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의 아침, 저녁 正餐(정찬)은 饌(찬)이 백가지, 요리가 50가지 모두 150가지의 산해진미가 좌우로 5미터 폭 2미터의 식탁에 넘친다.
식사의 시중은 소덕장(少德張)이라는 환관이 맡았고 식탁 좌우와 중간에 각각 한명씩 서태후 전속 여관(女官:侍女)이 자리해 서태후가 원하는 찬이나 요리가 지적되기를 기다린다.
시녀중 한사람인 덕령(德齡)이라는 여관이 후일 소덕장 환관이 서태후의 식사 시중드는 모습을 기록에 남겼는데 대충 다음과 같다.
“서태후는 먹기 위해서 태어났다 할 수 있다. 정찬에는 반드시 백가지 종류의 찬이 나와야 하고 특별요리 50가지는 문채가 각각 다른 용기가 사용돼야 한다. 찬과 요리의 종류는 미식류(未食類), 색식류(色食類), 지식류(脂食類), 목식류(目食類)등으로 분류되며 이 분류는 소덕장 소관이며 미식류는 맛으로 먹고 향식류는 향기로 먹고 색식류는 색깔로 먹고 지식류는 기름으로, 목식류는 눈으로 먹는데 목식류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서태후가 언제나 좋아하는 것이 찬이나 요리에서 미식류와 지식류이며 특히 오리요리를 좋아했다. 그것도 야생오리가 아니고 집에서 사육하는 오리를 좋아한 이유는 사육오리가 지방질이 많아서라 하는데 사육오리 납품업자도 많았다는 얘기다.
오리찬, 오리요리는 서태후가 언제라도 좋아해서 서태후가 앉는 자리 가까이에 진열해 서태후가 상시로 사용하는 수저를 사용할 수 있으나 먼곳에 있는 음식은 어떻게 먹는가? 이것은 낚시대처럼 정교하고 예쁘게 만든 대나무 봉(棒)을 소덕장 환관이 갖고 있다가 서태후가 손짓을 하면 소덕장이 그 대나무 봉을 서태후에 바치면 서태후가 그 길다란 봉으로 먼 곳에 있는 음식을 지적하고 근처에서 기다리던 시녀가 그 음식을 서태후 앞으로 가져간다.
이같이 원하는 지적이 많으면 3명의 행동이 바빠져서 서태후의 독촉이 심해진다. 이것은 서태후 앞의 찬이나 요리가 교체되기 때문에 소덕장, 식사 시중장도 거들게 된다.
그런데 이같이 종류가 많고 요란한 서태후 식탁에서 한가지 이상한 현상이 있었다. 그 많은 찬과 요리중에서소(牛)를 재료로 하는 찬이나 요리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청(淸)나라 조정(朝廷)에서 소는 농사에서 노역(勞役)에 종사하는 가축이라 못먹게 금지했기 때문이다.
서태후는 장기간 수렴정치에 시달려 음식에는 신경을 쓰고 사치했다 하는데 자기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요리는 가까운 아랫사람에게 주게되자 주방장이 서태후의 승낙을 얻어서 모형요리를 만들어 ‘목식(目食)요리’로 식탁을 채워서 경비를 절약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서태후는 1899년에 하루 삼(蔘) 1錢(전·3그램)을 1년 동안 먹어서 1908년까지 살았다 하는데 그녀의 독재는 ‘악녀’로서도 이름이 높지만 여걸(女傑)로서도 통한다. 어느 책에서는 ‘여걸의 견본’이라 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