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가는 길 ( 1 )] 낯선 사람과 낯선 중국 풍치에 빠져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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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가는 길 ( 1 )] 낯선 사람과 낯선 중국 풍치에 빠져들다
  • 중소기업뉴스
  • 호수 1637
  • 승인 2007.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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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배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면서 5박6일 동안 백두산을 다녀왔다. 가는 길목에 만나는 중국의 이국적인 모습과 그들의 생활상을 잠시 엿보고, 6월까지는 해빙이 되지 않는다는 백두산 설원을 보면서 민족의 정기를 한껏 들여 마시고, 더불어 고구려 역사 탐방을 마쳤다. 이색적인 풍치에 무료해진 삶은 새로운 활기에 넘쳐나고, 최대의 영산인 백두산의 설경감상과 고구려 역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 백두산 여정을 4회에 걸쳐서 소개하기로 한다.

# 인천항에서 단동가는 배

딱히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멀고 먼 기나긴 여정을 나선 것이다. 뱃멀미가 있는 필자로서는 감히 엄두도 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배에 올랐을 때는 순전히 ‘기우’였음을 알게 된다.
인천항과 단동을 잇는 배는 웬만한 파도에는 흔들거리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고, 상인과 여행객들이 뒤섞여 선실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다. 다행히 여행사의 특권(?)으로 많지 않은 주최자를 합해 총 17명이 선실을 통째로 이용하게 된다.
해외여행의 초보인 필자로서는 준비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스치는 인연조차 없었던 사람들도 여행이라는 같은 목적 덕분에 금세 친구가 된다. 책을 꺼내들었지만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찬밥이 돼 버렸다. 두 번 밥을 먹고, 샤워하고,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16시간이라는 시간은 전혀 지루함 없이 지나간다.
어설픈 몸짓으로, 그저 시키는 대로 일행을 따라 중국 땅에 발을 내딛는다. 우선 다르게 생각되는 것은 한자로 쓴 간판과 건물들이다. 마치 신성일과 엄앵란 주연의 오래된 영화의 포스터를 보는 듯한, 시대를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간 듯한, 유치한 느낌이 드는 간판이다. 연변 대학을 졸업했다는 40대 중반의 조선족 남자 안내원과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운전자가 기다리는 버스에 오르고 낯선 길을 달려간다. 생경한 풍광을 한 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시선은 차창 밖을 떠나지 못한다.
단동의 조선관(0415-3139919)이라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조선족 아가씨가 서빙을 하고 음식도 꽤 맛이 좋아 만족스럽다. 일행들은 여행에 들떠 독한 ‘고량주’ 한 배씩 돌리기도 하고 조선족 젊은 여성과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식당 앞으로는 압록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강 너머로는 신의주가 지척으로 다가선다.
차는 식당을 벗어나 중국인이 경영하는 청과물 상점을 찾는다. 차에서 먹을 군것질 거리를 사고 떠나자는 이야기다. 망고나 딸기, 포도도 있었지만 필자의 눈에는 자그마한 귤과 돌배 같은,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과일에 눈길이 간다.
한국말도 영어도 전혀 못하는 주인. 가격이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말로 두 근이 ‘알진’이라는 말을 새겨듣지만 그것도 이내 잊어버린다. 씨가 많아 마치 탱자 같은 느낌이 나는데, 약간 신맛이 나면서도 단맛이 있어서 텁텁한 입안을 상큼하게 해주는 ‘잎감귤’은 여행 내내 들고 다녔다.

