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여수로 향한다. 몇 년만인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잡지사 기자 시절, 인터뷰를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은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날의 추억이 가슴속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 문득 그 자리에 다시 서면서 떠오른 것 뿐이다. 공항에서 40분 거리. 잠시 자리에 앉았을 뿐인데 어느새 공항에 도착이다.

글, 사진:이신화(여행지 맛집 967의 저자, www.sinhwada.com)

1박2일의 여정은 비행기 덕분으로 시간을 충분히 단축시켜 주어 제법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오죽헌(061-685-1700)이라는 곳에서 한정식을 먹는다. 이곳 또한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기억으로는 여주인의 입담이 매우 걸쭉했다는 것이다. 음식 맛 빼어난 여수에서 보잘것 없는 한정식을 차려 놓은 점을 애써 감추려 했던지, 그녀는 심할 정도로 야한 이야기를 많이 해댔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훨씬 괜찮은 상차림이다. 밥을 먹으면서 안 일이지만 그녀는 여수 화류계의 대부라고 할 정도란다. 어릴 때부터 시작된 그 생활이 멋들어진 한정식집까지 이어졌으니 어찌 보면 대단한 여자라고 아니할 수 없다. 지금 그녀가 이 집을 지키지 않지만 잠시 또 그때를 떠올려 본다.
장소를 옮겨 유람선을 탄다. 선상에서 와인파티를 벌이면서 섬 한바퀴 도는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남해안 투어(www.namda.co.kr, 061-665-7788)의 박춘길 사장. 그도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거문도 팸투어때 보고나서 처음인데도 한번 익은 얼굴은 시간이 지나서도 반갑다. 선상에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바를 만들어 놓았는데, 하냥 맑은 봄날과 어우러져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배는 오동도를 한바퀴 돌고 멀리 남해대교까지 가게 된다. 봄이지만 찬바람이 제법 차갑다.
오동도에 하선하여 잠시 섬을 둘러보는 일도 첫날의 짧은 일정에 속해 있다. 오동도에는 아직도 봄이다. 붉디 붉은 동백꽃이 아직도 볼만하다. 등대 전망대에 오르고 내려와 분수대 보고 다시 돌산대교 밑에 있는 군산횟집(061-644-2740)이라는 곳에서 또 회로 석식을 먹는다. 역시 여수다. 회는 싱싱하고 달짝지근해서 입안에서 살살 녹을 정도다. 돌산대교 공원에 올라 시내와 다리 야경감상하고 이스턴 호텔(061-664-7070)에 여장을 풀고 또 새벽을 준비한다.
이른 아침 5시경, 향일암을 향해 오른다. 보름이 채 안되는 전날 밤의 달빛은 유난히 강한 빛을 냈다. 임포 마을 상가를 거슬러 거친 숨을 몰아쉬고 이내 향일암 돌계단으로 오른다. 이곳에 일출을 찍기 위해 찾을 횟수를 헤아려보니 다섯 번째는 족히 넘는 것 같다. 그런데 한번도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 없었던 것. 대웅전을 비껴 관음암으로 올라 그곳에서 해를 기다린다. 금오산정에 있는 향일암에서 바다는 제법 멀게 느껴지고 그래서인지 해 크기도 작아서 시야에서는 멀기만 하다. 구름층이 높지 않더니만 어느새 붉은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주 잠깐 사이다. 전날 달빛이 암시해준 일기예보는 적효한 것이다.
하루가 행복하게 열리고 조식을 먹고 백야도를 찾는다. 화양면이 백야대교를 사이에 두고 화정면으로 바뀐다. 주전자를 닮았다는 백야대교 앞에서 잠시 차를 멈춘다. 도로변에 유채꽃 꽃망울을 움트고 있다. 순 연한 줄기를 꺽어 배어먹고 나니 바다내음 섞인 상큼함이 물씬 풍겨난다. 2005년 백야대교가 생기고 나서 도선을 타고 드나들던 운치는 사라졌지만 등대(061-685-7931, www.seantour.com)까지 오는 일은 아주 쉬워졌다.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얀 등대. 그래도 볼거리가 있다. 백련초 선인장은 물론이고 등대직원이 손수 만든 조각품들이 볼거리를 준다. 벤치에 한참을 앉아 봄 향기를 느끼고 선착장으로 내려와 손두부집을 찾는다. 구멍 성글은 국산콩으로 쑨 두부 한모와 썩썩 썰어놓은 배추김치와 양념장. 소박한 시골집 같은 분위기에서 먹는 두부 맛에는 고향의 향수가 느껴진다.
