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정책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고 구호화(口號化)되거나 급조되면 어떻게 되는가. 큰 후유증을 남긴다. 수도이전이나 혁신도시 건설 등이 좋은 예다. 노무현 정부에서 혁신도시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과장해서 밀어붙이려고 가짜보고서까지 만들었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다. 총 43조원의 국가프로젝트가 엉터리 보고서를 기초로 진행된 셈이다.
지방 살리자는 걸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혁신도시를 밀어붙이는 게 지방 살리기는 아니다. 예컨대 중소기업체의 절대다수가 수도권에 있는데 중소기업진흥공단을 경남 진주로 이전한다면 누구를 위한 이전인지 알 수 없다. 혁신도시를 ‘재검토’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지방 민심이 심상찮게 돌아간다. 문제점이 뻔히 보이는데도 재검토 조차 제대로 못할 판이다. “경제문제에 관한 한 국민 다수의 의견은 항상 틀리게 돼 있다”고 한 존 갈브레이스 교수의 말은 되새겨볼 만 하다.
미국 쇠고기수입을 재개하자 야 3당은 ‘미(美) 쇠고기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쇠고기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질 모양이다. 축산농가의 어려움을 덜어주자는 걸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싼(미국의 5배) 쇠고기를 먹어야하는 소비자는 누가 보호해야 하는가. 일부 농민단체와 축산농가의 반발은 예상되는 일이었다. 정부의 보완대책이 미흡하다며 불만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정치선동의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

경제이슈, 정치선동은 지양해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광우병 발병으로 중단했던 것을 재개한 것이다. 문제가 됐던 위생기준을 충족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산 광우병 소를 먹을 것이냐’며,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거나 검역주권을 포기했다고 일부에서 주장한다. 실상의 왜곡이다. 그동안 미국산 쇠고기 대신 호주와 뉴질랜드산 쇠고기가 들어왔다. 호주와 뉴질랜드산 쇠고기는 되고 싼 미국산은 안 된다는 논리가 아닌가.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만큼 미국 민주당은 한미 FTA 비준에 동의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민주당이 한미 FTA에 반대해야 할 이유는 보호무역주의적인 노조 비위 맞추기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한 일이니 이번 17대 국회에서 처리하는 게 정치 도의적으로도 국익을 위해서도 옳다. 미국의 대선 이후 환경이 변할 수 있으므로 미국의회의 비준을 압박하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기업 육성해야 국민경제 발전

중소기업 육성 역시 선거 때마다 나오는 구호다. 자주 되풀이 강조하다 보니 중소기업의 중요성은 오히려 판에 박힌 옛 노래가 되고 만다.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기업과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소연씨의 우주여행이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1973년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 세계탁구 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 팀이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우리의 청소년들이 탁구라켓을 들고 탁구장을 찾았다. 이런 예에서 보듯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고 국가경제를 도우며 돈도 벌 수 있다는 중소기업 창업의 꿈을 어릴 적부터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업에 부정적 인식을 갖도록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가.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에 부품·소재산업 분야의 교류증대 방안을 추진하고 중소기업 담당 정부기관 간 정책대화를 신설키로 했다. 우리의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것은 부품·소재 수입이 많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떠맡아야 할 이들 산업의 육성에는 조립산업과는 달리 시간이 걸린다. 지속적인 육성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삼성이 쇄신안을 발표했지만 일부 종교·시민단체는 여전히 삼성을 향한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도 믿지 못하겠다며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언동을 한다. 삼성을 옹호할 까닭은 결코 없다. 투명하지 못한 경영은 삼성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는 그런 어두운 면과 뒤섞여 성장해왔다. 이제 정부, 기업 할 것 없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다. 그걸 풀어갈 주체는 기업이다. 더욱이 국민경제가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중소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야 한다.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면 미래가 없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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