# 백두산 가는 낯선 풍경

본격적으로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한다. 도대체 가늠할 수 없는 길. 유난히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중국인들. 붉은 지붕들, 대문 벽면에는 알 수 없는 한자가 쓰인 붉은 색 종잇장을 붙여놓았다.
전형적인 중국의 시골 농가다. 옥수수 밭이 주류를 이루고 산언덕에는 복숭아를 심는단다. 일행 중 한명이 안주를 구입한다는 이유로 자그마한 소읍에 잠시 차를 멈추게 한다.
개인행동을 할 수 없는 시점에서 적절한 시기에 차를 세워준 것이다. 덕분에 잽싸게 내려 소읍 사진을 찍어댄다. 석탄광이 있어서인지 소읍은 지저분했고 날씨가 흐려서인지 더욱 어둑해 보인다. 가난에 찌든 표정이지만, 순박해 보이는 얼굴들이 스쳐지나간다.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는 할아버지. 빨간색 삼륜차는 택시. 길거리에 난전을 펼친 아낙들의 얼굴은 보편적으로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고 치장하지 않은 채, 추위를 피하기 위해 두꺼운 옷과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는 모습들이다. 마치 우리나라 시골 동네 장터에 나와 있는 주름진 할머니들의 얼굴 같은 분위기다.
옥수수와 강냉이튀김을 사고 차에 오른다. 가미가 되지 않은 삶은 옥수수는 맛이 없었지만 사카린을 넣고 튀겨낸 강냉이튀김은 좋은 군것질 거리가 된다. 한참을 가다가 또 시골을 지나면서 차를 멈춘다.
일정에 없던 일을 일행 중 한명의 ‘센스’로 중국의 생활상을 잠시나마 엿보게 하려는 의도인 듯 하다. 염소 우리를 보고 있는데, 마을 주민이 나와 얼굴에 한 아름 웃음을 안겨준다.
제법 성장한 듯한 딸과 얼핏 보면 손자 같기도 한 어린 사내애의 눈이 엄마와 많이도 닮아 있다. 주유소는 대부분 ‘중국석유’라고 써 있었고 ‘가유점’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다.
화장실은 60~70년대처럼 재래식이었고, 그곳에 차를 멈출 때에도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직업의식을 버리지 못한다. 제복과 모자를 쓴 남자가 앞서 걷고 괭이를 든 아낙이 뒤를 따르는 모습, 자전거를 끌고 나온 어린 중국소녀의 수줍은 표정 등등.

# 통화역, 이도백하역을 야간열차로

그렇게 6시간 정도 달렸을까? 어쨌든 종착지는 ‘통화’라는 곳이었고, 차를 내리자마자 또 밥을 먹는다. 미아리 미식성(0435-3254788)이라는 곳, 1층엔 조선족 회갑연의 술판이 진해졌는지, 한국노래를 열심히 불러대고 있다. 마치 한국인이 관광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음식 맛은 보통이었고, 바쁘게 밥을 먹고 이내 스케줄대로 발 마사지를 받으러 간다.
실내는 매우 컸으며 길게 복도가 이어지고 양편으로 방이 마련돼 있다.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발마사지를 해준다. 일행 중 여자는 총 3명. 바지를 걷어 올리면 뜨거운 물로 일단 적셔주고, 서서히 손에 힘을 가하면서 혈을 풀어준다. 필자 파트너는 21살의 젊은이. 한국말은 ‘아파’와 ‘몰라’정도 수준. 중국인들은 영어 수준이 매우 얕아서 아주 쉬운 말도 알아듣질 못한다. 갑자기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최소한 기본적인 단어는 알고 왔거나, 적어 왔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발 마사지는 딱히 기억되는 것은 없고, 그저 뜨거운 사우나에 몸을 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장소를 이동해 ‘통화역’에 도착한다. 야간열차다. 제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 기차에 오른 것 빼고는 어릴 적 타던 완행열차와 별 다른 것은 없다. 흔들거리는 기차, 침대칸에 몸을 싣고 백두산의 초입인 이도백하역까지 대여섯 시간 정도 달려가야 한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와 칠흑처럼 어두운 차창 밖으로 희미한 불빛이 스며들고, 사락사락 눈이 내린다. 4원 하는 중국 맥주 몇 잔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주 잠시 잠을 청하고 이도백하역에 내릴 때는 이른 아침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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