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패키지로 이룬 ‘코리안 드림’
2002년 대한민국이 월드컵 열풍으로 휩싸여 있을 무렵 피붙이라고는 하나 없는 이 땅에 또 다른 코리안 드림을 꿈꾸면서 맨몸으로 중국 연변에서 건너왔다.
물론 결혼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었지만 보다 더 나은 희망의 꿈을 안고 머나먼 이국땅의 생활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대로 쉬운 것은 아니었다.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날 무렵 난 또 다른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가장 우선적인 것이 먹고사는 문제였다.
집 근처 어느 회사 앞 경비실에 직원모집구인광고를 보고 무작정 들어갔다. 그래서 취업한 곳이 식품관련 업종이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나의 대한민국에서의 생활은 어느덧 흐르고 있었다. 애기도 낳고 생활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청년채용패키지훈련’이라는 광고를 보게 됐다. 훈련은 무료이고 현장연수를 거쳐서 중소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상세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과정명은 특수용접이었다. 과연 여자의 몸으로 힘든 일을 할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했다.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거쳐서 직업학교에 서류를 제출했다. 긴 시간동안의 상담과 과정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합격이라는 연락을 받고 훈련에 임했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배워보는, 그것도 남자들도 하기를 꺼리는 용접이라는 분야. 당연히 생각만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무서운 불꽃과 생전처음 해보는 용접, 하지만 수업은 즐거웠다. 열심히 배워서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더욱 힘이 솟았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하다보니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내 앞에는 여러 개의 현장연수업체 명단이 놓여 있었다. 과연 여자의 몸으로 현장에서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또다시 망설여졌다.
난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통천이라는 회사를 선택했다. 중장비 부품과 보일러 관련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현장을 들러보니 여자는 2명밖에 없었다. 8월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1~2개월의 연수를 시작했다. 나보다 더 큰 쇳덩어리에 둘러싸여 용접마스크을 쓰고 직업학교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했다.
시간은 흘러 연수기간 한달이 갔다. 하루는 이사님이 찾는다고해서 사무실에 올라갔더니 한달간의 연수도 지났고 또 여자의 몸으로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하시면서 정규직으로 계약을 하자고 했다.
그때 기분은 정말 날아갈 듯 했다. 청년백수가 넘친다고 온 나라가 난리인데 청년채용패키지라는 훈련을 받고 빠른 시일 내에 이렇게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날 퇴근길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서부산직업학교의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직업학교에서 생활한 3개월의 훈련기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여자의 몸으로 용접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 CO2용접불꽃에 놀라 홀드를 놓친 일, 더운 여름날 부스 안에서 용접을 마치고 나오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됐던 일, 여러 가지 일들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무언가가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과연 내가 청년채용패키지라는 것을 몰랐다면 현재 어떻게 하고 있을까? 아직도 모르는 회사 앞을 헤매고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망설임 끝에 선택한 길이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안내해주는 등불이 될 줄은 몰랐다.
3개월의 직업학교에서의 생활, 현장연수1개월, 연수기업체에 취업을 한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청년채용패키지라는 이 훈련이 나의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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