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월드컵이 다가오자 ‘2006 월드컵’을 빛낼 스타들의 얼굴이 매스컴을 장식한다. 맞붙을 상대팀의 전력을 분석하며 승리를 다짐하는 기사도 흔히 눈에 띈다. 2002년의 영광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은 굴뚝같다. 정치적 견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라도, 생활에 찌든 서민들도, 일자리를 잃었거나 찾지 못한 사람들도 축구 이야기만 나오면 모두 한 마음이 된다. 온 국민의 희망의 드라마가 바로 월드컵이다.

축구보다 경제열기 높여야

하지만 축구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환율은 이미 많이 하락했고 국제유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한다. 수출기업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기업들은 어려움을 호소할 곳조차 없이 한숨을 쉰다. 기업들은 각종 규제와 노사관계 불안, 반(反)기업정서 등에도 시달린다.
중소기업에는 부족한 인력이 10여만 명에 이르지만 40여만 명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업상태에 있다. 심각한 인력시장의 구조적 모순이다.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6년 세계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순위는 작년보다 9단계나 추락, 38위였다. 한국은 조사대상 61개국 중 하락 폭이 가장 컸다.
분야별로 보면 정부가 국가경쟁력을 가장 크게 갉아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경제가 반석 위에 올랐다고 했지만 국제기관의 평가는 싸늘했다.
그런 반면 중국은 12단계나 뛰어오른 19위, 인도는 10단계나 뛰어오른 29위였다. 미국은 지난해에 이어 1위였고 홍콩 싱가포르가 뒤를 이었다. 대만(18위) 말레이시아(23위) 태국(32위) 등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을 앞섰다. 월드컵에서 16강을 넘어 8강을 바라보고 온 힘을 쏟고 있는 우리의 국가경쟁력은 이렇게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반응은 다르다. 기업인 설문조사에 많이 의존한 평가라서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진짜 국가경쟁력을 측정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기업인들이 기업환경을 나쁘게 평가했다면 그 자체가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의미한다.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쳐왔지만 결과는 이렇다. 평가기준이나 방법에 따라 결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순위가 올랐을 때 그 결과를 인용하느라 바쁘던 정부가 순위가 떨어지니까 설문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변명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결과가 좋았다면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우리가 해결해야할 과제는 켜켜이 쌓여있다. 축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월드컵 대표선수명단을 발표하던 날, 현장을 TV로 생중계하는 등 축구에 국가의 운명이 걸려있는 것 같은 분위기 조성은 좀 지나쳤다. 지금 한국에는 축구 아니면 할 일이 없다는 것인가. 먹고사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다.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국력을 모아야한다.

경제에 국가 미래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대외적 악재 때문에 올해 5% 성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한 연평균 7% 경제성장은 이미 물 건너갔지만, 2003년 이후 3년 간 연평균 성장률은 3.9%, 올해도 5% 미만이라면 너무나 초라한 성적이다.
세계경제는 물론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경제는 앞으로 뻗어나가는데 우리만 머뭇거린다. 그런데도 올해의 저성장을 유가와 환율 탓으로만 돌리려 한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저성장 원인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월드컵에서 뛰는 우리 선수들을 마음껏 응원하자. 한국축구 선전을 기대하며 태극전사들의 승전보를 기다리는 마음을 감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축구는 축구고 경제는 경제다. 축구에 열광하면서 경제와 정치가 곤두박질하고 있는 남미의 몇 나라를 닮을 수는 없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소리에 경제 추락하는 소리, 기업인들의 한숨 소리, 국민의 살림살이 쪼그라드는 소리가 묻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류 동 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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