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들기는 하는 건가? 지지리도 길기만 한 가을의 뜨거움이 가고 순간 찬 바람이 분다. 야간에는 더욱 기온이 떨어지는지, 한밤 자고나면 자연은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겨낸다. 애써 가을 단풍을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왠지 집에만 있으면 몸살이 나는 것은 순전히 가을 때문일 것이다. 감기몸살처럼, 몸은 천근만근으로 늘어져 머릿속이 개운치 않은 날, 단풍의 명소인 치악산으로 차를 돌린다.

치악산(1288m)의 옛 이름은 적악산. 가을 단풍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서 붙여진 산 이름. 이곳의 아름다움이 어찌 단풍뿐이겠는가? 산세가 높고, 골이 깊이서 사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명산이다.
치악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향로봉, 남대봉과 북쪽으로 매화산, 삼봉 등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고 그 사이에 깊은 계곡들을 끼고 있다.
치악산 등반은 여러 코스가 있는데, 대표적인 곳은 구룡사지구다. 구룡사-세렴폭포-사다리병창-비로봉 코스는 지금은 희끗하게 머리가 센 사람들에게조차 치악산은 추억 한 자락을 간직하고 있다.
청량리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 역전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치악산을 찾아온 사람들. 필자 또한 대학시절 이곳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었고, 신문사 산악회원을 따라 와 주변 민박집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죽기 살기로 악에 받쳐서 비로봉 로프를 부여잡은 기억이 선연하다. ‘악’자가 붙은 산은 으레 ‘악에 받쳐서 찾는 곳이다’라는 말들이 그냥 나왔겠는가?

적악산의 추억

하지만 눈부시게 아름답던 핏빛 단풍이나, 구룡사 옆에 우수수 낙엽을 떨어뜨리던 은행나무를 어찌 잊겠는가. 게다가 눈 내려 너무나 아름다워진 소나무 숲길을 구두 발이 미끄러지면서도 탄성을 자아내던 그 설경을 어찌 잊어버리겠는가?
올해 이상고온으로 단풍이 예년 같진 않을지라도, 가을이 이곳을 오지 않은 것은 아니리. 매표소 입구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주차를 하고, 산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구룡사까지만 들렀다 올 참이다.
구룡사 옆에 있는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던 커다란 은행나무만 보고 올 참으로 등산채비는 아예 접어버렸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하늘 향해 곧게 올라간 붉은 소나무(강원도기념물 제 30호)가 반기는데, 왼편에 황장금표라는 글이 새겨진 돌이 있다.
금표란 황장목 봉산의 경계 표시로 궁중에서 필요한 황장목 금양을 위해 일반민의 도벌을 금지한다는 표식. 일종의 보호림 표식이라 할 수 있다.
금표제도는 조선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치악산에는 질 좋은 소나무가 많고 강원감영과 가까워 관리가 편리하고 한강 상류에 위치했기 때문에 수운이 발달해 조선 초기 60개소의 황장목 봉산 중에서도 이름이 나있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서 그런지, 금강송이라는 소나무 표시에 눈길이 가고 소나무 향기조차 진하게 코끝을 스쳐온다.

구룡사의 은행나무

몇 걸음 걷지 않아서 구룡사를 만난다. 의상대사가 창건(668년, 신라 문무왕 8년)하고 나말려초 도선 국사의 비보사찰중의 하나로 수많은 고승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천년고찰. 몇 해 사이 절 주변은 많이 다듬어져 있다.
이름에서부터 ‘아홉 마리용’이 연상되는 사찰. 아홉 마리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지어 구룡사(九龍寺)라 명했다. 그 후 조선 중기에 거북바위 설화와 관련해 구룡사(龜龍寺)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예전에는 가람 옆에 있어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었던 은행나무 주변은 깨끗이 정리가 돼 저 혼자서 노랗게 물을 들였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김밥을 먹고 있다. 거기에 노란 제복을 입고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은행나무를 비껴서 절 입구 석등에서 소원을 비는 촛대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 종교란 필요에 따라 가슴속으로 다가서는 듯하다.
발길을 돌려 구룡폭포의 나무 계단 사이로 가지를 늘어뜨린 단풍잎을 걸고 사진을 찍는 사이 무수히 많은 등산객들이 스쳐 지나간다.
구룡폭포는 바위사이를 타고 내리는 낙폭이 없는 폭포지만 소는 매우 깊다. 물은 맑지만 육안으로도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지경이다.
물속에는 누군가 소원을 빌었는지 동전들이 무수히 던져져 있다. 이 소는 아홉 마리 용중 한 마리가 오랫동안 남아 떠나지 못했다는 전설이 흐르고 있다.
구룡폭포를 지나 자연 관찰로를 따라 올라가면 야영장을 만난다. 낙엽이 다 떨어진 지금, 자연생태 관찰이 쉽지 않다. 2명이상이면 해설을 해준다는 통나무집을 지나 산길을 오른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이라 길은 평탄하고, 가는 중간 계곡 만나는 곳곳에 붉디붉은 단풍이 발길을 더욱 가볍게 한다. 정작 종착지인 세렴폭포는 물이 말라 볼품이 없어졌지만 그저 가을 자연을 만끽했다는 것으로도 충만해지는 코스다.
입구부터 세렴폭포까지 3km 정도인데, 자연을 보고 즐기고, 쉬면서 올라서인지 전혀 힘들지 않다. 이곳부터 비로봉까지가 난코스지만,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저 한갓지게 가을 단풍 숲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다.
■교통편: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서울 청량리 역에서 원주까지 운행하는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를 이용. 시내에는 치악산 입구매표소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있다.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새말 나들목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새말나들목으로 나와 안흥 방면으로 난 42번국도 이용. 조금만 가면 우측에 구룡사 팻말이 있다. 매표소 입구에도 주차장이 있지만 공간이 좁기 때문에 아예 아래 주차장에 차를 두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기타 정보: 산에 오를 때는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입구에는 따끈한 어묵이나 도토리묵, 파전을 파는 곳이 많다. 또한 별미로 감자떡을 꼽을 수 있는데, 우수 특산품 대상을 수상했다는 치악산 손 감자떡(033-731-4914)집이 맛있다. 녹두 소를 넣은 감자떡은 돌아와서도 내내 생각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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