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사그락 사그락 겨울바람에 휘날리는 눈보라, 너무 건조하고 맑아서 금방이라도 챙 하고 부서질 것 같은 마른 하늘빛, 총총히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 추위를 녹이려 피워 놓은 양철 드럼통 속의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너무나 추워서 손끝을 아리는 고통 등등. 헐벗어 썰렁한 산하를 보면 세월의 흐름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한다. 또 그렇게, 또 그런 날이 올해도 흘러가겠지 하는 비실용적인 생각들을, 힘찬 일출을 보면서 떨쳐 버리고 싶다.

일출. 힘찬 태양이 저 멀리 수평선을 박차고 힘차게 튀어 올라오는 해돋이를 꿈꾸면서 동해안을 찾는 사람들. 한해를 여는 시점에서 살아있는, 생동감 넘치는 해돋이를 보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다. 어쩌면 여행객들에게도 해돋이의 의미는 신년에만 국한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동해안 바닷가 어디에서나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형에 따라 보이는 곳과 아닌 곳이 있으며 유명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그중 필자가 일출이 괜찮은 장소를 하나 선정해준다면 물치항(양양군 강현면 물치리)이다. 물치리는 물치천과 쌍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는 속초와 경계를 두고 있는 마을. 물치천의 상류 계곡에 산재해 있는 매장된 철광석과 노천광석으로 인해 철성분이 흘러와 항상 물이 검다고 해서 물치리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물치리는 오래전부터 수십 척의 어선이 입항하는 포구였는데, 인근 대포항의 번창으로 어항이 침체돼 버렸다.
한동안 어항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대포항의 힘을 얻어 회센터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원래는 어민들이 난전에서 시작했는데, 몇 년 전에 번듯한 건물을 만들었다.
지금도 대포항보다는 이곳을 선호해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저 밋밋한 곳이었는데, 몇 년 전 이색 등대를 만들었다.

버섯등대와 물치항 일출

양양군 지역특산물인 송이(버섯)를 형상화 한 ‘송이 모양 등대’ 두 기를 만들었다. 버섯, 남근 형상인 붉은색과 하얀색 등대. 그 등대가 일출 포인트를 만들어 준다. 해는 조금씩 자리를 바꾸기 때문에 두 기의 버섯 등대를 사진에 담기 위해서는 위치 선정을 잘해야 한다.
현재 등대 진입하는 방파제 옆으로 거대한 모래무덤이 있어서 아름다운 겨울바다 모습을 가려버렸지만 그런대로 일출은 볼만하다. 두터운 구름층에 가려진 해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끝에 힘겹게 하늘 향해 바다 위를 튕겨져 오른다. 일출과 함께 물치항으로 발 빠르게 들어서는 고깃배와 바다에 둥실 떠있는 고깃배와 갈매기와 철새 떼가 일출 곁을 맴돈다.
일출 감상 후에는 싱싱한 횟감을 사고파는 물치항 구경도 좋지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양양 상설 시장을 찾는 것도 좋다. 양양장은 원래 5일장이었는데, 몇 해 전 상설장이 됐다. 예전부터 양양장은 영동지방에서 유일하게 그 규모가 컸다. 또
한 양양시장 중심으로 군 관내 북방에 3개소, 남에 2개소, 서방에 1개소가 있었을 정도로 활발했다. 특히 양양시장은 1919년 4월 4일부터 4월 9일까지 만세운동을 벌이기 위해 각면 부락에서 장꾼으로 가장해 물결치듯 모여들어 만세운동을 벌인 곳으로 역사에 기록된 장터이기도 하다.

양양시장의 정겨움

건물 뒤켠 난전에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난로를 피고 앉아 아침 추위를 녹이고 있다. 가을철 상설 시장에 갔을 때의 풍요로움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는다. 송이버섯 등 양양 각 산지에 흩어져 있던 지역 특산물을 난전에 팔고 있는 모습은 정겨움이 넘쳐났다. 당시 가을에 오면 감이 더 멋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잊지 않았는데 정작 ‘뾰족감’은 수량도 적고 생기를 잃고 흐물거린다. 올해 해걸이로 흉작이고 끝물이라서 그런단다. 머리를 꽁꽁 감싸고 난전을 펼치고 앉은 주름진 할머니 모습이 너무나 편안하고 넉넉해보여 친정어머니와 닮아 있다. 주름진 얼굴이, 추위에 얼어서 까맣게 변색된 손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강릉-주문진간 동해고속도로 이용-현남 나들목-7번 국도 따라 속초방면으로 올라가면 대포항 못 미쳐 우측에 물치항 어시장을 만난다. 양양 상설장은 양양읍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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