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몰랐을까. 신기리에서 봉산면 구절리를 잇는 비포장 길은 오래전 진부 토박이에게 소개받아 그 험로를 마다하고 찾아다녔는데, 그길 입구에서 물길 하나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얼음골 이끼계곡은 몰랐을까. 그리고 왜 평창군에서는 오래전부터 박지산(1,391m)이라고 부르던 산을 동해의 두타산과 헷갈리게 이름을 바꾸게 됐을까? 평창 두타산의 얼음골, 이끼계곡을 찾았을 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평창 두타산은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에 딸린 산으로, 주위에 발왕산(1,458m) ·두루봉(1,226m). 백적산(1,141m) ·백석산(1,365m) 등이 솟아 있다. 동쪽 비탈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봉산천으로 흘러들고, 서쪽 비탈면은 오대천으로 흘러간다. 박지산의 얼음골 이끼계곡을 찾은 데에는 딱히 목적은 없었다.
그저 이끼계곡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을 검색했을 때 우연히 발견된 곳이 박지산이다. 이미 인근하고 있는 장전계곡의 이끼계곡은 이제 너무 소문이 난 곳인데다 몇 번을 찾아가 카메라에 담아두었으니 새로울 것 없는 곳이다.

사진가들의 천국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신기리에 있는 이끼계곡. 사진가들이 회원가입을 해야만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사이트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위치도 너무나 자세히 나와 있어 초보자들도 손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큰 기대 없이 평창의 몇 곳을 취재하고 나서 늘 그랬듯이 진부에서 지인을 만난다. 몇 사람이 모여 저녁을 먹으면서 이끼계곡을 찾을 생각이라고 했더니 지인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면서 안내를 해주겠단다. 주변 사람들이 그 골짜기를 얼음골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그를 통해서였다.
이끼 사진을 찍으려면 새벽시간이 좋을 테지만 큰 기대가 없었기에 서두르지도 않았다. 진부에서 신기리로 가는 다리를 건너 마을을 지나치니, 웬걸 길목에 제법 많은 차들이 서 있다. 이곳은 워낙 오지인데다, 길이 나빠서 웬만해선 사람들이 찾지 않은 곳인데, 의외의 일이다. 혹시 이 근처가 얼음골 이끼계곡이 아닐까 속으로 짐작을 하고 차를 세워보니, 개울 너머에 사진을 찍는 사람인 듯한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 쉬고 있다.
사진가들의 복장은 등산객들과 거의 비슷하다. 챙 넓은 둥근 테에 목줄이 달린 모자와 색깔 진한 등산용 재킷과 바지를 입고 배낭을 짊어진다. 짧은 청바지, 면 티셔츠에 모자도 쓰지 않은 필자의 옷차림은 그저 관광객의 모습일 뿐이다.
이끼계곡이 어딘가를 물어보니 퉁명스러운 말투는 물론이고 말도 많이 아낀다. 좁은 산길이 이어진다. 그저 잠시만 올라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샌들을 신고 올라갔는데, 발이 미끄러질 것 같이 걸음이 불안하다. 예상대로 많이 걷진 않았다. 장화를 신은, 그냥 보기에도 50줄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 두 명이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고 있다. 발을 적시며 개울을 건너니 멋진 이끼계곡이 펼쳐진다. 한 사내는 묘기를 부리듯 이끼 바위를 밟으며 더 위쪽으로 올라가고, 필자는 연신 셔터를 누르는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든다.

정말 소개하기 아까운 계곡

어찌 알아냈을까? 오랜 세월 동안 신기리를 훑고 다녔던 필자도 모르던 이곳을 어찌 이 많은 사진가들이 알아냈을까? 그다지 중요치 않은 일임에도 인근 주민들만 오갈 듯한 산길에 찾아드는 사람들이 얄미웠던 게다.
필자의 머릿속에는 사진 찍는 목적이 아닌 일반인들이 찾아와서 잠시 쉬기에 좋은 장소인지 등등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행여 이들의 무수한 발자국이 이 아름다운 자연을 깨트리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비롯된 마음이다.
하여튼 초입의 이끼계곡을 뒤로 하고 산위로 더 올라가보기로 한다. 아직까지 사람 손때가 묻지 않은 원시림같이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 사이로 한사람이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오솔길이 잘 나있다.
주변을 살펴볼 시간도 없이 이끼계곡은 한없이 이어진다. 아름다운 계곡 자리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통로를 내어 두었다. 마침 장맛비가 내려서 물줄기는 거세고, 습한 대기 탓에 뽀얀 연기를 내뿜어 신령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편으로 생각하니 이런 곳에 단 혼자였다면 얼마나 음습하고,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조금만 더’를 연속하다가 비슷비슷한 사진을 파인더에 담으면서 중간 즈음에서 하산하기로 한다. 산길은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여름 샌들로 오르막길을 타는 것은 힘겨웠기 때문이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소개해주고 싶지 않은 천혜의 절경이 두타산의 얼음골 이끼계곡이다. 이미 필자가 아니더라도 사람 손때 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전국 사진가들이 다 모여들었으니, 어찌 옛 모습 그대로 남아지겠는가?
이끼계곡을 비껴 돌아 나오려는 생각을 접고 다시 봉산면 구절리를 잇는 임도를 따라가기로 한다. 이 길에서는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승용차로 비포장 길을 따라 오르다 돌에 차바닥이 닿아 깨지기도 했으며 도토리가 많았던 것도 기억된다. 지인과 느타리버섯을 따러 오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긴 세월 여행 작가를 한 것 같다. 머릿속은 늘 옛날과 비교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길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굵은 자갈돌이 없어서 차가 깨질 염려는 없어졌다. 산정에서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만났고, 오지마을을 즐겨 찾는 다는 인천서 온 부부 한 팀도 만났다.
그리고 대광사라는 절집에서는 필자 차바퀴에 세 번이나 오줌을 싸면서 영역표시를 한 개 한 마리가 있었고, 한복에 턱수염과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산신령 같은 사람도 스쳐 지나쳤다. 신기리에서 구절리까지 27km 구간은 참으로 길고 길었지만 그곳은 나의 여행 작가의 추억이 배어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진부 나들목-59번국도 이용해 정선 쪽으로 가다보면 왼편에 신기리 마을 가는 다리를 만난다. 마을을 지나면 전봇대에 ‘보감’이라는 글자가 있다. 이 근처에 차를 세우고 개울을 내려다보면 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 계곡길 반대편 우측 길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가면 봉산면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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