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의 힘
녹색 페인트가 곱게 칠해진 우리 집 대문 앞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낡은 회색 가로등이 있다. 밝은 대낮에는 그저 차가운 기둥에 불과하지만, 땅거미가 깔리고 공기가 차가워지는 저녁의 가로등은 그렇게 따스한 빛을 띨 수가 없다. 내가 그 가로등을 유독 따스하게 여기는 이유는 가로등이 어쩌면 어렸을 적 밤늦게까지 대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내 곁을 줄곧 지켜주던 친구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때, 병환이 깊으신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가족은 시골에 있는 친가로 이사 올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병원비 대랴, 서서히 커가는 우리 교육비며 생활비 대랴, 엄마는 손을 걷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안경알을 만드는 중소기업에 취직하셨다. 엄마는 그곳에서 만들어진 안경알들은 해외로 수출된다고, 그리고 그 안경알들 중 많은 것이 엄마의 손을 거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게 작은 사업체가 수출한다는 사실이 한편 놀랍기도 했지만, 엄마가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큰 회사에 취직하지 못한 사실을 유감으로 생각하며, 밤이 되면 퉁퉁 부은 엄마의 손을 주물러 드렸다.
전학을 간 나는 곧 친구를 사귀었다. 그 아이는 웃는 얼굴이 유독 예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됐다. 그 아이와 나는 공통점이 많은 편이었다. 둘 다 키보다 훨씬 큰 자전거를 탔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으며,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도, 음악도, 게임도, 드라마도 같았다. 두 살 어린 남동생도 있었고, 심지어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까지 똑같아서 친구와 나는 틈만 나면 그 사실을 들먹이며 킬킬거렸다. 우리에겐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엄마들이 같은 회사에 다니신다는 것이었다.
“너희 엄마도 ○○글라스에 다니셔?”
“응! 너희 엄마도?”
또 다른 공통점을 찾은 기쁨에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신기할 정도로 닮은 점이 많은 나와 친구였지만, 마음의 나이는 그 친구가 나보다 몇 살 더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그런 조그만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엄마가 무슨 일 하시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입을 꾹 다무는 반면 그 친구는 당당하게 ‘○○글라스 다니셔요’라고 말했다.
“저기 유승아, 넌 엄마가 거기 다니시는 거 안 부끄러워?”
용기를 내어 꺼낸 내 질문에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게 부끄러운 거야? 뭐가 어때서? 하나도 안 부끄러워. 요즘같이 실업자가 많은 때 직업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IMF가 끝난 지 몇 년 안 된 한국 경제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바람 앞에 놓인 촛불 같았고, 텔레비전을 켜면 청년 실업자가 몇 백 만 명을 넘어 섰다는 뉴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엄마가 그런 곳에 다닌단 사실은 어리고 옹졸한 마음에 부끄럽게 여겨졌다. 중소기업박람회에서 싸고 질 좋은 왁스를 샀다며 좋아하는 엄마 몰래 왁스를 갖다버린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나는 내가 끼고 있는 안경알이 어쩌면 엄마 손을 거쳤을지도 모른단 사실은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개교기념일 하루 전, 친구가 엄마 회사에 가서 노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거기 가서 어떻게 놀아?”
“난 동생이랑 몇 번 놀러 갔었어. 바퀴 달린 수레 타고, 그 옆에 있는 다른 공장들 구경하면 시간이 금방 가는데.”
“그래도…….”
“아이 참, 같이 가자, 응?”
그렇게 개교기념일을 엄마가 다니는 회사에서 보내게 됐다. 엄마는 네가 웬일이냐는 눈빛을 하면서도 많은 걸 설명해 주셨다. 여기가 렌즈를 깨끗하게 세척하는 곳이고, 여기가 불량품 검사하는 곳이며, 저기에서는 국내에서 팔 것과 수출하는 것을 나누어 포장한다는 둥 하시더니 그렇지만 내게 재밌는 것은 없을 테니 밖에서 노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공장은 의외로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어둡고 습한 지하 공장을 상상했던 나는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출근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누구네 딸내미야, 어머, 심씨네 딸이야?” 하시며 쥐어 주시는 간식거리를 들고 나는 조금 멍해졌다.
“여기 오면 맛있는 걸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다니까.”
친구는 까르르 웃으며 과자 상자를 꺼내들었다.
배도 부른 우리에게 그곳은 정말 좋은 놀이터였다. 바퀴달린 노란색 수레를 타고 저 끝까지 밀고, 그러다 넘어져도 탈탈 털고 다시 일어나 수레를 탔다. 주변에 있는 다른 회사들을 기웃거리기도 했는데, 종이 만드는 회사, 톱밥 만드는 회사, 옷 만드는 회사 등 다양한 회사가 있었다. 회사마다 취급하는 물건이 달라서인지 외양도 서로 다르고 주변에 쌓여 있는 기자재도 달랐다. 게다가 회사마다 주차장이 건물에 비해 무척 넓었는데, 저녁이면 트럭들이 벌떼처럼 몰려와서 한바탕 짐을 싣고 떠난다고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넓지 않아?”