여수항은 물론이고 이곳에서도 하루 두 번 사도 배가 운항된다. 근 30-40분 정도 달려가면 섬에 다다른다. 사도는 여수의 서남단에 자리해 있는데 고만고만한 6개의 이웃 섬과 함께 군도를 이루고 있다. 물이 빠지면 추도, 연목, 나끝, 사도, 간도(간댓섬), 시루섬, 장사도(진댓섬)가 ‘ㄷ’자 형태로 연결되는 곳. 이곳이 알려진 것은 순전히 물길이 열린다는 ‘신비의 바닷길’ 덕분. 하지만 고작 1년에 서너번인데다, 물때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서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섬이다. 그래도 추도와 연목, 장사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섬들은 평소에도 연결돼고 공룡 발자국을 비롯하여 여러 기암등을 만날 수 있다.
사도에 하차 하자마자 추도라는 섬으로 동네 이장이 안내를 한다. 바로 지척거리지만 물이 빠지지 않는 한 배 이동을 해야 한다. 선착을 하면서 느낀 것은 예사롭지 않은 담장이다. 처음에는 제법 민가가 많아서 여서도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섬인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섬을 한바퀴 돌면서 느낀 것은 여서도에서 본 생동감이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순전히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의 온기 때문인데, 그건 추도를 빠져 나올 즈음 알게 된 내용이다. 어쨌든 추도의 돌담길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켜켜히 잘 쌓은 것이 예사롭지 않은 솜씨인데, 돌담은 전문가의 솜씨로 다시 복원된 것이다. 강한 바닷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돌담은 어찌됐든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마을은 생각보다 작았는데, 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염소도 없고 사람도 많지 않다. 추도 분교도 폐허가 된채 무성한 잡풀과 허물어져가는 건물이 남아 옛날을 떠올리게 하고 있을 뿐이다. 돌담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두어개의 우물터가 있는데, 아직도 그 우물을 쓰고 있는지, 빈 집에는 물을 뜨는 바가지가 벽 한켠에 걸려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듯 깔끔하게 정돈된 푸른 슬라브집으로 발을 내딛는다. 70이 넘었다는 할머니. 19살에 이웃 섬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시부모 모시고 살다가 45세때 전쟁에서 총알이 박힌 채 돌아온 남편이 돌아가시고 여태까지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장성한 자식들은 자기 터전 만들어 여수나 서울로 나갔고 혼자 이 집을 지키는 할머니의 모습이 애처롭다. 나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할머니의 애환이 느껴지는 그곳에 개 한 마리가 마당에 앉아 있다. 처음 섬에 도착했을 때 짖어대던 녀석이다. 암캐라는데, 숫캐는 없다. 고양이 두 마리도 모두 암놈이란다. 마을 사람은 팔순 할머니와 육순 남자가 더 있을 뿐. 이곳에 살아 있는 것들의 전부인 것이다.
너무 연로해서 미역 작업도 하지 않고 그저 채마밭에다 먹을 수 있는 야채정도 심는 정도. 섬 근처에 연육교가 완공될 예정이라서 개발을 앞두고 있어 땅값은 올라가지만 사는 사람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긴 세월, 젊음은 이 섬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생산성이 멈춰버린 자그마한 섬. 웬지 쓸쓸함이 느껴지는 추도다.
마을을 비껴 바닷가 옆으로 나가면서 공룡 발자국을 쫒는다. 파도에 켜켜히 씻겨져 만들어진 바닷돌이 부안의 채석강이나 고성의 상족암과 많이도 닮아 있다. 아니 이곳은 해남 우항리 공룡지하고 비슷한 형태라고 해야 한다. 어쨌든 검은 바위는 아름다운 물결무늬를 만들어 두었다. 구멍이 뻥 뚫린 바위사이를 걷고 산길을 걷는 내내 아름다움에 폭 파져 든다. 물이 맑고 때묻지 않은 자연공기가 있으니 날씨 따뜻해지면 낚시객들이 많이 찾아들겠지.
