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을 여행목적지로 삼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국인들이 한번쯤 가봤음직한 여행지는 필히 가보겠다는 생각이었고, 그중 한군데가 우선 동남아였다. 특별한 기대감 없이 그저 아열대지방은 어떤 곳인가를 눈으로 확인하는 정도로 끝을 낼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바다. 태국 여행에서는 간간히 즐거움과 틀에 박힌 여행지의 지루함이 교차하긴 했다. 다음엔 자유여행을 통해 방콕 시내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못다 먹은 길거리 음식과 파타야의 스트리트 워킹을 하면서 태국 사람들의 삶을 깊숙이 엿보고 싶다.

*방콕 아침 전통 재래시장 모습에 반하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8시 50분 경에 비행기에 오른다. 태국까지 소요시간은 5시30분. 홍콩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전날 계산된 과음을 했다.
몸을 지치게 하면 기내에서 금새 잠이 들 것이고, 지루함 없이 방콕의 쑤완나품 공항에 도착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내에서 옆에 앉은 젊은이와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을 주지는 못할 정도로 길어졌다. 현재 프로골퍼이면서 대학생이라는 22세의 젊은이는 목포 사투리를 강하게 섞어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요새 젊은이답지 않게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특히 한참 연배인, 어른한테도 스스럼없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현지에서 필요한 태국어도 가르쳐 주었고, 해야 할 여행 상품도 골라 주었으며 먹거리, 과일 등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귀엽게 생긴 그와는 공항에서 헤어졌다.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잠시 혼란에 빠졌다. 여러 여행사의 피켓들 사이에서 정작 필자가 신청한 여행사만 눈에 띄지 않은 것이다.
이리저리 헤매면서 이곳에서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함이 스쳐지나가면서 그제서야 태국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한 것이다.
다소 늦게 나타난 최제원 현지 가이드(HP:081-812-4423)는 예상시간보다 비행기가 일찍 도착했다고 변명했지만 여행내내 그는 어메리칸 타임을 지켰다. 늘 손님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게 했는데, 그렇다고 늦지도 않았으니 딱히 할말은 없게 만들었다.
그는 설명도 많이 아껴가면서 하는 바람에 정보를 구하는데 눈치를 봐야 했지만 다른 가이드와 달리 여행객 입장을 생각해주는 덕분에 옵션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본인이 손님 입장이 되어 필요치 않는 것은 권하지 않아 그의 진가를 높혀 주었다.
어쨌든 방콕은 한국시간보다 2시간이 늦다. 방콕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경. 날씨는 약간 후덥지근했지만 우리나라 한여름보다는 훨씬 시원했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유는 바로 이곳도 건기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열대 몬순지역으로 건기, 우기, 하기로 나누는데 지금이 건기(11월-이듬해 2월경까지)로 여행하기에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방콕 팰리스호텔(662-253-0510)이라는 곳에 도착해 잠을 청하고 이른 아침, 창밖으로 몇 개의 우산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내려가 태국의 자그마한 재래시장을 만나게 된다.
아침 햇살에 비친 그 곳을 보면서 “아, 정말 태국을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입장에서다.
눈에 익은 귤과 망고 이외에도 거의 생소한 야채가 가판에 즐비하고 생선류 등등. 그것만으로도 태국의 문화를 일부나마 본 듯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1차 산업이 주류를 이루고 기온이 온난다습해서 열대 지방에 나오는 채소와 과일은 풍성한 곳. 강과 바다가 인접하고 있어서 수산물 또한 풍요로운 곳이 이곳이다.
태국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 까무잡잡하고 촌스러운 얼굴에는 순박함에 가득하다.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웃는 사람들. 보편적으로 몸집이 왜소하고 피부가 검지만 순한 인상에는 친절함이 느껴진다. 탁발 나온 스님에게 시장에서 산 물건을 비닐 봉지채로 바치면 스님은 길게도 축원을 해준다.
필자도 1달러를 스님에게 건네주지만 외국인임을 생각해서인지 말문을 닫는다. 주변 빈 철교길에는 쓰러져가는 오막살이가 있고 사람이 걸어나오고 있는데, 그 길을 따라가면 무엇인가 나타날 것 같은, 막연한 동경심이 생긴다.
손님을 기다리는 톡톡(Tuk Tuk) 운전자가 영어로 ‘어디를 가느냐’고 묻지만 아직은 갈 곳을 모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톡톡에는 ‘Taxi’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가격을 미리 정해서 원하는 곳으로 움직여주는 대중교통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날은 방콕의 왕궁을 첫 방문했다. 버스 안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은 태국의 독특한 전통가옥도 있었지만 곳곳에 붙여진 인물사진이다. 금 옷으로 치장한 인물은 영화속에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었고, ‘왕과 나’라는 영화속의 잘생긴 주윤발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실제로 ‘왕과나’라는 영화는 라마 4세(1851-68년)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니 무관된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독재자의 나라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나중에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그 감정은 사르르 사그라든다. 이유는 이렇다.
현재의 푸미폰 국왕은 1946년에 라마 9세로 즉위했는데, 18살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그의 삼촌인 라마 8세가 섭정을 받다 암살을 당하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현재 나이가 80에 가까우니 재위 60주년이 훌쩍 넘은 것이다. 그는 일부다처제의 국가임에도 취임때 지금의 부인 외에는 다른 여자를 거느리지 않겠다는 공약을 했는데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도로나 상점에 흔하게 붙어 있는 그의 사진에 거부감이 일지 않고 오히려 그의 탁월한 정치능력에 존경심까지 느껴진다. 외국인조차 그런 마음이 들게 하니 자국민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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