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제는 이름만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중국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시황제는 아버지가 둘이다. 그의 출생은 꼬리의 꼬리를 문 비밀이다. 秦왕실의 서공자(庶公子)인 자초(子楚)와 秦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당대의 大商人 여불위(呂不韋)가 그 두 아버지며 이 여불위에 관해서는 本시리즈 (80)에서 이 얘기의 개요만을 소개했을 뿐, 두사람이 등장하는 시황제의 실부(實父)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본다.
秦의 소왕(昭王)때 태자(太子)는 안국군(安國君)이고 자초(子楚)는 안국군의 서출이다. 생모가 태자의 애정을 잃으니 그 애정의 배경을 잃은 자초가 趙의 인질로 보내졌다.
자초가 趙의 수도 한단(邯單)에서 불우한 인질생활을 하고 있을때 자초를 알게된 거상(巨商) 여불위가 자초에게 말했다.
“내가 거액을 투자해 당신을 秦의 국왕이 되는 太子를 만들겠다. 어떠냐?” 자초는 쌍수로 환영했고 여불위는 秦으로 가서 千金의 자금과 달변(達辯)을 구사해 국왕의 代를 잇는 태자책립에 성공했다.
한단(邯單)으로 달려온 여불위는 5~6개월전에 몸값을 치루고 데려온 무희(舞姬)에게 자초를 초청해 태자책립을 자축하는 술상을 주선하도록 했다. 여불위와 내연관계에 있는 조희(趙姬)라는 젊은 무희는 한단에서 알려진 미모의 여자다.
그런데 자초가 조희(趙姬)를 보자 첫눈에 반해 자기의 정실(正室)로 삼겠다며 간청했다. “나는 당신에게 千金을 투자했다. 장차 왕후(王后)가 되는 것이니 달라면 줘야지….’ 이렇게 생각한 여불위는 자초의 신분에 이용가치를 놓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여불위는 여자를 자초에게 헌상(獻上)했는데 여자는 이미 두달전에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으나 비밀에 붙였다. 여자는 예정보다 두달늦게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이것이 후일의 시황제이다.
시황제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일까. 子楚다. 呂不韋다 여론이 분분했으나 <史記>에 당시의 병법가 위료(尉瞭)의 시황제 풍모를 말한 대목이 기록돼 있다.
독수리 코에 눈은 길게 찢어지고, 가슴은 돌출해 맹금과 같고, 목소리는 늑대와 같다. 한강 중류 유역에 사는 중원(中原)지역의 한인(漢人)과는 용모가 딴판인 서역인(西域人)이며 야만인에 속한다.
이 위료의 말을 믿는다면 시황제의 실부는 子楚의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여불위(呂不韋)는 순수한 한족(漢族)이고 여자는 趙나라 사람이니 말할 나위가 없다. 이들 남녀 사이에 엉뚱한 서역인이 태어날 리가 없다. 그 당시에는 ‘유전자공학’이니 ‘유전자조작’이니 하는 ‘유전학’도 없었으니까.
시황제는 현대인에게 독재자로만 조명된다. 그렇다해서 독재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잘못이다. 자유사상이 만발한 오늘의 지구상에 ‘시황제 체제’는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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