사도의 이장은 다시 배를 끌고 왔고 주변 섬을 보여준다면서 낭도라는 곳까지 한바퀴 휑하니 돌게 해준다. 바다 너머로 고흥 용암마을이 지척이다. 그 마을에서 아련한 기대감으로 바라보던 섬이 바로 여수 군도였던 것이다. 바닷바람이 차다. 빨리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을 즈음 사도에서 점심을 먹는다. 사도는 서너개의 민박집 간판이 보였는데, 제법 잘 지어놓은 남도 민박집에서 해삼 비빕밥으로 요기를 한다. 이곳에서 나는 해삼에 야채를 넣고 비벼 먹는 것인데,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음식. 섬이라서 자급자족. 바다에서 나는 고동을 까고, 삿갓조개도 까서 무쳐내고 파무침도 해놓고 미역국도 끓였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로 나가 산책을 한다. 이미 이 섬에 들어섰을 때 커다란 공룡모형 두기가 마을 앞을 가리고 있었으니 공룡 발자국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사도는 50여 년 전에는 많은 주민이 살았지만 지난 59년 한반도를 강타한 사라호 태풍이 고기잡이배를 모두 삼켜버리고 난 후 사람들은 섬을 하나둘 떠나갔다. 그 이후 지금도 사도에서는 고기잡이배를 바다에 띄우지 않는 단다. 사람들은 그저 해산물을 채취하고 손바닥만 한 밭을 일구며 민박을 놓아 생활하고 있을 뿐이다.
사도 주변의 해안가 역시 추도와 엇비슷하지만 더 아름다운 기암이 많이 펼쳐진다. 퇴적층이 더 발달된 것이다. 이곳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것도 고성의 상족암과 비슷하다. 주민들이 편편한 돌들을 떼어다가 구들장으로 사용하다가 발견된 발자국인 것이다. 전망대에서 해안절벽을 따라 걷다보면 공룡 발자국이 선연하고 검은 바위위에는 목재가 그대로 화석이 되어 있는 규화목 화석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 설명하지 않으면 모를 위치에 있다.
사도에서 물이 빠지면 간도를 거쳐 시루섬으로 이어진다. 하얀 모래톱이 길을 내준다. 물이 빠지지 않더라도 간도까지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간도는 갓댓섬 혹은 중도라고도 불린다. 다리를 건너 300m 정도 걸어가면 간도의 끝이다. 간도는 또 시루섬과 닿아 있다. 그 사이에 모래해수욕장이 있어서 사도라 불리는 것이다. 모래톱 너머 시루섬에는 각양각색의 기암들이 즐비하다. 높이 10m 정도 되는 거북바위에서부터 용꼬리처럼 생긴 용미암, 사람의 옆얼굴을 닮은 얼굴바위 등 볼 게 많다.
시루섬 왼쪽에 있는 장사도는 물이 완전히 빠져야만 걸어갈 수 있다. 하지만 아쉽지만 이 날은 장사도까지는 물이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섬을 돌아보는 내내 켜켜히 잘 깍아 놓은 검은 기암에 폭 빠져 들 정도로 매료된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한적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도. 그 외에 물 빠지면 이어지는 자그마한 섬들. 이 섬들이 완벽하게 이어지는 때가 많지 않다. 음력 정월대보름과 2월 영등, 4월 중순 무렵 2~3일 동안 등이다. 그 물때를 맞춘다면 금상첨화다.
*찾아가는 방법:여수는 순천을 거쳐야만 갈 수 있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진주JC-남해고속도로-순천IC-17번 국도-여수항(혹은 백야도)-사도
*배편:여수항에서 사도로 가는 배는 오전 8시 50분, 오후 2시 40분(약간 조정)에 있고 사도에서는 오전 7시 40분, 오후 4시에 있다. 백야도도 하루 2회 운항된다. 태평양해운(061-662-5454).
*먹거리와 숙박:사도에만 민박이 가능하다. 민박집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섬 주변에서 채취되는 것들로 자급자족이다. 민박은 장원모(061-665-0019), 모래섬한옥민박(061-666-0679), 남도민박(061-666-9199) 등이 있다. *문의:여수시청 관광진흥과(061-690-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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