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소라도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영덕은 봄철 복사꽃이 피어날 때도 좋지만 웬지 차가운 겨울철에 어울리는 지역이다. 대게의 고장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12월부터 조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지금 영덕에 가면 대게가 지천이다. 아직까지 살이 꽉 차지 않았지만, 가는 곳마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대게를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진다. 게다가 해마다 12월 31일에서 새해를 맞이할 때는 ‘해맞이 축제를 한다. 대게와 일출을 핑계삼아 차가운 계절, 영덕을 찾아 나서본다.

몇 번이나 갔던 장소는 아무래도 신선함이 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온 산하가 헐벚어 썰렁함은 더해지고, 날씨까지 어중간한 그런 날에는 말이다. 청화대(054-733-4130)라는 곳에서 석식으로 대게를 먹고 거나하게 술을 한잔 마신다.
바닷내음 맡으며 대게를 안주삼아 마신 술은 묘하게 여행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한잔, 두잔, 쓰디쓴 술잔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면서 하냥 기분은 우울해지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픈 감정이 가슴속 깊은 곳을 후벼 파고 들어온다.
어쩌면 여행은 단순히 자연 풍광을 보는 것이 아닌 듯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한잔 술에 취하고 낯선 숙소에서 쓰러져 잠을 청하고, 술 끝에 무거운 머리를 식히려고 겨울 바닷 바람을 맞이하는 것이 여행의 큰 목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리라.
영덕에서는 숙박지가 가장 많다고 볼 수 있는 삼사 공원안에 있는 오션뷰 호텔(054-732-0700)이라는 곳에서 잠을 청하고 아침을 맞이했을 때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온 시야는 흐릿해서 무겁게 내려 앉아 있다. 차가운 영덕의 겨울 바람을 맞으면서 공원 끝 어촌민속관을 찾아 나선다. 넓게 펼쳐진 공원은 딱히 달라진 것이 없다.
신년에는 이곳에서 해맞이 축제를 할 것이다. 이북 5도민의 망향의 설움을 달래기 위해 95년도에 세워진 망향탑과 경북도 100주년 기념사업인 경북대종 등. 딱히 볼거리가 없는 공원 안에 2005년 12월에 민속관이 개관한 것이다.
으레 시군에 한개씩, 특히 바닷가 마을에 있는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입장료:1,500원, 학생 800원)이 색다른 볼거리는 분명 아니다.
바닷가 끝에 있는 전시관은 지하1층, 지상3층으로 된 현대식 건물이다. 1층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관람하게 되어 있다. 선조들이 사용한 옛 어구를 비롯한 어선 모형 등은 딱히 새로울 것은 없지만 풍어제를 지내는 모형이나 대게 잡이를 하는 어부의 모습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지역의 특색을 잘 살려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직접 배에 올라 운전을 해보는 것이나 3D입체영상관에서 시뮬레이션 체험하는 것도 괜찮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 강구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야외 공간이 나온다. 날씨만 맑았다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다 모습에 기분이 더 좋아졌을테지만 흐릿한 날씨는 하루종일 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음 장소는 강구항 어시장이다. 난전이 펼쳐지고 주변에도 대게 일색이다. 군(郡)관계자는 난전보다는 동광어시장에서 대게를 구입하라고 귀띔한다. 어떻게 질적 차이가 나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지역민이 말해주는 정보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 박달대게는 가격이 비쌌는데, 경매장에서 품질을 정하는 표를 다리에 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게고르는 방법을 묻고 또 물어도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몸통 살을 눌러보고 탄력성을 확인하라는 것이었는데, 결국에는 전문가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일. 대게 몇 마리를 사들고 즉석에서 사서 찜통에 쪄(5천원) 부푼 가슴을 안고 돌아오는 동안은 내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정작 살이 많지 않았음에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상인이 잘못 판 것이 아니라 계절 탓에 살집이 약한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 대게 속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고 위안할 수밖에 없다.
강구항을 비껴 해맞이 공원(강구면 창포리)을 찾는다. 몇해 지나지 않았는데도 공원 주변은 또다시 변신을 거듭했다.
등대 모습은 대게 모양으로 바뀌었고, 길가에도 야경을 보여주기 위해 가로등을 설치했으며 루미나루에 조명등도 눈에 띈다.
해마다 바꿀 예정에 있다니, 자주 찾아 변화된 모습을 봐야 할 일이다. 자꾸 변신 하면서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직업인에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등대 전망대에서 시원한 바다풍경을 감상한다. 추운 날에도 바위 낚시를 하는 사람의 뒷모습과 물살을 가르고 유영하는 배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새해에는 일출 감상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들 것이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대는 것을 감수하면서 풍력단지에 오른다. 해맞이 공원 반대편 산정에 해풍에 빙빙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단지. 2005년 4월에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된 것인데 산정을 향해 길은 잘 나 있다.
산정으로 오를수록 풍차수는 늘어나고 멀리 산과 바다가 한꺼번에 조망대면서 가슴 속까지 시원해진다. 풍력발전기 24기, 변전소 1동, 송전선로, 홍보관, 경관조명기 설치(2기) 등. ‘위-윙’하고 돌아가는 풍차소리가 무섭기조차 할 정도로 많은 바람이 불어댄다. 그곳에도 공사가 한창이다. 무엇인가를 자꾸 만드는 모습. 되도록 좋은 모습으로 변신하기를 기원해 본다.
길지 않은 영덕 여행이었고, 커다란 감흥도, 느낌도 없이 여행을 맺는다. 목적에 꽉 채워야만 좋은 여행은 아니리라. 너무나 차가워서 서 있지 못할 정도의 칼추위가 닥쳐도 답답한 가슴 한켠이 펑 하니 뚫릴 정도로 시원함을 느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족한 것이 여행의 진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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