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중국제품이 국내로 물밀 듯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중국산은 우리와 비교해 가격은 훨씬 싸지만 질은 그리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5년내 중국제품이 국내산을 완전히 대체할 것입니다.”
경기도 하남시 소재 한 중견 가구제조업체 사장의 말이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의 제품이 해외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시장에서 조차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임금, 임대료, 세금 등 제품 생산단가가 중국 등 신흥공업국과 비교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국내 제조업자들은 공장을 그만두고 업종을 바꾸거나 생산단가가 낮은 해외로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말 그대로 제조업 공동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업체 21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보면 조사업체의 44.1%가 이미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했으며 앞으로 신규 또는 추가로 해외이전을 계획하고 있는 업체도 전체 응답기업의 67.7%에 달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같은 산업공동화 현상은 많은 선진국에서 산업화 과정속에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경우 공동화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다.
정보통신(IT),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등 아직 뚜렷한 대체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제조 및 조립 공정은 물론, 연구개발 등 핵심영역까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LG전자는 중국 텐진에 R&D센터를 세운데 이어 베이징에 전자부문 총괄 R&D센터 건립을 준비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베이징 통신연구소 외에 텐진에 ‘가전 R&D센터’ 건립을 추진중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애국심마저 사라져 최첨단기술들이 해외로 빼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이 주요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게 되면 부가가치창출 능력이 사라져 수출기반이 무너지고 고실업률이 만성화되는 등 국가 경제의 뼈대마저 흔들릴 우려가 있다.
제조업 공동화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속도를 제어하라= 우선 지나치게 빠른 공동화 속도를 지연시켜 국내 전통산업이 첨단 대체산업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화 현상의 근본원인인 국내 제조업체들의‘고비용 저효율’생산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과 중국에 사업장을 가진 44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중국보다 산업현장의 체감금리는 평균 2% 포인트, 법인세율은 3.2% 포인트, 임금수준은 8배, 공장분양가는 4배, 물류비는 1.9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부분은 그렇다고 쳐도 다른 비용, 특히 인프라 수준을 가늠하는 물류비 조차도 중국에 뒤진다. 국내제품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것이다.
중소업계는 “정부가 우선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에서 시작해서 최근엔 PL보험, 선거철 각종 지원금 등에 이르기까지 늘어나는 준조세를 대폭 줄이고 기업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최근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주5일 근무제’가 가뜩이나 제조업을 기피하는 젊은 인력을 내몰고 인건비만 상승시켜 ‘고비용 구조’를 심화시킬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제품 차별화와 대체산업 개발을 = 공동화 현상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최종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제조업 공동화는 산업 선진국으로 가는 필연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중국 등 후발국가들이 할 수 없는 새로운 산업을 찾아야 한다. 신산업에는 고도화된 전통제조업, 유통·물류 서비스산업 등도 포함돼 있다. 비록 전통제조업이라해도 기술개발을 통해 ‘제품 차별화’와 ‘고부가가치화’에 성공했다면 후발국가가 이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연구원 송장준 박사는 “철강산업도시인 미국 피츠버그의 경우 80년대부터 90년대초까지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신흥철강 생산국 때문에 실업자가 양산되고 공장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면서 심각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겪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그러나 미국 정부는 실업자들을 재교육시키고 IT 등 대체산업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이를 자연스럽게 극복했다”면서 “우리도 인터넷, 이동통신 등 뛰어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산업부문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대체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이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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