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적지인 ‘집안시’까지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다.
또 지루한 차량 이동이 이어진다. 몇 시간이 걸렸는지는 헤아릴 수 없다.
석식으로 송아지를 잡아 놓았다는 연변학교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에 임박해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 단순성이 끝내 뚝방 터지듯이 물길이 되어 솟구친다.
전구 촉수 흐릿한 운동장에 차려 놓은 송아지 요리가 어떤 맛인지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두운 학교운동장에서 늦은 저녁

이미 지리한 이동거리에 신물이 나 있었고, 쉴새 없이 흘러나오는 관광버스 타고 여행하는 할머니들의 뽕짝 노래도 견딜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차 안에서 홀짝홀짝 냄새 독한 고량주 한 병을 이미 다 비운 상황. 촉수 낮은 불빛이 얼굴을 가려줄 수 있으니, 차라리 당시 순간에는 도움이 될 일이다.
사람들이 숙소로 자리를 옮기는지도 관심갖지 않을 정도로 취기가 올랐고, 어느 가이드가 억지로 데리고 왔다는 것도 그 다음날 들은 이야기다.
술기운에 주최자 몇 사람과 맥주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갔던 것 같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할 수 없고, 단지 혼자 빠져 나와 여리디 여려 보이는 술집 아가씨를 앞에 두고 말 한마디 못 하면서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호텔 앞에 있는 잔디밭에 쓰러져 하늘을 쳐다본 것과, 호실을 기억할 수 없어서 말 안통하는 중국 안내원을 통해 방을 찾아간 기억이 흐릿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요주의 인물’을 책임지기 위해 고구려 여행사 사장(019-204-0893)은 문앞에서 째려보고 있었고, 그리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제멋대로인 룸메이트 때문에 잠을 설친 이웃집 아주머니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순수한 분이다.
고생고생 하면서 처음으로 중국여행을 왔고, 일 많이 해서 관절이 좋지 않다는 그녀는 3일간 룸메이트를 하면서도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배움이 약해도, 잘살지 못해도 어쩌면 이런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네 정서인 듯하다. 돌아와 사진인화를 해주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달랬다.
다음날 일정은 장수왕릉, 광개토왕릉, 벽화 등등. 봄에 왔던 그 코스 그대로다. 집안의 특징은 북한 만포와 가깝게 있다는 점이다.
땡볕이지만 유람선(1만원)을 탄다. 가이드의 ‘만만디’라는 말을 철저히 지키려는지 배 안내원은 바람한점 불지 않은 압록강변을 천천히 달려간다. 배에 오른 사람들은 또 말이 많다. ‘달려라’하는 사람, 사진 찍으면 총쏜다는 말 등. 봄철 일행이었다면 가려 줄테니 열심히 찍으라고 했을텐데, 참으로 야속하다.
어쨌든, 만포마을이 지척이다. 물장구치며 노는 어린아이, 빨래 하는 아낙 등등. 강변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라가 바뀌고, 삶의 수준이 바뀌는 것은 더 이상 논하지 않으련다. 집안의 아리랑 쇼핑센터에서는 북한산 참깨와 참기름 등 농산물과 압록강변의 아이스 포도주라고 할 수 있는 압록강 포도주를 판매하고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관절을 무시하고 보따리보따리 참깨를 산다.
봄철 못 샀던 광개토왕비 돌장식을 사들고 점심을 먹으러 조족소고(6228575)라는 곳에 들른다. 화로에 석쇠를 얹고 평상같은 곳에서 먹는 소고기 요리가 매우 친숙하다. 양고기 꼬치맛에서 느껴지는 소스도 이제 입맛에 길들여져 괜찮다.
거기에 느릅나무 등 갖은 약재를 넣고 만들어낸 약국수 또한 별미다. 더운 것이 흠이지만 이번 여행길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점이다.
그렇게 집안을 벗어나고 ‘단동’에 다시 도착해 평양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할 무렵에는 지치고 힘겨워서 밥조차 넘길 수가 없었다.
무리에서 비껴 앉아 맥주와 냉면 하나 시켜 놓고 있는데, 카메라 덕분에 앞자리에 앉은 젊은 손님석에 합류하게 된다.
만주족이면서 한국어를 전공한다는 젊은이는 ‘모르게탱’만 외치고 정작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데, 그 앞에 앉은 귀여운 아가씨가 온전한 서울말씨로 한국어를 묘사한다.
많은 단어는 아니었지만, 말귀는 다 알아듣는 것을 보아 꽤 수준급인데, 긴 생머리와 진하고 긴 속눈썹이 아우러져 묘한 매력을 풍겨낸다. 그녀는 순수 한족이라고 하고, 나이는 19살이라는데, 약간은 성숙해보인다. 그녀는 맥주 한잔을 마시고 이내 담배도 문다.
그것이 특색이라서 염치불구하고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고개를 약간 돌리고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이 더 홍당무가 된 듯 수줍어 한다.
그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일정상 또 부리나케 은행원호텔(0415-2106888)로 이동했고, 길고도 긴 중국에서의 마지막 하룻밤이 지나간다. 2만원이면 전신마사지를 해주는데, 시간이 늦어서 아예 호텔까지 출장을 나와 주었다. 온몸은 굳어 버렸고, 바쁜 일정 탓과 지친 몸으로 인해 기분은 한없이 내려앉는다.
그렇게 긴 중국여정이 끝이 난다. 이제 다시 대련으로 돌아가야 한다. 짐을 정리하고 호텔 밖으로 나와 골목을 기웃거려 보니 새벽시장이 서고 있다.
제법 큰 새벽시장은 생동감이 넘친다. 옥수수, 자두 등 농산물이 즐비하고 해산물도 바닥에 널브러져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맛있는 복숭아를 흥정하면서 산다. 사진기를 들이밀 때는 인상을 쓰던 상인도 복숭아 사면 얼굴에 해맑은 웃음을 지어준다.

세련되고 깨끗한 대련 시가지

어쨌든 중국땅 몇 번 밟으면서 물건 정도는 사고, 덤 달라고 할 정도가 됐으니, 하면 할수록 요령이 늘어난다는 것이 실감나면서 한편으로 기특하기도 하다.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대련에서 성해광장을 가기로 했지만 일정상 포기하고 사람들이 쇼핑센터로 들어간 사이 시장을 기웃거려 본다.
대련은 중국에서 만난 도시중에서 가장 깨끗했다. 주로 의류 OEM제작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하니, ‘짝퉁’이 아닌 ‘진품’ 시장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대련만 찾아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다. 그곳에서 만난 김동연(0411-8273-2319)씨는 매우 달변가였다. 나름 전문적인 일을 했다는데, 언젠가는 중국여행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어쨌든 길고 긴 여정은 배안에서 나만의 공간에 들어올 때까지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배안에서도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번 여행길에 느낀 것이 또한 많다. 어차피 입에 맞는 떡은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여행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본다.
오죽했으면 인천항에 도착했을 때도 인파를 피해 도망 나와 버렸겠는가? 그래도 난 그들을 위해서 연 이틀을 세워가면서 사진을 정리해 주었다. 그것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을지언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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