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너무나 따뜻해 지루함이 느껴진다. 추워서 고통스러울지라도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지루해진 일상처럼 여행도 생동감이 없다. 너무나 익숙해진 여행지 운길산을 향해 새벽을 가르면서 달려간다. 색다름을 찾으려면 물안개나 운해나, 일출 정도는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양수리 주변에도 살얼음이 얼고, 간간히 산정에 쌓인 눈을 감상하면서 어슴푸레한 새벽 산을 향해 차를 돌진해 오른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천천히 걸어서 산행을 즐기고 싶지만 일출을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차량으로 산길을 오른다. 썰렁한 나뭇가지지만 겨울 산책은 싱그럽다. 하지만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오르는 발걸음은 무겁다. 겨우내 움츠리고 앉아 있는 탓에 생긴 운동부족증상이다. 절집 앞마당에 벌써 몇몇 사진가들이 진을 치고 일출 사진을 찍어댄다. 이른 아침 운길산을 찾았다는 한 쌍의 남녀. 서로 친구관계라는 그들은 광고계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염치없이 그들의 대화 속을 비집고 들어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내려와 수년 만에 왈츠와 닥터만이라는 전원카페를 찾는다. 이 카페가 생긴지 딱 10년이라는데, 필자도 이 집과의 인연이 10년이다. 당시에도 독특한 테마였다. 앤터니 홉킨스의 열연이 돋보이던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영화가 생각나게 하는 ‘올드 맨’ 지배인이 눈길을 끌었고, 100년이 가도 남을 만한 카페가 되겠다는 주인의 아집이 돋보였다. 10년이 지난 뒤에도 카페 외관은 똑같다. 아니 세월이 지나면서 빛이 바래져야 하는데, 그동안 커피 박물관(www.wndcof.com)을 개관하면서 다시 색칠을 한 덕에 딱 보기에 그대로였던 것이다.
박물관에 들어가 혼자서 설명을 듣는다. 까만색 정장을 입은 아가씨는 친절하면서도 정교하게 1시간 이상 커피의 역사, 일생, 문화 등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커피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호기심을 자아낼 정도로 멋진 설명에 기분이 좋아지고 절로 지적 충만을 들게 한다. 비록 집에서 멋지게 커피를 내려마시지는 않지만, 그저 이런 문화에 접해보는 것이 새롭다. 이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니, 보이지 않은 노고와 열정이 느껴진다. 커피의 역사는 브라질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지마(현재의 카파)라는 곳에서 양치기 소년 칼디가 숲 속의 빨간 열매를 먹고 흥분하는 양을 발견한 것이다. 가루커피는 커피콩 자체가 육안으로 보기에도 달라 보였다. 그리고 볶은 지 오래된 커피콩 향은 냄새부터 좋지 않았다. 특히 벽면에 커피를 즐겨마시던 대표적인 사람들의 얼굴이 걸려 있었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이상’이 있다. 그는 커피 마니아였고 실제로 다방을 경영했다고 한다. 이상의 연인 금홍이가 다방을 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베토벤, 모차르트 등 음악가와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 등,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어렵다.
이 박물관의 재미는 여러 가지를 보는 것 이외에도 직접 커피를 만들어 내려 마시는 일이다. 간단한 분쇄기와 블랜디드 커피와 모카커피를 받아서 직접 분쇄하고 드립해서 먹어보는 일이다. 이곳에서도 상식을 배울 수 있다. 신선한 커피는 뜨거운 물을 부으면 오븐 속의 빵처럼 한껏 부풀어 오르고 반면 오래된 커피는 흙에 물을 뿌린 것처럼 가라앉는다. 향기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것뿐 아니라 무엇보다 옥상에 만들어 놓은 커피재배온실이가 관심을 끈다. 붉은 열매가 다닥다닥 달려있는 커피나무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산수유처럼 붉은 열매 한 알 똑 따서 과육을 벗겨보니, 쓴 맛이 아니라 단 맛이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이 곳에서는 매주 금요일 밤에는 클래식 음악회를 연다. 순전히 클래식 연주가들만 초청해서 하는 연주인데, 수준 높은 사람들과의 교류는 입에서 입으로 번져 그들의 전용물이 된 듯, 인기를 누린단다. 음악회가 끝나면 야외에서 멋진 와인파티를 벌이니 절로 부부 사랑은 돈독해지리라.

■주변 볼거리= 운길산과 연계하는 대표적인 코스는 영화 ‘공동경비구역JSA, 취화선, 음란서생, 민속마을, 운당 세트장 등이 있는 종합촬영소(031-5790-622)가 있다. 그 외에도 정약용이 태어난 마현마을과 전시관이 있고 두물머리도 지척이다.
■찾아 가는 길= 팔당호-6번국도-팔당댐 팻말 따라 나와 구 길을 이용하면 된다. 양수대교 앞에서 새터를 잇는 45번 국도로 좌회전. 송촌 보건소 옆길로 좌회전-수종사 앞까지 운전이 가능하지만 가는 길 중간 중간이 험하므로 천천히 산행을 즐기는 것이 좋다. 다시 국도로 나와 새터 쪽으로 가다보면 종합촬영소다.
■추천 별미집= 45번 도로변은 환상의 카페촌. 음식점과 카페, 그리고 시설 좋은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송촌국민학교 앞에 있는 개성집(031-576-6467), 죽여주는 동치미 국수집(031-576-4020)이 있다. 운치 있는 카페로는 왈츠와 닥터만(031-576-0020)에서는 멋진 양식을 즐길 수 있으며 양수리의 오데뜨(031-772-6041)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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