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밝으면 마음까지 새로워진다. 저 멀리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고 떠오르는 힘찬 해를 보면, 역동적인 모습에 가슴 속 불끈 힘이 솟구친다. 우리나라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해가 솟는다는 간절곶(울산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특별한 의미를 달지는 않았지만 1초, 1분이라도 먼저 볼 수 있는 장소라는 것에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해돋이를 보기 전날 밤 가장 가까운 곳의 숙소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간절곶과 인근하고 있는 진하해수욕장에 자리를 틀었다. 진하해수욕장은 필자가 태어나 처음으로 해수욕장이라는 곳을 찾은 장소다. 부산에 사는 지인이 아주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안내를 했던 것이다. 인적 끊어진 백사장 주변으로 에둘러 현란한 조명등이 불을 밝힌다. 여름철에만 물이 갈라져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곰솔 숲을 밝히는 야간 조명등이 파스텔 톤이다. 청보랏빛 등불은 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줄만큼 매혹적으로 길손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어설픈 몸매와 유행 지난 헤어스타일, 수영복을 입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해맑게 웃음 짓던 사진 속 필자는 이제 이곳에 없다. 20년이 넘은 이 시점에서, 당시 꿈꾸던 삶을 이루었는지, 상념에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속에 나란 존재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이미 저 만치 변한 모습으로 와있는 것 같다.
여명이 뜨기 전 간절곶 주변을 배회하면서 해돋이를 기다린다. ‘간절’ 이란 명칭은 먼 바다를 항해하는 어부들이 동북이나 서남에서 이 곶을 바라보면 긴 간짓대처럼 보인다고 해서 간절 끝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간절(艮絶)이라는 단어에 육지가 뾰족하게 바다 속으로 돌출 한 부분을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인 곶(串)을 붙인 것이다. 간절곶이라는 돌 표시석 주변은 다소 어지럽다. 형형색색으로 만들어진 간이 휴게동과 돌 표지석, 박제상 부인과 아이들이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됐다는 것을 표시해주는 돌조각, 힘 좋은 머슴 같은 조형물 등등이 공원을 장식하고 있다. 밤새 불을 밝히는 등대는 언덕위로 올라가 정작 일출 포인트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해돋이 포인트를 찾아 헤매다가, 지극히 평범한 바닷가 바윗돌에 자리를 잡고 두터운 안개를 헤치고 솟아오르는 일출을 감상하기에 이른다. 다행히 안개가 두텁지 않았는지, 둥근 해가 뽀시시하게 얼굴을 드밀며 인사를 한다.
해돋이는 이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막연히 사진 몇 컷 찍고 일어서는 일출 여행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해를 보고 나서는 바닷가 마을을 서성거리는 것은 기본.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천천히 차를 움직인다. 나사, 신암 등의 어촌을 만난다. 이곳 주변의 아침도 분주하다. 정박해있던 자그마한 고깃배가 드나들고, 낚시객들이 입질 잘되는 곳으로 모여든다. 무엇보다 어부들의 움직임이다. 얼굴에 세월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주름잡힌 노부부. 바닷가에 어설프게만 보이는 멸치덕장에서 고기를 삶고 말리느라 분주하다. 그들의 힘겨운 얼굴 너머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어느 바다 한 지점에서는 해녀들을 만난다. 마을 아낙들은 다 모여들었는지 20여명도 넘는 숫자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쑥을 뜯어 눈을 비비기도 한다. 겨울철에는 대부분 성게를 잡는데, 능력급이라서 경쟁도 치열하다. 서로 성게를 많이 딸 수 있는 물속을 찾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에서 삶의 현실을 바라본다. ‘이게 바로 삶인 것을, 누구나 비슷한 모습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하고 경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아침.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어촌의 아침, 그래서 힘겨울 때는 바닷가를 찾아 헤매야 하는 것인가 보다. 특히 새해 1월의 아침에는 말이다.
참고로 신년 일출 때는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고, 최근에 황금돼지와 거대한 우체통을 조형물로 가져다 놓고 일출 포인트를 만들었다.
■자가 운전= 경부고속도로-언양분기점에서 울산고속도로이용-울산시내에서 7번 국도 이용해 남쪽으로 내려가면 청량면에서 1081지방도 이용. 덕하에서 14번 국도 이용. 온양에서 1028지방도 이용해 동쪽으로 내려가면 진하해수욕장-간절곶을 잇는 31번 국도를 만난다.
■별미집과 숙박= 대송리-나사-신암으로 잇는 해안 길에 맛집과 숙박동이 있으나 멀지 않은 진하해수욕장 주변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우연찮게 찾아들어간 해물25시(052-239-2813, 팔각정 앞)는 뜨내기가 아닌 단골들이 즐겨 찾는 곳. 회는 물론 밑반찬, 매운탕도 맛있고 된장+참기름 넣은 양념장 등이 괜찮다. 숙박동은 유엔아이(052-238-8528)를 비롯해 잘 지어놓은 집들이 즐비하다. 일출 보고 난 후 조식으로는 다소 거리는 멀지만 고리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 있는 서울깍두기(051-727-3379)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가마솥 걸어 끓여낸 사골 국물과 깔끔한 김치류와 묵은지 등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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