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만에 거창 땅에 발을 내딛는다. 덕유산자락이 있어서일까? 왠지 이곳은 늘 푸르름이 느껴진다. 덕유산의 일부인 남덕유산(1508m) 이외에도 골골히 높은 산들이 있다. 그중 한곳이 금원산이다. 금원산(1,352m) 말고도 바로 옆에는 기백산(1,331m)이 이어지는데, 모두다 1천고지가 넘는 고산들이다. 골 깊은 산자락에서 뿜어내는 물줄기는 화려하면서도 요란하다. 특히 금원산자락에 들어선 휴양림 속에는 유안청폭포, 자운폭포는 물론이고 문바위, 가섭암지 삼존불상 등은 이 여름 꼭 한번은 가봐야 할 곳들이 아닌가 한다.

88고속도로를 타고 거창읍내를 거쳐 위천면으로 찾아 들어간다. 가는 길목의 도로는 4차선으로 번듯해졌고, 어느 지점에 이르니 넓은 위천천이 펼쳐지고, 제법 모양을 다듬어 놓은 거열산성 입구를 만나게 된다.
신라에 망한 백제의 충신·열사·의용군들이 나라를 재건하려는 목적으로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에 쌓은 성이라는 거열산성은 읍내에 가까이 있다.
산성은 인근 사람들의 산책로인 듯 길을 잘 닦아 놓은 듯 보이고, 천변에서는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물속에 첨벙 빠져 들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그들과 함께 계곡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 간절할 정도로 뙤약볕이 내리쬔다.

수승대-자연, 인간, 연극

금원산과 수승대를 앞에 두고 우선 수승대로 발길을 옮긴다. 수승대는 매년 여름철이면 거창국제연극제를 연다. 찾은 날이 마침 연극제를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이곳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물속이 수영장인양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수승대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물놀이를 즐기는 장소로 매우 적합한 장소이기도 하다. 인파에 부닥치면서 천천히 발길을 옮기면서 흩어져 있는 문화유적을 찾아 나선다.
수승대는 옛날 삼국시대 백제에 속해 있을 때 신라에 보내는 사신들을 전별하던 곳. 처음에는 수송대라 하다가 1543년 정월 퇴계 이황선생이 거창을 지나면서 남긴 사율시에 수승이라 이른 뒤부터 수승대로 고쳐 불려졌다고 한다.
수승대에서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거북바위.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는 큰 바위위에는 수령 오래된 소나무가 자라고 돌 주변으로는 퇴계선생과 갈천선생의 시를 비롯해 이름자들이 무수히 새겨져 있어 마치 거북이 등짝을 연상케 한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는 늘 정자가 있게 마련이다. 수승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요수정과 구연서원, 관수루가 솔숲과 어우러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외에도 세월의 흔적을 음미할 수 있는 수령 오래된 은행나무 몇 그루도 눈에 띈다. 무구한 세월이 흘러도 그 모습은 지금까지 남아 시원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되는 곳이다.
탁족 한번 하지 못하고 일정에 쫓겨 월성계곡과 빙기실계곡을 찾아 나선다. 월성계곡은 몇 해 전보다 피서객들이 많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이내 병곡마을로 찾아든다.
거창에서도 오지마을이라고 일컫는 병곡리 마을에서 만나는 빙기실계곡은 거창의 10경에 해당된다. 하지만 육안으로 보기엔 그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계곡일 뿐이다. 그래도 이곳은 덕유산 동엽이재와 상여듬으로 오르는 깊은 계곡인데, 옛날 덕유산을 사이에 두고 영호남을 끈을 이었던 동업이재다. 거창 합천 지방과 전북 무주, 장수와 토산품을 사고팔기 위해 보부상이 넘나들던 재라고 한다. 보부상은 사라진지 오래고, 이제는 등산객들의 발자국만 새겨져 있다.