“여기서 얼마나 많은 게 만들어지는데. 그걸 다 수출하기도 하고, 우리가 쓰기도 해. 작다고 하는 일까지 작은 건 아니거든.”
나는 물끄러미 그 넓은 주차장을 보았다. 어쩐지 엄마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생명력 넘치는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엄마 회사 건물이 소란스러워졌다.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보는데,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 떨어졌다고도 하고, 엘리베이터에 끼었다고도 하고, 하여튼 피가 무척 많이 났다고 했다. 앰뷸런스가 와서 그 아주머니를 모셔갈 때 나는 피범벅이 된 아주머니 얼굴을 보고 말았다. 자그마한 체구가 엄마와 비슷한 걸 보고는 끝내 겁에 질려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일하러 다시 들어가 봐야 하는 엄마가 난처한 기색으로 등을 두드려주셨음에도 한 번 놀란 가슴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앰뷸런스를 배웅하고 오시던 어떤 아저씨가 나를 달래줄 때까지 하염없이 울었던 것 같다. 아저씨는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와 얼굴이며 눈이 시뻘건 내게 따뜻한 차를 뽑아 주셨다.
“허허, 너 참 많이도 운다.”
나는 뜨거운 차를 홀짝이며 집에 가자마자 엄마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나를 흘끔거리며 아저씨에게 여쭈었다.
“아줌만 괜찮으시데요?”
“글쎄, 피는 많이 났다만 단순히 찢어지기만 한 것 같으니 괜찮을 거다. 곧 연락이 올 거야.”
“얼마 안 다치셨으면 좋겠어요.”
“뭐,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지.”
나는 갑자기 울컥해서 쏘아붙였다.
“큰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없을 거 아니에요.”
아저씬 당황하신 듯하더니 곧 흐흐 웃으셨다.
“이 녀석아. 사람이 하는 일은 다 똑같아. 안전에 소홀한 건 실수지만 큰 회사라고 편하고, 무조건 안전하고 그런 건 없다.”
“그렇지 않을걸요?”
“그럼 뭐가 다르냐?”
“사람도 많고, 크고, 또……”
“그것 봐라. 중요한 건 큰 게 아니지. 이걸 봐.”
아저씨는 손바닥을 내미셨다.
“손바닥은 넓고 크지. 그런데 이 손가락은 어떠냐. 손바닥에 비해 작지. 손바닥이 다치면 손은 일을 할 수 없어. 그렇다고 손가락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 결국 물건을 잡고 글을 쓰는 것도 손가락 없이는 불가능해. 지금 우리나라는 이런 모양이야. 큰 손바닥이 모든 걸 독차지하고 있어도 그 중요성은 똑같아. 손바닥이 없으면 손가락도 있을 수 없고, 손가락이 없으면 그것은 손이 아니지. 네 엄마도, 나도 그런 손가락 중에 하나일 뿐이란다. 손바닥이 아니라고 대단하지 않다,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니?”
나는 아저씨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큰거리는 것이 눈인지, 가슴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저씨의 투박한 손을 가만히 보면서 손가락과 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저녁에 퇴근해 오신 엄마에게 손가락 얘기를 해주었더니 엄마는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 웃으셨다.
“진짜 센스 있는 분이셔. 그렇지? 근데 딸, 엄마가 거기 다니는 거 싫었어?”
“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손가락이라잖아. 손가락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겠어.”
다 컸다며 엉덩이를 토닥이는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나는 거대한 손이라는 대한민국과 그 손가락들을 다시 생각했다. 단순히 크기와 중요도가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어린 마음의 오류를 밝혀낸 느낌이었다.
아직도 많은 젊은이가 실업 상태로 머물러 있다. 나는 굳이 큰 기업이 아니라도 구하려고만 한다면 충분히 직업을 구할 수 있으니 그 젊고 탱탱한 몸을 놀릴 바에는 뭐라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만이 정석이 아니며, 시작이 어디든 세상은 노력하는 자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도록 돌아간다.
얼마 전 신문에서 8명도 안 되는 소규모 사업체가 1인당 몇 억대 연봉을 지불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을 올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오히려 규모가 작아서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점점 딱딱한 관료제 사회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저씨 말씀대로 단순히 크기가 작다고 해서 하는 일이 하찮은 것이 아니다. 그 어떤 나라도 중소기업이라는 탄탄한 지지대가 없이는 경제대국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단순히 근시안적인 시선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 집착하지 말고, 넓고 깊은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근본이 되는 곳을 인식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갈수록 우리 사회의 손가락은 짧고 얇아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길고 아름다운 모양을 뽐낼 날이 올 것이다.

한 은 하(곡성고등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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