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다지만, 낯선 타국을 혼자서 돌아다닌 것이 뿌듯하다.
거기에 아무 준비도 없이, 술이 덜깬, 몽롱한 상황에서 말이다.
이것은 직업에 대한 연륜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너무나 미흡한 언어력에 나 자신이 화가 나지만, 이제부터라도 시작하면 될 일 아니겠는가.
혼자서 괜히 흐뭇하다. 고생하지 않아도 일이 술술 잘 풀리는 ‘운 좋은 여자’임을 생각하니 싱글벙글이다.
이제 홍콩에 머물 수 있는 마지막 하루가 남는다.
이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나서기는 동행했던 선배와 함께였다. 하지만 침사추이의 페리호를 타면서 약간의 언쟁이 있었고, 결국 따로 가자는 말에 또 혼자가 되고 말았다.
전날 마카오 건은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아직은 혼자 여행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하고 딱히 가볼 곳을 결정한 것도 없다. 워낙 복잡한 시내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데다, 쇼핑도 목적이 아니니 말이다.
일본인들이 서울 명동 거리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여행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필자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전날처럼은 긴장되지 않는다. 홍콩섬 가려는 페리호를 타려는데, 표 끊는 곳에서 또 막히기 시작한다. 유람선 타는 곳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안되는 손짓발짓 해가면서 물어봤더니 관광안내소(Hong Kong Tourism Board, 85225081234, DiscoverHongkong.com)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말 조금 한다는 안내원은 필자가 원하는 것들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표시까지 해준다. 예를 들면, 수상가옥이 있는 마을을 가고 싶다, 쇼핑을 싸게 할 수 있는 거리가 어디냐? 완탕 잘하는 집은 어디인가 등등. 한글로 된 안내책자도 주고, 지도에도 잘 표기해주고 수상가옥이 있다는 아버딘 가는 버스 노선도 친절하게 체크해주고 홍콩섬 가는 방법도 말해준다.
정작 페리호는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안내원에게 지도를 보여주었더니 잘못왔다면서, 그 또한 친절하게 타는 장소까지 안내해준다.
그는 한국은 넓고 홍콩은 좁다고 말했는데, 필자에게는 한국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바다를 건너고, 도심을 걷고 되물으면서, 버스 정류장에서 ‘아버딘’으로 갔다.
수상가옥은 볼품이 없었고, 사람사는 모습도 우리나라 어촌보다 훨씬 가난해 보인다. 몇몇의 아낙들이 수다를 떨면서 잔 새우를 다듬고 있는 모습, 싱싱한 고기를 그릇에 풀어 놓는 것, 배를 타고 유람하거나 낚시하라는 유혹 등등. 그 옆에 제법 멋진 공원이 만들어 있지 않았다면 바닷가 마을은 초루하다.
이곳에서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배들이 있다. 다시 길을 묻고 되돌아 나와 ‘란 콰이퐁’ 거리를 찾아 나선다. 이 거리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맥주거리라는 정보를 얻었기에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센트럴 파크를 중심으로 대충 버스에서 내렸지만 하늘 향해 높이 치솟은 건물들이 들어선 번화가는 어지럽기 짝이 없다.
금융가와 쇼핑몰 등등. 어쩌면 가장 복잡한 지역인 듯하다. 차터 가든(Chater Gardens)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복잡한 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동상이 있었으며, 한눈에 봐도 무슨 연혁이 있을 것 같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길을 묻는다.
란콰이퐁이 어디냐는 것인데, 자그마한 키, 그다지 거부감 없는 동양인의 영어 실력은 초보자의 귀에도 익숙하다. 뭐라고 길게 이야기 하더니만 이해를 못하는 듯하니 간단하게 ‘팔로우 미’라고 손짓한다. 15분 거리를 안내해주겠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다. 영어실력 약하지만 궁금한 것은 다 묻는다.
결국 신상조사다. 나이 40살, 기혼, 현재 호텔에서 서양요리를 하는 전문 요리사. 그의 인물사진을 찍어주고 메일을 주고 받는다. 아직까지 보내지 못한 것은 짧은 영어실력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어쨌든, 그에게 감사표시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극구 사양하고 떠났다.
란콰이퐁 거리는 거리는 그다지 색다르지 않다. 완탕을 잘한다는 거리는 도저히 찾기가 힘들다.

대신 죽이라는 표시가 아마도 완탕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고, 점심시간에 줄을 서고 있는 한 식당을 찾았다. 번호표를 받아야 될 정도로 유명한 집. 기대가 된다. 사람들 틈에 겨우 비집고 앉아 죽 한그릇을 시킨다. 아마도 회사원인 듯한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먹은 음식을 가르켰고, 소고기 대신 치킨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그들이 먹는 야채를 추가했다.
중국은 모든 것이 개개로 시켜야 한다. 한국처럼 넉넉한 인심은 없는 것이다. 완탕은 생각보다 맛이 별루였다. 생강냄새가 많이 났고, 잘게 자른 닭살이 아니었던 것이다. 메뉴 선택을 잘 못한 것이다. 어쨌든 식당을 나와 거리를 잠시 배회하다보니 향을 피우는 자그마한 신전이 있다. 도심속에서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고, 매우 길다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결국 너무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침사추이로 쇼핑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사실 명품 브랜드 이름도 모르고, 너무나 유명한 곳들은 아무리 면세라고 해도 살 수 없는 형편. 복잡하기 이를데 없다. 서울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다. 골목은 비슷비슷하고 무수한 식당, 쇼핑센터 등으로 만들어진 길들은 헷갈리며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길들의 중심축이 되고 있는 캐너반 로드(Carnarvon Road), 캐머론 로드(Cameron Road), 그랜빌 로드(Granville Road), 킴벌리 로드(Kimberly Road), 너츠포드 테라스(Knuts ford Terrace) 등등.
관광 안내인이 그랜빌 로드쪽으로 가면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저 겉모습은 비슷할 뿐. 피곤하다. 화장품이 싸다는 ‘사사(Sa Sa)’라는 곳에 들러 몇 가지를 구입하고 나서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도심탐험은 한발자욱도 뗄 수 없고 말도 하기 싫어진다. 결국 말 한마디 안하고, 혼자가 되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발견한 너츠포드 테라스의 계단. 제법 운치가 있다. 그곳을 올라가보니 서양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등. 그곳에 앉아 맥주 한잔에 간단한 음식을 시켜 먹고 싶다. 하지만 선뜻 자리를 잡지 못한다. 새벽 3시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반가격 할인을 한다는 羽스시(www. hane-sushi.com)에 앉아 밥을 먹는다. 연어알은 느끼하고 회는 잡냄새가 나지만 된장국은 일미다.
스타벅스에서 또다시 커피를 사고 골목길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한참을 앉아 있었고,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여인네를 따라가 전신마사지를 받고 예상 시간보다 일찍 호텔로 돌아온다.
돌아와 호텔 근처에서 눈여겨 보았던 金滿都(853-26460402)라는 식당에 들러 못다 먹은 국수를 시킨다. 국수를 튀기고 해산물을 올린 메뉴. 가는 국수면을 튀겨내 고소하고 새우살, 오징어 등이 들어간 덮밥 형태의 음식이 제법 맛이 좋다.
이내 호텔에 맡겨 놓은 짐을 챙기고 공항가는 버스에 오른다. 드디어 공항. 새벽까지 긴 시간을 기다리면서 잠을 잤고 비행기에 올라서도 내내 피곤에 겨워 잠이 들었다. 4시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12시간이 넘는 유럽 여행도 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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