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생활 동안 냇가에서 자갈과 모래 등 건설골재 채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물채를 비스듬히 세워놓고 모래와 자갈이 섞여 있는 흙과 잡석을 퍼 부으면 자갈은 굴러 떨어지고 모래는 그물 밑으로 빠진다. 모래와 자갈을 구분해내는 작업이다. 당시로서는 시골 농가들이 농한기를 지나는 하나의 방편이자 중요한 소득원의 하나였으리라.
자갈치기는 시냇가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잡석을 건축자재로 전환시켜 주는 과정일뿐더러 골재의 역할과 기능에 맞게 제 자리를 찾아주고 용도별로 구분해 그 가치를 높여주는 비즈니스이다. 그러나 자갈치기는 별도의 작업공정을 거치지 않는 한 옥석을 가려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자갈치기 모습을 글로벌화 현상에 대입시켜 보자.
한국경제에 있어서 한미FTA 타결은 또 하나의 분수령이다. 주요국들과 FTA 협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한다는 전략이므로 우리 중소기업들이 글로벌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WTO/DDA 협상과 FTA 추진, 글로벌 소싱 및 투자의 일상화, 무역규모와 출입국자수의 증가,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문화 확산 등 제반 현상들을 감안해 보면 이 시대는 분명 글로벌 시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아직까지도 글로벌화에 익숙하지 않은 중소기업으로서는 변화의 고통을 감내하느라 힘들겠지만, 대한민국 중소기업이라면 글로벌 시대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수용, 기회로 바꿔 나가야 한다.

맷집과 비전 필요

글로벌화는 분명 경쟁을 촉진하고 투명성을 강화시켜 줌으로써 경제시스템의 효율을 높여 준다. 또한 자갈치기와 같이 글로벌 생존능력이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구분지어 주고, 세계경제 활동 무대에서 제자리 찾기와 기업 활동기반을 튼튼히 만들어주는 기능을 가진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아직도 글로벌 바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저 국내시장에만 묵묵히 몰두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태반이다. 대기업 납품줄만 끊어지지 않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이 어쩌면 최고의 목표인지도 모른다. 글로벌화 바람이 태풍으로 기업현장을 강타하고 있는데도 무감각하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는 듯 무대책으로 외면한다. 대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불어대는 글로벌화 바람인데도 대기업만 춥게 하는 바람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글로벌 체질이 희망이다

바람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은 아무리 미풍일지라도 기후를 바꾸고 생태계를 바꾸면서 상상도 못할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언제까지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글로벌화 바람을 모른 척 할 것인가?
대한민국 중소기업에게는 글로벌 무대에 적합한 ‘맷집’과 ‘마인드’, ‘비전’과 ‘스탠더드’가 없다. 중소기업이라 해 글로벌 시대를 따라잡기에만 급급해서는 생존 자체가 곤란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무대는 대기업이 나가 싸우는 곳이지 중소기업이 활동하는 무대는 아니라는 생각은 진작 버렸어야 했다. 그리고 덩치로 승부한다는 생각보다는 맷집으로 승부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했다.
그 동안 자금지원과 세금인하에만 목말라 하던 중소기업 지원제도가 글로벌 체질로의 전환을 지연시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일류를 만들기에만 급급했지 일류를 성취한 다음 그 일류를 지키는 일에는 늘 한계를 보여 왔던 지원정책이나 정부시각도 문제였던 것은 아닌지 이 점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선을 앞두고 모든 후보들이 앞다투어 중소기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5년뒤 임기말에 가서 다시 되돌아보면 지금의 상황과 무엇이 달라지리라 기대하겠는가?
이번 대선에서는 중소기업의 글로벌 체질을 확실하게 바꾸어줄 전략을 내는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하자. 중소기업이 글로벌 비전과, 맷집과, 마인드와, 스탠더드를 완벽하게 갖추어 나갈 수 있도록 타당성 있고도 실천가능한 공약을 내는 후보를 찾아보자. 분명한 것은 글로벌 중소기업이라면 ‘명품 중소기업’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장을 누비는 한국의 ‘명품’ 중소기업을 많이 만들어 낼 후보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박 문 서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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