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왜관이라는 지명이 왠지 낯설다.
딱히 눈여겨보지도 않았고,
관심을 가질 만한 여행지도 없었다.
단지 대구 팔공산을 가려면 거쳐 지나치던 곳.
그곳으로 늦가을 여행을 떠난다.
큰 기대도 없었고, 목적도 없다.
칠곡에 대한 정보는 그저 백지장과 같다.
떠나기 전에 잠시 읽어 본 칠곡여행에 대한
정보 또한 관심을 끌만한 것이 없다.
계곡이 일곱 개여서 칠곡(七谷)이라고 불렸다는 것인데
정작 지명의 한자는 漆谷이라는 옻칠자를 쓴다는 점이다.

베네딕토 수도원에 불이 난 모습을 보고

이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것조차 목적에 없었으니 여행은 차분하게 이뤄진다. 바램이 없으니 여행도 잔잔하다.
유난히 맑은 가을 햇살이 고층 건물 많지 않은 왜관 읍내를 맑게 비쳐주고 있다. 첫 코스로 성 베네딕토(http://osb.or.kr) 성당을 찾는다. 카톨릭 신자가 아닌 필자에게는 그저 성모마리아 상과 기도하는 방법이 떠오를 뿐이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천염천’에 나왔던 아토스 섬에서의 수도자의 이야기와 감명깊게 보았던 영화 ‘신의 이름으로 가라’의 미성의 성가가 아련히 떠오를 뿐이다. 일반인들에게 문턱을 낮추면서 시작된 듯한 피정의 집 등 국내 천주교 박해를 받던 시절, 그 흔적은 제법 많이 봐왔기에 성베네딕토 성당 또한 그것이 원천이 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웬지 일반인들에게 문턱이 높을 것 같은 수도원. 수도사만 거하고 있는 곳이다. 절집에 비하면 비구승인 것이다. 여느 곳에서 보아왔던 성당보다 소박하다. 하늘 향해 치솟은 건물보다 약간 낮게 지은 듯한 붉은 벽돌 건물. 텅비어 있는 건물 앞에 있는 감나무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져 낙엽을 만들었다. 석물을 팔고 있는 건물에서 얼굴 해맑은 남자분이 걸어나와 낙엽을 정리한다.
일반인들과는 다른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앞서면서 왠지 낯선 길을 가듯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그동안 봐왔던 성당의 느낌과는 약간 다른 생각이 든다. 맑은 하늘과 해맑은 수사의 얼굴이 서로 아우러져 마음까지 청아해지고 행동까지 조신해진다.
그동안 필자가 봐왔던 성지의 건물들은 건축형식들은 대부분 한눈에 봐도 멋지고 우아하면서도 장엄했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느낌은 없다. 어쨌든 이 수도원은 1909년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으로부터 5명의 수도자가 서울에 파견돼 교육사업을 펼친 것을 시작으로 건립됐다.
2006년 국보급의 귀중한 그림 여러 점을 포함해 조선 중기의 대표적 화가인 겸재 정선의 그림 21점이 80년 만에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이곳 수도원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그날 원장 수사를 운좋게 만날 수 있었다. ‘인’씨 성을 가진 신부의 이름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인 신부는 처음에는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지만, 궁금증을 해결할 정도로 정리정돈을 해주었다. 수사들이 거한다는 건물로 들어섰을 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불이 난 것이다.
겉모습은 시멘트지만 건물을 지을 당시 목조였는데, 정확한 화재원인은 그저 전기 누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무들은 검게 탄채로 기둥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었고 하늘이 보일 정도로 펑하니 뚫려 있다.
신기한 것은 한 수사가 기거하는 벽면에 십자가 부분이 하얀색으로 변색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계단을 따라 원장의 발길을 따라가면서 이 정도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인명피해가 없었다니 말이다. 이 수도원은 순전히 자급자족. 모두 각자 하는 일들이 정해져 있고, 외부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기도 한단다. 그 돈은 공동으로 똑같이 나누는 것이 기본 원칙. 지금 이 상황에서 한사람의 기금이 얼마나 필요하겠는가. 일부는 보수공사를 하고, 새로 지어야 할 숙제가 언제쯤 이뤄질지는 모를 일.
집이 불탔으니 빨리 복구해서 비가릴 수 있는 집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알지 못해 많은 질문 못했지만, 그런대로 그들의 속살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게, 해준 원장 수사. 얘기를 하면 할 수록 유머가 넘치는 화술에 문득, 그의 성가를 듣고 싶어진다. 미사는 물론이고 피정도 가능하다. 기금모금(054-970-2000)

