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봄이 늦게 찾아온 바람에 철쭉꽃의 개화시기도 늦어졌다. 이미 시기적으로 아랫녘 철쭉꽃들이 지고 북상해야 할 시점이지만 아직도 볼만하다. 그중 한군데가 황매산(1,108m)이다. 5월말까지는 약간 부족하지만 일기의 변화가 없는 한 나름대로 꽃 감상이 가능할 듯하다. 철쭉꽃이 아니더라도 걷기에 무리가 없어 남녀노소가 가볍게 산행하기 좋은 여행지다. 온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여 놓아 분홍 수를 밟고 가는 것 같은 곳. 절로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합천호에 산그림자가 지면 세송이 매화꽃이 잠긴 듯하다고 해서 수중매로도 불리는 아름다운 황매산은 살아 생전 한번은 가봐야 할 여행지다.

수중매로 불리는 아름다운 황매산
2년 전 쯤 황매산 철쭉 군락지를 찾은 적이 있다. 어느 산이라도 그러하듯 황매산에 오르는 길은 다양한데, 합천방면에 진입로가 많고 산청에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당시 산청 차황면 쪽으로 찾아갔는데, 산 밑에서 정상을 향해 하염없이 걸어야 만날 수 있는 여느 철쭉 군락지와 다르게 주차장 앞으로 분홍 철쭉꽃단지가 다가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하룻밤을 머물면서 기다렸다. 야속하게 비는 그치지 않고 새벽녘 혼자 산길을 가다가 중턱에서 돌아와야 하는 안타까운 추억이 있는 곳이다.
올해 5월 15일에 황매산을 찾았다. 평일이지만 몰리는 인파를 피하기 위해 일찍 서둘러 무사히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주차장이 800고지여서 1천고지가 넘는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1.9km 정도로 가볍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황매봉으로 오르는 길 이외에는 경사도가 낮아 걷는데 큰 부담은 없다.
아랫부분은 이미 져가고 있지만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다. 카메라 가방과 등산화를 챙기고 산길을 오른다.
제법 사람 키를 넘을 정도로 큰 철쭉사이로 난 산길을 따라 가면 돌팍 약수터를 만난다. 산행길에 약수터가 있어서 목마름에 크게 지장 받지 않아도 된다. 되도록이면 고봉인 산정을 피해 꽃이 많이 핀 곳을 찾아 발을 옮긴다. 0.6km 정도 걸으니 이내 황매평전이라고 불리는 능선에 다다르게 된다.
이미 올라온 수많은 산행객들이 여럿 모여 도시락을 펼쳐 들고 있다. 능선에 왜 그렇게 넓은 터가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산정의 헬기장이 많지만 이렇게 넓은 터는 기억이 없다.
바로 밑에 목장이 있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아름답다는 것밖에는 머릿속은 백지장이다. 해튼 넓어서 좋고, 길이 편안해서 좋으며 사방팔방으로 눈을 돌려도 온통 분홍빛으로 수놓은 대규모 철쭉 군락지가 좋을 뿐이다.

뭉툭한 봉우리의 황매봉

이 능선을 기점으로 산행을 결정해야 한다. 정상 황매봉으로 가느냐, 아니면 베틀바위-모산재쪽으로 가느냐가 관건이다.
처음 생각은 그 어느 것도 행하지 않으려 했다. 능선 바위 한켠에 몸을 기대고 앉아 주변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은 충분히 충전됐기 때문이다.
하늘도 보고, 산행하는 사람소리도 듣고, 기암이 펼쳐진 황매봉을 쳐다보면서 하산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0.9km라는 짧은 길이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산행시간이 매우 짧아 하루를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기 때문이다.
700~900m의 고위평탄면 위에 높이 약 300m의 뭉툭한 봉우리를 얹어놓은 듯한 모습을 한 황매봉. 가파르긴 해도 줄을 만들어 놓고 해서 그다지 힘들지 않다.
최단거리를 선택한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하지만 이미 능선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사람은 그다지 힘겨워하지 않는다.
산이 있어서 내가 오르는 것이지 굳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정복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몸을 돌려 뒤를 돌아다보니 절로 신선이 되는 풍경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능선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분홍빛 철쭉 비단을 깔아놓은 산길에는 산행 들머리길이 구불구불 여러 갈래로 한눈에 펼쳐진다. 마치 헬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산봉우리에서 바라보는 풍치는 꼭 한번 봐야 할 아름다운 모습이다.
다시 산길을 따라 오른다. 고개를 들어보면 암릉이지만 더 위로 올라가서 보는 풍치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져만 간다. 약간 난코스의 암벽이 앞을 가로막지만 수없이 찾아든 등산객들은 여러 갈래의 산행 길을 잘도 닦아 놓았다.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있지만 철쭉 꽃밭이 펼쳐진 봉우리에서 종지부를 찍는다.

단적비연수 촬영세트장도

사람들이 최단거리라고 가파르게 올라오는 코스로 하산 길을 정한다. 하산하면서도 감격스러운 기분은 연이어진다. 아주 짧게 느껴지는 하산 길에 황매산을 이웃산처럼 자주 찾아온다는 진주에서 온 한 무리들을 만난다. 그들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철쭉 군락지를 돌아다니면서 능숙하게 굵직한 고사리를 꺾는다.
약수터를 기점으로 단적비연수 등 촬영세트장이 있는 영화주제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어차피 주차공간과 세트장은 지척. 충분히 천천히 걷고, 충분히 숨 돌리면서 정상까지 가도 2~3시간이면 충분하다. 물론 산행 욕심을 낸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이것만으로 못 다한 숙제를 해결한 듯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참고로 황매산의 철쭉군락지 산행은 대략 4군데 정도다. 그중 차황면쪽 능선사면과 베틀봉 부근, 가회면 쪽 능선길 등 3곳이 널리 알려져 있다. 어디에서 출발하나 정상 능선에서 한꺼번에 만나게 돼 있다.
그리고 남쪽기슭으로 내려오면 삼라만상을 전시해 놓은 듯한 모산재(767m)의 바위산이 절경이며 무지개터, 황매산성의 순결바위, 국사당 등이 볼 만한 곳으로 꼽힌다. 더 내려오면 통일신라 때의 고찰인 합천 영암사지(사적 131)를 만난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