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래전부터 설악산은 세계적인 명산으로 손꼽히는 곳이니 누구나 설악산에 관한 추억 한 페이지는 갖고 산다. 설악산은 신행여행지였고, 수학 여행지였다. 웬만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얘깃거리를 머릿속, 가슴속에 하나쯤 숨겨 갖고 있는 설악산이다. 거기에 더불어 속초시내에 대한 그리움도 가슴 한 편에 남아 있다. 몇 해 전부터는 드라마 ‘가을 동화’ 촬영지도 인기를 누리는 여행지가 됐다. 잊혀져가는 드라마의 영상을 좆아 찾아온 일본인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청호동 갯배 타는 마을 주변은 물론이고 설악산의 비경과 속초시내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덧붙인다면 이 겨울이 춥지 않으리라.

너무나 유명해서 식상하게조차 들리는 외설악지구. 관광인파로 늘 복잡하고 이제는 그래서인지 인심도 되살아나지 않아 늘 의무감으로 찾는 여행지가 되고 말았다. 설악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라 만물상을 비롯해 울산바위 등, 설악산의 겨울 풍경을 한눈에 보는 것으로 설악산 여행은 끝을 냈다. 좀더 속초 시내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속초시내는 주마간산으로, 시간 할애 없이 지나치기 일쑤여서 늘 미진함으로 남아 있는 장소였다. 오랜 세월 설악산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추억 한 자락을 안겨주었던 속초가 아니었던가? 이곳에 굳이 발길을 멈추지 않은 것은 무사 안일한 태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다소 복잡할 것 같은 시내는 몇 시간 보내고 나니 손바닥처럼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상설장이지만, 오래된 중앙시장도 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해서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다. 특히 수산물 코너는 너저분한 시장통의 이미지를 바꿔 가운데 길을 터 넣고 양쪽으로 상가 간판들을 달아 놓은 모습 등이 한번쯤 관광지로 찾아도 좋을 듯하다. 그보다 시장통이 좋은 점은 정지된 삶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물건을 흥정하고,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의 번뜩이는 시선들이 항상 생기를 던져준다. 인근하고 드라마 가을 동화에서 은서(송혜교 분)가 타던 청호동 갯배타는 곳 주변으로도 옛 정취가 스멀스멀 몸속으로 녹아들고 있다. 드라마 장소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저 바닷가 근처의 식당 촌들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식당가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다. 실향민들이 정착해 터전을 일구고 사는 집단지구. 유수한 세월의 흔적을 주인집 할머니의 얼굴에서 읽는다. 무엇보다 가자미회, 회냉면, 아바이 순대, 오징어순대 등 이곳의 특미를 즐길 수 있는 점에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시내에 그런 옛 풍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랑호와 청초호 주변을 찾았을 때도 기분은 여전히 좋을 수밖에 없다. 일방통행 길은 호수를 한바퀴 에둘러 나 있다. 산책을 나선 속초시민들을 따라 호수 한바퀴를 빙 돌아본다. 호수 물밑으로 설악산이 교교하게 잠겨 바람결에 흔들거린다. 바람한 점 없을 때는 잔잔한 행복이 가슴속으로 밀려든다. 특히 속초 8경의 하나라는 범바위의 기암은 독특했고, 그 범바위에 조악하게 만들어진 영랑정은 영랑과 술랑, 안상, 남석이라는 사선(四仙)이 명경처럼 맑은 물에 취한 나머지 집에 돌아갈 생각을 잊은 채 무술 수련에 열중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걸 테마로 영랑호 화랑도 체험지(033-637-3400, 3500, www.hwarangdoexperience.com)를 만들어 놓았지만 평일에는 체험객들이 없다고 관리자는 불평이다. 내게 있어 그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저 이 잔잔하게 흔들거리는 호반 속을 유영하는 물그림자가 더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청초호 또한 매력적인 호수다. 주변에 엑스포 광장이 들어서고 여러 가지 개발이 되면서 날아들던 철새 떼도 사라져 가고 있다지만 가로등 불빛이 형형색색으로 물색을 뒤 흔들 때면 마음속까지 흔들린다. 특히 저 호수 너머 청호대교에 불이 켜지면 걸음을 떼기 힘들다. 호수를 에둘러 가을동화속의 아름다운 송혜교 얼굴이 담긴 팻말이 걸려 있다. 드라마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배우는 꽤 관심을 갖게 만들 소지가 있다. 청초호반과 속초시내를 한눈에 조망하기 위해 조양동의 선사유적지를 찾아 나선다. 시내를 불 밝히는 야경이 흔들거리고 청초호속에 잠긴 청호대교 불빛이 여행객의 심란한 마음처럼 흔들어 놓는다. 겨울바람이 차갑지만, 가슴속은 뜨거워진다.
겨울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새벽 5시 즈음 영금정주변을 배회한다. 속초8경이라는 영금정 일출과 등대의 불빛, 그리고 아직도 꺼지지 않은 해변 가로등 불빛, 24시간 불을 밝히는 슈퍼, 여명을 따라 부산하게 배에 오르는 어부들, 대구를 걸어 말리는 할머니들. 그들은 늘 같은 모습으로 해를 맞이할 것이다. 어쩌면 일상이어서 무표정하게 지나칠 일출이 힘차게 바다를 뛰어 오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이가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마음을 심란하게 뒤흔드는 것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내 마음속의 응어리일 것이다.
*별미집
사돈집(033-633-0915, 영랑동, 물곰탕)은 해장하기에 참으로 좋은 곳이다. 그 외 송도횟집(033-633-4727, 속초시 중앙동, 참가자미회), 감나무집(033-633-2306, 중앙동, 감자 옹심이), 함흥냉면집(033-633-2256, 금호동, 함흥냉면), 단천식당(033-632-7828, 청호동, 아바이 순대와 함흥냉면), 김영애손두부집(033-635-9520, 노학동, 손두부), 진양횟집(033-635-9999, 중앙동, 오징어 순대), 장사항 횟집 단지(www.jangsahang.com), 대포항, 동명항, 외옹치의 난전어시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숙박정보
설악 한화리조트(033-635-7711 www.hanwharesort.co.kr), 켄싱턴 스타 호텔(033-635-4001)등이 있고 숙박협회 속초시 지부(033-633-4471), 숙박협회 설악산 지부 (033-636-7050)에 문의.
주변볼거리:설악 워터피아(033-635-7700, www.seorakwaterpia.com)에서 물놀이를 즐겨도 좋고 테디 베어 팜 갤러리 샵(033-636-3680)도 가족들이 갈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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