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목돈을 쏟아 부어도 자녀들의 교육비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푸념들이다. 지금 한국의 부모들은 사교육비 지출에 허리가 휘어져 있으며, 교육비 때문에 다른 곳에 쓸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행여 외국으로 유학을 보낸 부모들은 자녀에게 송금해주는 유학경비 때문에 ‘새’가 됐다고 한다. 보통의 샐러리맨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교육비를 송금해주고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있으니 이들 아빠들을 ‘기러기’니 ‘팽귄’에 비유하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 ‘새 됐다’는 이유가 되기 충분하다.
열심히 일해 벌어들인 소득에서 교통비가 지불되고 통신비가 지불된다. 이래저래 생활비로 쓰고 그나마 남는 돈의 대부분은 문화생활비로 지출되고 있다. 외식비로 지출되는 돈 역시 엄밀히 말하면 물적 재화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재를 구입하는 셈이다. 어떤 물품이든지 그것을 구입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구입된 물품의 소비과정은 결국 그 물품이 발생시키는 서비스를 얻기 위함이고, 따라서 물적 재화를 구입하는 것 자체도 사실 서비스를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물품 구입의 예가 아니더라도 최종적으로 거래되는 대상은 서비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인수의 경우를 보자. 공장부지와 건물, 기계장비를 획득했다 하더라도 그 내면에는 인적자원이 보유하고 있는 생산기술, 판매기술, 기업경영 등 서비스재가 동시에 인수됐으며, 따라서 인적자원이 발생시키는 서비스와 하드웨어가 발생시키는 서비스를 구입한 결과가 된다. 서비스를 발생하지 않는 물질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즉, 형태효용(form utility)만 가진 물질은 무용지물일 수 있다.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서비스를 사고 있는 것이다.
우리집에는 서비스가 살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도 서비스가 살고 있다. 내가 만들어낸 서비스도 있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서 공급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주변에 널려 있는 서비스를 보고 듣고 느껴야 비로소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서비스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마치 잠시라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공기를 느끼지 못하거나 고마움을 모르듯 서비스 역시 느끼지 못하고 그 고마움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최종거래 재화 서비스가 대부분

서비스가 있어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하루를 따분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나 새로운 모델의 TV를 구입하는 것은 물론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도 궁극적으로 서비스재를 소비하기 위한 중간과정에 해당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만들어내는 서비스만으로는 하루를 살아가는데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수많은 종류의 서비스가 필요하므로 이를 아웃소싱하기도 하고, 저장불가능한 서비스재의 성질을 극복하려 무던히도 애쓴다.
이제 우리가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재화는 서비스임을 재인식해야 할 때가 됐다. 우리의 삶은 이미 서비스 그 자체인 셈이며, 사실 서비스가 없다면 우리는 제대로 삶을 누릴 수 없다. 이러한 서비스는 대부분 사고 팔리는 상품으로 됐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내것으로 만들어 소비할 수 없으며, 공짜 서비스는 그 품질도 조악하다. 자가생산 서비스재의 한계인 것이다.

경제 발전할수록 서비스상품 수요 늘어

기술 발전에 따라 산업이 다양해지는 현상을 관찰해보면 서비스산업만이 독보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상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산업이 대두되는데 있어서 1, 2차 산업의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이 증대될수록 서비스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고령화 사회가 진전돼 노인일자리가 창출될수록 산업은 더욱 소프트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결론은 역시 서비스산업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의 서비스화는 더욱 심화되고 서비스산업의 발전은 필연적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준비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국가간 경쟁에서 서비스산업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기세잡기는 중요한 전쟁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래의 무역전쟁은 서비스시장을 두고 다투는 서비스전쟁이 명백하다. 우리나라 역시 서비스전쟁이 비켜갈 리 없고 비켜갈 명분도 없다. 사실 서비스전쟁은 이미 우루과이 라운드 당시부터 시작됐지만 우리는 농업전쟁에 진력하느라 서비스전쟁을 잊고 있었다.
이 시대의 경쟁(competition)이란 단어의 의미는 ‘경제전쟁’의 줄임말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그것도 코피가 터지도록 싸우라는 의미에서 코피티션(copetition, cooperation + competition)으로 빗대어 사용한지도 이미 오래 됐다. 결코 우스갯소리로 흘려버릴 수 없는 현실을 슬퍼해야 할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잠시 잊었던 경제전쟁의 현장을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이번 협상개시가 선언되고 1차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관심사는 서비스시장에 맞추어지고 있다. 특히 교육서비스와 의료서비스 시장은 그 자체가 우리 국민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협상에서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서비스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밝은 미래를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10년전, 15년전의 농업전쟁을 아직도 질질 끌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서비스전쟁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한미 FTA 협상에 임해야 한다. 한미 FTA 파고는 전방위 통상전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세계 서비스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한국경제의 미래는 서비스가 답이다.
박 문 서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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