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영(KM)은 10년 전부터 ‘21세기 진입의 필수요소’로 인식돼 많은 기업들이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으나 성과와 붐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KM이 침체된 원인은 첫째, 중소기업계가 호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성공사례가 나왔으나 대기업 중심이다. KM을 통해 중소기업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실익을 얻을 수 있을까. 중소기업계가 호응하지 못하면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둘째, 과거의 디지털 기술은 KM을 풀 스케일로 지원하기에 역부족이었으며, 셋째, KM의 실천범위가 너무 부분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내부역량 부족이 문제

KM은 ①지식 처리 과정 (검색, 추출, 이전, 코드화, 배양 등), ②평가와 보상, ③조직 내부와 외부를 망라하는 소스 지도의 작성, 3요소가 모두 충실해야 하는데 대기업 사례를 보면 대부분이 ①과 ②에 치중하고 조직 외부로 향하는 지식획득 노력이 부족했다. 대기업은 자체 지식자원이 풍부하므로 내부 중심으로 해도 어느 정도 뜻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내부 지식자원이 빈약하고 특히 하이테크 산업과 벤처기업의 경우는 외부지식의 활용이 절대적이므로 기존의 대기업방식을 이식하면 쓸모없는 지식경영이 돼버린다.
경영자는 기회와 아이디어의 소스들, 예컨대, 관청, 도서관, 연구소, 조합, 컨설턴트, 고객 패널, 해외 채널, 휴먼 네트워크 등을 폭 넓게 연결해 고유분야의 핵심지식역량 지도를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이 업무는 혁신사업과 관계가 깊고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나 현재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진흥공단, 연수원 등 주요 기관에는 중소기업의 지식경영 활성화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조차 없는 실정이다.
내부 직원들의 암묵지식을 배양 전수하는 일은 굳이 KM체제가 아니라도 수습 도제제도 등 널리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지식 보유자의 채용, 아웃소싱, 형식지식의 코드화, 그리고 외부 전문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잠복지식의 추출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전문가가 보유하는 지식은 표현이 가능하나 형식지식보다 잠복성이 강해 에피소드, 논리 획득, 관찰, 녹취, 대화 등 특수방법으로 추출해야 하고 두뇌 속에 잠복한 무의식의 스키마까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다시 도전해야 한다. 디지털을 비하하는 논쟁은 삼가야 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비교하면서 ‘디지로그’ 등의 요상한 말을 거론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아날로그는 출처불명의 용어이다. 디지털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은 공상과학 영화를 많이 관람한 탓에 생긴 편견이다.

디지털 발전을 주목하라

디지트(digit)는 손가락 마디나 피아노 건반을 뜻하는 말인데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넣는 13자리의 빈칸같이 데이터를 기록하는 표형식도 이와 비슷한 모양이어서 컴퓨터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이게 됐다. 디지트 빈칸에 0과 1을 넣은 비트 8개를 1바이트라 한다. 디지털 컴퓨터는 수천 개의 바이트를 순간적으로 처리한다.
현재 디지털 기술은 메가바이트(10의 6승 또는 2의 20승)에서 기가바이트(10의 9승 또는 2의 30승) 수준으로 발전했고 매 20년마다 1백만 배의 성장속도를 과시해왔다. 테라바이트(10의 12승 또는 2의 40승), 페타바이트(2의 50승), 엑사바이트(2의 60승) 시대도 멀지 않았다. 메가바이트 수준이면 이메일이나 홈페이지 운영에 지장이 없고 기가바이트 수준이면 영화감상, 음악, 화상회의,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경영 활동이 가능하다.
테라바이트, 페타바이트 등 컴퓨터 능력이 현재보다 1천 배, 1백만 배로 커졌을 때도 계속 영화감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막강한 능력으로 우리는 지식경영을 해야 한다. 시인들은 수천 년 전부터 이런 일을 해왔다. 컴퓨터를 이용해 언어정보는 물론이고 무의식 세계, 암묵지식과 잠복지식을 추출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중소기업 지식경영을 위한 신 구상을 해야 한다.

이 재 관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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