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에서 바람을 느끼고 장엄한 소리를 듣습니다. 인생의 희로애락 모든 것이 그곳에서 꽃으로 피어납니다.”
기업은 예술과 닮았듯 예술은 곧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는 고헌(古軒) 이병서 선생(이하 고헌)은 70생을 살아오면서 지금이 인생의 참 맛을 가장 뜨겁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고헌은 “인생의 어느 순간도 중요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매 순간, 그것이 비록 고통일지언정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느냐에 따라 소중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고헌은 33년간 열정을 뿌리며 걸어 온 기업인의 길을 접고 붓을 잡은지 4년 반 만에 고희연에 맞춰 신라호텔과 용인 녹우갤러리에서 서예전시회를 열었다.
“붓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습니다. 내 인생의 참을 수 없었던 고통조차도 잊고 싶은 시간이 아니라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인생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고헌은 자칫 붓을 잡은 손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획이 흐트러지고 작품 자체가 망가지듯 인생도 매 순간 열정과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전체가 망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붓끝의 방향은 곧 인생이라고 말했다.
“사실 인생은 조각난 시간의 연속적 개념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시간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과정에 작은 조각이나마 떼어내 버릴 수 있는 시간이란 없는 것입니다.”
고헌은 어느 누구나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로 반드시 그 결과는 자신에게 회귀하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961년. 고헌은 서울대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변변한 기업이라곤 없던 시절, 모두가 금융기관을 최고의 직장이라 생각할 때 기업을 선택했다. 한국나이롱(현 코오롱)에 입사한 후 1968년에 도료전문 기업을 창업했다. 학교에서 배운 자본주의의 꽃을 직접 피워보고 싶어서다. 그는 막스베버의 자본주의 정신을 신봉한다. 그는 부가가치를 존중한다. 부가가치 없는 자본주의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헌은 당시 경제개발계획을 주시했다. 모든 산업에 페인트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을 예상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비롯 대부분의 건물과 도로에 일본제품이 사용되던 시절이었다. 국산화를 통해 미국수출 품질시험에도 합격해 수입대체효과를 톡톡히 봤다.
한국페인트·잉크협동조합의 이사장을 6년간 역임하며 업계발전의 리더로도 활동한 고헌은 지난 IMF의 터널에서 큰 시련을 겪었다. 대기업으로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던 시점에 그는 33년간의 중소기업인의 길을 접었다.
그는 조선시대 梧里이원익 대감의 12대손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6.25때 충남 서천군수를 역임하던 선친이 인민위원장에게 잡혀 기개를 굽히지 않다 총살당한 것도 고헌의 정도경영의 정신적 버팀목이 됐다.
고헌은 한번 붓을 잡으면 꼬박 밤을 샌다고 했다. 이제 제2의 인생의 불꽃을 붓을 통해 승화시키고 있다.
그는 두보(杜甫)의 시 중에서 다음 구절을 좋아한다.“會堂凌絶頂 一覽衆山小”(반드시 정상에 올라서서 주변의 작은 산을 내려다 보리라)
고헌은 평생의 동반자인 鹿愚堂 김광숙 여사의 권유로 붓을 잡았다. 회사의 위기로 그가 불면과 번뇌 속에 있을 때 붓은 탈출의 열쇠가 됐다. 녹우당은 그에게 평화의 지혜자이며 무엇으로도 덮지 못할 큰 세상이라고 했다.
한국 중소기업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고 은퇴가 아닌 새로운 길을 선택한 고헌은 이제 시작의 의미를 알 것 같다고 했다.
용인 녹우당산방 = 황재규기자
사진 : 나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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