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고려산(436m) 가는 날은 혼자가 아니었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은 차를 3대로 나누어 타기로 했고
김포대교를 넘어서니 손쉽게 강화땅에 발을 내딛게 된다.
최동단에서 최서단을 이렇게 가깝게 찾아가보는 일도 처음이다.
외포리 젓갈시장에 들러 저녁에 구워 먹을 조개를 구입한다.
동죽, 백합, 가리비 등등.
일행중 한명은 봄철에 살이 올라 맛이 좋다는
동죽을 듬뿍 사길 권했는데,
그 말은 틀림없었다.

내가 저수지를 끼고 있는 펜션(겉보기에는 호수같은 저수지가 아우러져 제법 멋진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실제로는 매우 ‘날림’인 스카이 펜션(032-933-5533), 단 야외에서 고기 구워 놀기에는 괜찮다). 강화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에는 꾸물거리는 날씨가 뒤덮어 회색빛이다. 마당 한켠의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니 먼저 온 일행이 거하게 술판을 벌리고 있다.
번개탄에 잘 익어가고 있는 삼겹살 구이와 키조개 껍질에 입 벌린 조갯살을 넣고 고추장 양념을 해서 지글지글 불판에 구어 먹는다. 사람들이 다 모이고, 거기에 강화에 산다는 아낙들까지 가세하니 왁자함에 정신까지 몽롱해진다. 어느 순간인지는 잘 모르겠다. 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번잡함이 부담스러워진다. 단지 혼자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너무 잦은 만남 탓에 꺼리낌 없어졌다는 것도 심리적으로 작용되는 듯하다.
일부는 강화읍내의 노래방을 찾아가고 숙소에는 몇 사람이 남았지만, 그것조차 분위기가 여의치 않다. 일에 긴장이 풀리고 하루 속시원히 ‘놀아보자’는 심리 때문인지 만취된 사람이 생기고, 분위기는 영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김수현의 ‘겨울로 가는 마차’라는 책을 펼쳐든다. 출판사 사장이 신간이라면서 안겨준 책인데, 읽다보니 오래전 읽었던 책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도 가물거리던 내용이 처음과 끝은 선명하지만, 그런대로 시간 때우기에는 괜찮다.
남은 돼지고기와 김치 넣고 멀건히 끓인 김치찌개로 조식을 떼우고 점심을 챙긴다.
이 팀은 늘 이렇게 밥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많은 사람들의 여행패턴이긴 한데, 가끔은 지루할 정도로 ‘해 먹는 밥’에 연연하는 것 같다. 산에서 먹을 밥까지 준비하고 적석사까지 차량을 이동한다. 아침에 온 사람이 가세해 인원은 15명이 되었다. 당시 고려산에 진달래가 만발한 철이라서 입구부터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렇게 적석사를 또다시 ‘조우’한다.
적석사는 고구려 장수왕14년(416년)에 창건했다고 하고 병자호란때 임금이 지극히 총애한 정명공주를 이곳으로 피신시켰다는 기록이 전해오며 인도에서 온 천축조사가 고려산 정상에서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오색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청련사, 백련사, 흑련사(폐사됨), 황련사와 더불어 적석사를 창건했다는 설화를 갖고 있다.
필자에게는 이곳이 정겹다. 야심한 밤에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적막한 절집을 지키고 있던 보살은 밥을 먹었느냐고 물어주었던 곳이다. ‘부처님 젖줄’이라고 써 있는 약수터에 입을 축이고 낙조대로 오른다. 같이 온 팀중에는 배종진씨라는 약초전문가가 있다.
지난해 포천 국망봉에 더덕 채취한다고 해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 길도 아닌 곳을 다니며 더덕 찾는 일은 고문처럼 힘들었다. 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개별꽃잎에 점이 박혀 있는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수술이었고, 점박이는 ‘긴개별꽃’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적으로 보기 힘든 꽃이란다. 참나리, 엄나무 등등. 보이는 식물의 이름을 물어보면서 능선을 따라 트레킹을 한다.
날씨는 전날보다 더 어둑하고 안개가 자욱해 ‘안개비’가 내린다. 식물이나 꽃에도 알알이 이슬방울이 맺혀 있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는 알 필요도 없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걸어도 될 정도로 산길은 환상적이다. 최상의 트레킹코스다. 등산객들의 인파가 많지만 가까운 곳이라면 자주 찾고 싶을 정도로 멋지다. 간간히 약초이야기가 더해진다. 삼지구엽초 닮은 ‘연잎 꿩의 다리’ 또는 개삼지구엽초라고 한다고 하는데, 독성이 있어서 달여 먹으면 큰일 난다는 말이다.
그 외에도 흔하게 봐왔지만 늘 헷갈리던 ‘접골목’이나 강원도에서 ‘중머리’라고 부르며 나물로 이용하던 ‘쥐오줌풀’과 세신이라고 불린다는 족두리꽃 등등.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야생초들이지만 그 순간은 귀가 솔깃하다.
산오이풀, 제비꽃, 으아리, 양지꽃, 바위채송화, 참나리, 인동덩굴, 청가시덩굴, 담쟁이덩굴, 엉겅퀴, 호랑 버들, 산딸기, 생강나무, 층층나무, 회잎나무, 보리수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싸리나무, 야광나무, 산초나무, 찔레나무, 백당나무, 아카시나무, 두릅나무, 가래나무 등등. 그가 일러준 말을 많다. 어쨌든 약초가는 새순을 뚝뚝 딴다. 생강나무순이란다. 몸에 좋아서 차로 먹고 이번 여행길에는 부치미를 할 생각이란다.
싸온 밥을 먹기 위해 여장을 풀었지만 비닐 봉지속에 아직 식지 않은 허여 멀 건한 쌀밥과 된장과 고추장이 전부. 짐을 다 챙겨오지 못한 탓인데, 약초가는 배낭에서 주섬주섬 이것저것 꺼낸다. 아직 덜 영근듯한 두릅이다. 코펠에 불을 지피고 물을 끓여 삶아 반찬으로 먹으니 두릅 하나만으로도 푸짐한 점심상이 된다.
또 주변에 널브러진 진달래 몇잎을 따고 생강나무 순과 남은 두릅을 뚝뚝 잘라 넣고 부침가루에 범벅쳐서 ‘화전’을 부쳐 먹는데, 그 맛 또한 일미다. 여느 산해진미보다 푸짐한 점심이다.
이어 산행은 계속 되고, 산길에서 고인돌 군락지라는 팻말을 두 번이나 만났다. 표시가 없었다면 그냥 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특징이 없다. 길은 군부대를 앞두고 진달래 군락지를 만난다. 백련사를 거쳐 왔던 그 군락지는 올해도 그 자리에서 멋진 꽃을 피워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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