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은행은 원자재 구매 특별자금 5천억원을 중소기업들에게 한시적으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특히 가격이 급등한 철강류와 제지원료, 섬유원료, 곡물 등의 원자재 구매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올 2월 현재 고철, 선철, 형강류 등 철강류와 골재, 니켈, 목재, 구리, 금, 곡물 등 주요 산업 원자재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40~70% 폭등하고 있으며 일부 품목들은 수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인도의 급속한 경제 개발과 국제 유동자금의 투기가 이 같은 원자재 난을 유발한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구매자에게 전가할 능력을 지닌 기업에게는 원자재 난이 기업 수익을 증대시키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기업의 본질이라면 이와 같은 행태를 비판만 하기는 어렵다. 원자재 가격 급등의 문제는 이 같이 기업들이 처한 입장에 따라 그 영향의 방향과 정도가 상이하다.
원자재 대란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대기업, 중소기업은 각각 어떤 방안으로 대응해야 할 것인가?
먼저 정부는 국가 전체의 필요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노력을 강화하고, 원자재 가격 급등이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게 특히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조달청의 원자재 비축 물자 품목을 확대하고 물량 배정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철, 폐 플라스틱, 폐유 등 재생 가능 자원의 리사이클링 산업을 장려하고 그 제품이 주로 중소기업에게 제공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원자재 독과점 생산기업이 그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으로부터 부당 이윤을 챙기지 않도록 감시, 감독하고 부당행위로 획득한 이윤은 철저히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그나마 형성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원자재 수급 애로로 인해 훼손되지 않도록 해당 정책을 보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동반자적 입장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이 거래 중소기업에게 전부 전가돼 해당 기업 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해당 기업 인건비, 기계설비 투자비, R&D 비용이 위축되지 않을 수준의 납품단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거래 중소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으로 근로자의 인건비나 R&D 여력을 축소시켜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훼손하고, 다시 거래 대기업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수급의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스스로의 대응 방안은 무엇일까? 원가절감을 통해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일부 흡수하는 방안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단기적으로는 최선일 수 있지만 인건비, 설비투자, R&D 비용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기업 스스로 제품 판매가격에 전가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좋겠지만 당장 그럴 능력이 부족한 기업에게는 비현실적인 방안이다.
구조적으로 중소기업의 원자재 난을 극복하기 위해 원자재를 공동으로 구매하는 원자재 구매펀드를 산업별로, 주요 사업자단체 별로 조성하고 운영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대량 구매로 원자재 공급자에 대한 교섭력을 지니고 구매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재고 물량을 비축해 공급자의 수급 조절에 대응할 수도 있다. 물론 펀드의 조성과 운영이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니다. 원자재 공동구매 펀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몇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다. 우선 원자재를 공동 구매해 중소기업에게 공급하는 과정에서 펀드 자체의 운영수익을 내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최소한 운영비용 이상의 회수가 가능할 때 기업, 정부 등 펀드 조성의 초기 투자자금을 모으기가 용이할 것이다. 공동 구매한 원자재를 여러 중소기업에게 어떤 기준으로 공급할 것인가의 문제도 사전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펀드 투자금액에 비례해 공급 받을 권리를 줄 수 있지만 펀드투자 여력이 부족한 원자재 수요 기업의 문제는 별도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펀드 운영을 민간이 담당할 것인지, 정부가 개입하는 공사 형태가 될 것인지에 따라 관련된 기업과 정부의 역할이 달라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자재 문제를 겪는 중소기업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자조와 협력으로 해결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실행하는 데에 있다. 개별 기업의 이해를 떠나, 중,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들의 의지와 공동 노력 정도에 따라 정부의 관련 정책 추진도 탄력을 받고 강한 모티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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