거창 약초마을

차를 돌려 약초마을로 찾아든다.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고구마 잎 닮은 식물을 본 적이 있다. 모양은 그러한데 냄새는 비릿한 것이 영 거슬렸는데, 바로 이 식물이 어성초란다. 고기 어자를 써서 어성초라고 한다는데,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한들, 죽을병 걸리지 않은 이상 먹을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어쨌든 이 마을엔 여전히 어성초, 삼백초, 그리고 더덕, 도라지 밭이 눈에 띈다. 잡초를 제거하는 아낙들을 뒤로 하고 회암대 폭포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길목에 세워진 몇 대의 차량을 발견한다.
울창한 숲 속에서 물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인데, 정작 숲에 가려져 모습을 볼 수 없고, 회암대 폭포 또한 울창한 나무에 가려져 있다.
회암대는 덕유산 줄기인 무룡산(1,492m)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폭포. 5m 높이의 직폭 아래 드리운 못이 15m 길이. 그저 이렇게 하염없이 눈도장만 찍고 다닐 수밖에 없는 현실. 오다가 길목에서 옥수수 서너 자루 사 먹는 것으로 요기를 하고 이내 금원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금원산은 이 산에 금빛 원숭이가 피해를 많이 주어 어느 도승이 잡아 바위 속에 가두었다고 해서 붙여진 산 지명이다. 그 바위는 마치 원숭이 얼굴처럼 생겨 낯바위라 하는데 음의 바꿈으로 납바위라 부르고 있다.
금원산의 원래 이름은 ‘검은 산’ 이다. 옛 고현의 서쪽에 자리해 산이 검게 보인데서 유래됐다. 이 산은 금원암을 비롯해 바위, 봉우리, 계곡 하나하나마 모두 전설에 묶여 있는 산이다.
유서 깊은 산자락에 금원산 휴양림(055-943-0340, 거창군 위천면)이 조성돼 있는데, 울창한 숲 그늘 계곡 속에는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금원산의 여름계곡

금원산에는 크게 이름난 두 골짜기가 있는데 성인골 유안청 계곡과 지장암에서 와전된 지재미골이 있다. 길은 초입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데, 우선 유안청 골을 따라 오른다. 선비들이 공부하는 유안청이 자리했다는 유안청계곡이 2.5km에 이른다.
계곡이 깊고 수량이 풍부하며 곳곳에 아름다운 폭포와 소가 이어진다. 높이 80m의 직폭인 유안청 제1폭포, 길이 190m의 와폭인 유안청 제2폭포, 붉은 빛깔을 띤 화강암을 깔고 쏟아져 내리는 물결모양이 마치 노을바탕에 흰 구름이 떠서 흐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자운폭포 등등.
물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접고 한참 더 위로 오른다. 이끼계곡을 찾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날은 계곡을 찾지 못했고 다음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인기척 하나 없는 숲 속에 날이 어둑해질 때면 아무리 무더운 여름철이라도 가슴이 섬뜩해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려와 지재미골로 들어선다. 계곡 초입에 만들어 두었던 길은 끊어져 있다. 3분정도 걸으면 높이 50m, 둘레 150m나 되는 문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큰 바위 밑으로 문이 난 듯 들떠 있다. 더 위로 오르면 집 한 채가 있고 돌계단을 타고 오르면 직립 암벽에 본존불과 보살상을 새겨 전체를 보주형으로 처리한 고려시대 삼존불인 가섭사지 마애삼존불상(국가지정보물 제530호)이 있다.
멋진 바위 틈 속에 새겨진 마애삼존불은 어둑해서 보이지 않지만 왠지 모를 전율이 다가온다. 바위틈 벌어진 만큼 하늘이 다가선다. 그 모습에 반해 반나절 시간을 더 할애해 금원산을 다시 찾았으니, 꽤 만족스러운 여행지임은 확실하다.
■자가 운전= 거창에서 3번도로 이용-말흘에서 37번도로로 좌회전-금원산자연휴양림-위천 수승대-남덕유분소 오르다 월성계곡쪽으로 좌회전-월성계곡-병곡리 송어장 팻말따라 우회전-병곡리 점터쪽으로 난 도로 이용-산길을 오르면 마을-하고개-갈골-월송계곡과 다시 만난다.
■별미집과 숙박=병곡리에는 병곡무지개송어장(055-943-3222)을 비롯해 송어회집이 서너집 있다. 또 바로 앞에는 점터(055-942-7921)에서는 약초차를 마실 수 있다. 모연암 앞에 있는 민들레울(055-942-5006)에서는 허브차를 마실 수 있고 민박도 가능하다. 거창에서 김천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대전식당(055-942-1818, 거창읍 서변리 원동)은 소문난 갈비탕 전문점이고 삼산이수(055-942-0103)에서도 갈비탕과 갈비찜을 판다. 식당 분위기가 멋지고, 갈비찜은 달짝지근하고 질깃하지만 밑반찬이 풍성해 일부러 가도 괜찮을 집이다. 더 나아가 김천쪽으로 가면 지레 돼지촌을 만난다. 지레는 돼지 명산지로 알려져 옛날 백과사전에까지 올라있을 정도로 맛과 질이 뛰어났다고 한다. 상부가든(054-435-0247, 김천시 지례면 상부리)이 원조집으로 분위기도 좋다. 숙박은 금원산 휴양림이나 모텔, 참숯굴 찜질방(055-943-9199) 등을 이용하면 되고 읍내에는 찜질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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