가실성당에서 만난 독일인 현익현 신부

장소를 옮겨 가실성당(054-976-1102, www.gasil.kr, 칠곡군 왜관읍 낙산 1리)을 찾아 나선다. 자그마한 시골마을 안에 건물의 첨탑이 모습을 보인다.
뒷길따라 성당안으로 들어서는데, 이곳 역시 한눈에도 겸허함이 느껴지는 붉은 색 벽돌 성당, 신고딕 건축양식을 띄고 있다. 성당 마당에서 손님을 맞이한 사람은 한국인의 얼굴이 아닌 이방인이다.
이미 본당에서 들은 현신부의 이름. 그곳에 가서 차 마시라고 했었는데, 그저 현 신부라는 말에 한국인인줄 알았다가 예상치 못한 외국인 신부를 만나게 되니 초긴장이 된다. 한국에 온지 29년이 되었다는 현 신부는 유창한 한국말을 했지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자함, 청아함 등등,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되고 있다.
본명이 바르톨로메오, 출신지역은 프랑크푸르트, 현재 나이는 67세. 성당과 사제관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348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는 한국말로 가실성당에 대해 정교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를 제시해주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모델 역할까지 해준다. “힘드시죠”라는 말에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미소를 띤다.
현 신부는 이 성당에 유래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현 신부가 이야기 해준 숫자를 기억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 가실성당은 1894년 9월경에 설립된 경상북도 지역 초기 천주교회란다.
이곳 마을을 선택한 것은 수로가 발달되던 시절이었으므로 인근 지역(성주, 선산, 문경, 상주, 함창, 군위, 안동, 예천, 의성, 김천, 거창, 안의 등 경상도 북서부 일대와 충청도 황간, 전라도 무주 등)을 순회하려면 이동이 변한 강변쪽을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근 낙동강 줄기를 따라 오가는 소금배를 타고 선교사업을 한 것이다.
어쨌든 그후 가실성당은 여러 신부들을 맞아들이며 성당을 증축하는 등 발전하다가, 1901년에 김천에 본당이 설립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교세가 위축돼 현재에 이르고 있는 곳이다. 1943년 제6대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몽 신부 때 이름을 바꾸어 낙산본당으로 불렀다가 2005년 가실성당으로 이름을 되찾았다.
성당안으로 들어서면서도 설명이 이어진다. 새로운 사실 하나, 이곳은 영화 신부수업(권상우, 하지원 분)의 촬영지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 영화를 재미는 없었지만 분명히 보았다. 그 촬영지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곳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어쨌든 성당안에서도 현신부의 설명은 이어진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태도에 감히 사진만 찍는 것으로 무성의할 수가 없다. 오랜만에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를 경청한다. 스테인글라스로 만들어진 그림은 한마디로 문맹인 한국인을 위한 ‘그림 성경’인 것이다.
성당을 비껴 사제관으로 간다. 유럽식 프랑스풍이라는 건물. 살림집으로 이용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아이들의 일기가 걸려 있고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문을 잠궈 놓은 전시관에 열쇠를 돌린다. 그곳에는 역대 신부의 사진은 물론, 그동안의 흔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두었다. 포도주를 만들어 먹던 흡착기를 비롯해 국내 최초의 한글 성경 등등. 어찌 그 긴 세월을 몇 글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일반 여행객이 왔을 때, 현신부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의 멋진 설명을 못 듣는다면, 그저 성당 한 채 보고 마는 것 아닌가. 단체가 오면 설명을 해준다는 말. 그 단체수는 말하지 않았지만, 꼭 단체를 만들어서 설명을 듣는 것이 좋으리라.

