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작은 공장
중소기업청은 청소년 시절부터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을 드높이고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개최한 「제5회 중소기업 사랑 청소년 글짓기 공모전」의 우수작 40편을 선정·발표했다. 대상을 수상한 한양사대부고 2학년 유선영 학생의 ‘할아버지의 작은공장’ 등 우수작 4편을 4주에 걸쳐 소개한다.
할아버지는 남양주에 위치한 작은 공장에서 시계제조업을 하셨다. 시계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들을 작은 공장들에서 납품받아 그것들을 조립해 벽시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직원은 경리를 보던 둘째 이모를 포함 4명 남짓한 작은 규모였다. 대기업으로부터 물량을 주문 받으면 디자인에 맞게 본을 뜨고 그 속에 부품들이 조립되고, 최종적으로 전지를 넣어 시계가 잘 작동되는지를 검사하면 된다.
주문 물량이 많아 시간이 촉박할 때는 우리 집에도 부품들이 배달되었다. 나와 엄마가 주로 하는 일은 시계바늘에 붙어 있는 비닐을 조심스럽게 벗겨내는 일이라든가, 아니면 추가 달린 시계의 시계추에 묻은 이물질들을 깨끗한 융으로 닦아내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모든 과정이 일일이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다섯 살 박이였던 나는 엄마가 하시는 일을 항상 따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가 일을 같이 하면 엄마가 다시 손질을 하셨는데, 엄마는 한 번도 귀찮다 안하시고 늘 내게 함께 하자 하셨다. 덕분에 나는 시계 속에 그렇게 많고 복잡한 부품들이 들어가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의 시계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과 손길이 묻어나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아마 엄마는 나에게 일의 소중함을 알려 주시고자 하셨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직장에 나가신 엄마를 기다리며 할머니 댁에서 놀고 있는데, 이모가 얼굴이며 손이며 옷 전체에 검뎅이를 묻히고 들어오셨다. 얼마나 많이 우셨던지 두 눈이 퉁퉁 붓고, 얼굴은 마치 일부러 연탄을 묻히고 물을 뿌린 것 같은 모양으로 들어오셨다. 전화연락을 통해 할머니는 미리 아셨는지 화재의 정도를 물으시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셨다. 공장에서 일을 하던 한 아주머니가 석유난로를 잘못 다루어 온 공장에 불이 붙고 공장은 기둥까지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나는 어린나이였으나 사태의 심각성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방 한 구석에 앉아 눈물을 그치지 않던 이모의 모습과 앞날이 막막하여 한숨짓던 할머니의 표정이 그 사실을 말 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약 2년여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는 다시 작은 공장을 지으셨다. 그리고 평생의 단 하나의 소망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이시던 시계제조업을 다시 시작하셨다. 당시 공장을 다시 지을 수 있게 된 계기가 정부의 도움이라고 들었다. 정부에서 심사를 통해 경제적인 지원을 주고, 몇몇 지인들께서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주셔서 다시 한번 할아버지는 당신의 모든 삶을 바쳐 공장을 일구셨다. 공장이 다시 예전처럼 자리를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으나 가족 모두는 힘을 내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기뻐하였다.

삶의 전부이자 희망이던 시계공장

몇 년 뒤에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일을 계속하시기가 힘들게 되어 이모와 삼촌이 공장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치매에 걸리셨는데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공장에 가야한다고 하시며 옷을 입으셨다. 한 번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나가서 공장가는 길로 하염없이 걷다가 길을 잃으셨다. 다행히 할머니가 만약을 대비해 할아버지의 옷 속에 넣어두었던 전화번호를 보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엄마와 할머니가 한달음에 가보니 할아버지께서는 낯선 동네 경찰서에서 앉지도 않고 서성이며 하염없이 공장에 가야한다는 말씀만 반복하고 계셨다고 한다.
시계 제조업과 같이 사람의 손길이 일일이 가야 하는 중소업체들은 이제 많은 곳이 문을 닫거나,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나 동남아 쪽으로 공장을 옮겨 갔다고 한다. 시계 하나를 완성하여 얻을 수 있는 마진이 점점 박해져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제하고 나면 운영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실업률의 증가로 인한 국가적 문제와 일자리 창출이 화두가 되고 있는 오늘날 중소기업들의 활성화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대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따라 국내의 중소기업들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 적극 개입하여 일정 비율의 생산품을 국내에서 해결해 나가도록 유도한다던지,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청년들의 인식의 전환을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국가적인 홍보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일들이 계획적인 단계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일자리 창출 中企활성로 풀자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돌아가던 시계의 부속품들을 손으로 집어 들고 깨끗한 융으로 먼지를 닦고, 행여나 흠집이 날까 소중히 다루던 손길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벨트를 따라 돌아가는 숫자가 박힌 문자판이며, 유리덮개 등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맛있게 먹던 자장면의 추억도 잊을 수가 없다. 공장안에 몇 안 되는 직원들은 모두가 한 가족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각 가정의 안부를 걱정하였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불이 난 공장의 수습보다도 우선적으로 발로 뛰신 일이 공장에 불을 낸 아주머니가 경찰서에서 풀려 나올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작은 부주의로 한 순간에 삶의 모든 터전을 잃었지만, 가족 같은 직원을 먼저 구해내기 위해 벌금을 비롯한 모든 법적 책임을 지셨다고 한다.
지난 화재 사건을 뒤돌아보면, 그 일은 분명 외가댁에 많은 손해를 끼치고 역경의 시간을 보내게 한 일이었지만, 어찌 보면 재기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간애와 가족애를 새롭게 느끼게 해 주었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아버지의 희망이자 삶의 전부였던 작은 공장을 다시 지을 수 있게 밑기둥이 되어준 정부의 배려와 도움을 주신 지인들께 사뭇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 다시는 할아버지의 자상하신 웃음을 보며 그 무릎에 앉아 볼 수는 없어도, 온 힘을 다해 지켜내신 할아버지의 작은 공장이 있어 그 아름답던 유년의 시절을 추억해 본다.

유 선 영 (한양대 사범대부속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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