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는 20세기 후반의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경이적인 일로 인식하고 있다. 1960년대에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그것도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불과 30~4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무역대국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성장과 발전은 철강, 화학, 자동차, 전자, 반도체 등 발전 잠재력이 큰 산업을 선택해 집중 투자하고 육성했던 결과이다. 차관을 들여왔고, 은행이나 보험회사에 예치된 국민들의 저축도 주요 기업에 집중 투자됐다.

대기업 경제 기여도 낮아져

당시의 대기업들은 어떤 의미에서 국민기업이었다. 정부 정책에 따라 대부분의 국내 저축과 자본이 선택된 소수의 기업들에게 투자됐다. 기업들도 단기적인 이익추구보다는 규모 확대와 매출액 성장을 목표로 설비투자와 해외시장 개척에 열심이었다. 고용도 지속적으로 확대돼 실업을 크게 걱정하지 않을 정도였다.
대기업들은 그야말로 ‘잘 살아보자’는 국민적 염원을 수용해 앞만 보고 힘차게 달리는 기관차였다. 국민과 정부가 힘을 모아 투자하고 밀어준 만큼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크게 달라졌다. 400%를 넘었던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은 100% 수준으로 낮아졌고 성장보다는 이익 중심의 경영이 대세가 됐다. 그 과정에서 170조원에 달하는 거액의 공적자금이 부실 기업에 지원되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고용은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이며, 투자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쟁력의 제고’, ‘기업지배권의 유지’ 등 스스로의 생존 유지가 최고의 화두가 됐다.
한편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매출액 성장률, 경상이익률, 종업원 임금 수준 등의 격차가 확대, 심화됐다. 세계 수준의 대기업들을 받쳐줄 중소기업의 기반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 때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반짝했던 벤처 붐도 지나가버렸다. 중소기업을 통해 고용과 성장을 촉진해야 함에도 현실은 밝지가 않다. 그래서 ‘대·중소기업 상생’의 문제가 대두됐다. 정부와 기업가 단체들이 ‘상생’의 해법을 찾으려고 온갖 지혜를 짜내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국가 자원·열정 中企에 쏟아야

상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살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대기업이 지원해 살리는 것인가? 그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기업과 더불어 중소기업이 한국경제의 또 다른 한 축으로 충분히 기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그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몇 몇 산업의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경제 발전을 이룩했던 그간의 방법과 결과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거국적이고 국민적인 성원에 의해 오늘날 세계적인 대기업의 존재가 가능했고 대기업 중심의 경제가 됐다.
중소기업이 경제의 활력을 주도하는 구조를 만들려면 과거 경제도약기에 대기업에게 그랬던 것 이상으로 국가의 자원과 열정을 중소기업 기반 강화에 쏟아 붇는 체계가 필요하다. 그 때에는 정부의 강한 주도력으로 인해 국민과 기업이 한 방향으로 합심하는데 별 걸림돌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원화된 사회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중소기업도 충분한 경쟁력을 지니는 구조로 가려면 곳곳에 뿌리내리고 관행화된 과거의 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 국회 정부, 법원은 물론 사회에 영향력 있는 모든 주체들이 합심해 중소기업 기반 강화를 위한 방안 마련에 지혜와 열정을 모을 때이다. 이미 형성돼 고착화된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열정과 치열한 추진력, 계획의 정교함이 준비돼야 한다.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