구상 문학관에서

칠곡의 대표적인 문학가 구상선생을 찾아 나선다. 왜관읍내에 있는 문학관(2002년 10월 22억원 투자)개관은 겉으로 보기에도 많은 돈을 투자한 것을 읽을 수 있다. 선생의 인생이 영상화되어 자르르 흘러간다. 구상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함경도에서 자랐지만 본적은 왜관이다. 해방후 어머니를 따라 월남했다가 한국전쟁 때 피난와서 자신의 신앙에 따라 성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던 왜관에 자리를 잡았다.
앞서 말한 성베네딕토 수도원의 역사와 함께 흐르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한때 신부가 되고자 했다는 내용도 영상을 보면서 알게 된 내용이었다. 폐결핵을 앓았고, 의사와 결혼했다는 것도 영상자료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부인이 왜관에서 순심병원을 했다는 것 등등. 왜관에는 ‘순심여중고, 순심의원 등, 순심이라는 이름이 많은 연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단지 궁금할 뿐이다. 어쨌든, 이곳에서 그의 여생을 보내고, 작품활동을 했다.
그가 작고한 후 선생이 거처하던 관수재(觀水齋)와 부인이 운영하던 순심 병원자리에 들어선 2층짜리 현대식 건물을 지은 것이다. 아쉽지만 옛 건물을 허물고 지었다는 점이다. 어쨌든, 무수히 많은 책들은 도서관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많다.

칠곡의 다른 볼거리들

사실 원고를 쓰다보니 얘기가 길어져 버렸다. 왜관에도 나름대로 눈요기를 줄 수 있는 풍치가 아름다운 곳들이 있다.
팔공산 줄기에 있는 송림사다. 가을 운치가 물씬 풍겨나는 송림사(동명면 구덕리)다.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중국 진나라에서 귀국한 명관이 가져온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 고려 고종, 조선 선조 때 몽골군과 왜병에 의해 불에 탔다 조선 숙종 12년(1686년) 기성대사에 의해 대웅전과 명부전이 중창됐다.
또 한군데는 가산산성(가산면 가산리)이다. 진남문(영남제일문)이라고 써 있는데, 문경 옛길과 어떤 연계가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진남문은 ‘가산산성’을 둘러싼 가장 남쪽 문이다.
동명면 ‘송림사’에서 팔공산 한티재를 향해 오르다 중간쯤 자리 잡은 이 산성은 거대한 돌성이다. 팔공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10㎞ 떨어진 가산(901m)을 에워싸고 있다.
칠곡(漆谷)이란 지명도 7개의 봉이 7개 골짜기를 이룬 가산을 칠곡(七谷)이라 한 데서 유래한 만큼 가산은 칠곡의 진산이다.
이 성은 내성과 중성, 외성을 갖추고 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인 조선 인조 17년(1639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이명웅이 성을 쌓기 시작해 숙종, 영조 17년(1741년)까지 무려 100년에 걸쳐 완성한 총면적 19만 4천436㎡의 거대 규모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티 순교성지(동명면 득명동)가 있다. 이곳은 왜관읍내의 성베네딕토 성당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조선시대 가톨릭 신자들이 끊임없는 탄압을 피해 화전을 일구고 옹기와 숯을 구우며 한데 모여 살면서 정착한 곳이다.
특히 이곳에 정착한 뒤에도 수차례 관의 습격을 받고 많은 신도들이 순교했는데, 이 때문에 ‘한티 성지’로 일컬어졌다. 높이 14m의 대형 ‘십자고각’ 뒤편으로 을해박해(1815년), 정해박해(1827년) 동안 순교한 33기의 순교자 묘, 피정의 집, 숯굴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신나무골과 더불어 순교자의 정신을 되살리고 피정을 위한 순례지로 유명하다. 인적 뜸한 이곳의 늦가을 정취가 아름답다.
또 하나 칠곡에는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다. 바로 다부동전적기념관과 왜관 기념관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다부동.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의 승리와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81년 세운 전승기념관. 높이 25m의 기념비와 탱크 모양의 전적기념관, 전쟁 당시 사용했던 장갑차, 중화기, 소총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 외에 낙동강변을 사이에 두고 경비행기 체험(054-553-2679)도 가능하다.

■자가운전:중부내륙고속도로-김천분기점에서 경부선 이용-왜관나들목으로 나가면 된다. 각각 여행지를 찾아다니면 된다.
■별미집과 숙박:왜관읍내에서는 개성평통 보쌈(054-976-5353)집과 정통활어회 이어도(054-971-2900, 왜관성당 맞은 편), 칠일곱창(054-972-7521, 구상 문학관 근처) 등을 찾았다. 특히 칠일곱창집은 허름한 선술집분위기로 소시민들을 만족시켜 주는 집이다. 또 한군데는 도개온천 근처에 있는 방앗간을 개조한 순대집이다. 온천골 순대집(054-975-5662)인데, 아바이 순대와 비슷하다. 숙박은 송정자연휴양림(054-979-6600)이나 읍내의 모텔을 이용하거나 피정의 집을 활용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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