-5567)등 여럿이 가세해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어서 더욱 좋은 청산도 여행길.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 만담처럼 설명을 잇는 유영인씨는 듣는 사람들의 배꼽을 쥐어 잡을 정도로 구수한 어휘력을 발휘한다. 마치 한편의 재밌는 전라도 소설 한편을 듣는 듯하다. 우선 해송이 병풍처럼 휘감고 낙조가 아름답다는 지리해변을 지나 면장을 따라 초분(草墳)을 찾는다.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지나칠 자리다.
초분은 주로 바닷가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장례풍습. 면장 말에 따르면 뱃일 나가거나 외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장례시기에 맞춰 올 수 없어 이렇게 가묘를 만들어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3년을 두어 뼈만 남은 뒤에야 매장을 한다. 썩지 않은 성한 몸으로 선산에 들면 조상이 노해 풍랑을 일으켜 사람들을 저세상으로 잡아간다는 믿음에서 생긴 풍습이기도 하단다.
초분을 나와 멸치를 많이 잡았다는 국화도를 지나고 몽돌(이 지역사람들은 갯돌이라고 부름)해변이 펼쳐지는 진산해수욕장앞에 잠시 차를 멈추었다. 아슴푸레 처음 청산도를 찾았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유난히 낚시객들이 많았던 곳이다. 이곳부터 신흥까지는 일출 포인트가 된다.
조금 더 언덕길을 넘어서면 전망대가 있다. 덕우도, 황제도, 거문도까지. 거문도는 특히 청산도와 인접해 있어서 그곳의 훈장을 이곳에 유입해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학문이 들어오면서 남정네들은 먹물에 길들여지기 시작하고 그 바람에 모든 집안 살림은 여인네들의 몫이 되었단다.
그래서 속 모르는 여인네는 청산도로 시집가지 말라는 이야기나 나왔단다. 이 말은 속모르고 청산에 시집왔다가 죽어라 일만해야 하니, 살기가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억척스럽게 집안을 꾸려나가야 했을 연인 네들의 한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부흥리, 청계리, 양중리, 상동리 주변에는 구들장 논이 흔하다. 청산도는 다도해의 숱한 섬 중에서도 비교적 큰 축에 속지만 평지가 별로 없고 인구가 많다보니 식량은 늘 부족했다. 그래서 한 평의 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비탈진 산기슭과 골짜기를 깎고 다듬어 계단처럼 층층한 축대를 쌓고, 그 안쪽에는 흙을 쏟아 부어 ‘구들장논’을 만든 것이다. 겉으로 보면 비탈진 논이지만 한 평이라도 늘리려는 삶의 애환이 배어 있는 힘겨운 논이다.
서편제의 촬영세트가 있는 당리마을은 관광객들을 위해서인지 해마다 초가를 갈아 입혔는지 번듯하다. 처음 찾았을 때, 그 초가집에는 서편제의 주인공들의 얼굴 모형을 갖다 놓았다.
당리 언덕길을 부산하게 오르면 봄의 왈츠 촬영장이다. 영상미가 빼어난 윤석호 감독의 현장 촬영장을 만난 것은 가을동화 이후 두 번째다.
일부러 심어 놓았다는 탐스러운 유채꽃 너머로 잘 지어놓은 유럽식 전원주택 한 채. 전남에서 수억의 돈을 들여 지어준 세트장이란다. 머리 가르마를 여러 갈래도 타 놓은 듯한 구불구불한 청산도 길과 마을, 유채꽃, 바다, 고깃배, 산등이 어우러진 이 모습이 바로 청산도의 제 모습이 아니겠는가? 섬의 일주도로는 17.5㎞. 차로 다 돌아도 한나절이지만 걸어서는 5시간 정도 소요된다.
1960년대만 해도 섬사람은 1만2천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숫자가 현격하게 줄었다. 당시에는 멸치, 고등어 등의 물자가 풍부해 술집등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물자가 척박해지면서 섬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드라마 촬영지로 일시적으로 급부상할는지는 몰라도 낚시객이 아닌 이상 하룻밤 유하기도 좁은 섬이다. 하루쯤 천천히 섬을 음미하면서 하룻밤 섬에서 자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아닐는지.

■자가 운전:서울에서 호남고속도로 이용해 광산 나들목으로 나가 나주-영암-해남(4차선 도로가 있어 편하다)간 13번 국도 이용. 해남읍에서 827번 지방도 따라 북일면으로 가다보면 강진에서 오는 55번 지방도와 만난다. 남창에서 완도대교를 건너 13국도를 타면 완도 여객터미널(061-552-0116)에서 하루 4회 운항.
■먹거리와 숙박:도청항에 있는 청산도 식당(061-552-8600)이 밑반찬도 깔끔하고 자연산회와 전복죽 맛이 좋으며 숙박도 가능하다. 보적산장(061-555-5211)에서도 자연산 회를 맛볼 수 있다. 그 외는 완도 군청이나 청산면장에게 문의.
■여행포인트:서울에서 완도까지는 먼 거리다. 광주를 지나 나주나 영암, 해남, 완도에서 하룻밤을 유하는 것이 좋다. 나주는 하얀집(061-333-4292)의 곰탕도 맛있지만 유선추어탕(061-332-9939), 청진동 해장국(061-333-2440)의 생태탕이 한 끼 먹기에 괜찮다. 영암에는 동락회관(061-471-3636)은 모든 음식이 꽤 수준급이다. 완도에서는 즉석 활어시장을 찾으면 된다. 나주의 코리아사우나(061-336-3245)는 규모는 작지만 조용하고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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