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의 본래 이름은 ‘곡도(鵠島)’다. 섬 모양이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인천항에서 서북쪽으로 2백28km, 북녘땅 옹진반도(장산곶)와는 불과 15km 떨어져 있는,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소연평도) 중 가장 북쪽이자 가장 서쪽에 있는 섬(동경 124도 5분, 북위 37도 5분)이다. 뭍에서 가자면 울릉도나 제주도보다도 훨씬 더 멀다. 북한 옹진반도와 백령도의 거리는 12km, 서울 끝에서 끝까지 거리밖에 안 된다. 넓이가 여의도의 6배에 이르고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큰 섬으로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이상향이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인적이 뜸한 편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여름 한철은 피서객들로 몸살을 앓기도 한다.
쪽빛 바다, 기암절벽, 발 딛는 곳마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데,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해서 매연과 먼지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안온하게 감싸준다.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지만 북한땅과 가장 가깝게 있다 보니 철조망과 초소, 출입 금지 구역, 지뢰 등이 섬을 옭죄고 있어 안타깝다.
백령도 해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철조망에 가린 해안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불편을 늘 안고 사는 백령도 사람들은 머잖아 통일이 되면 가장 혜택 받는 섬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백령도는 현재 해병 흑룡부대가 주둔해 있다. 섬 대부분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탓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지역이 수두룩하다. 백령도가 자연의 순수함을 잃지 않은 것은 이처럼 지리적으로 특수한 곳이기 때문이다.
용기포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섬길 왼쪽 바닷가에 원추형으로 쌓은 두 개의 돌탑과 까나리액젓을 담근 수백 개의 플라스틱 통이다. 바다를 향해 곧추 서 있는 돌탑도 눈길을 끈다.
백령도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안전을 비는 기원탑이다. 이 기원탑 앞에서 방문객들은 잠시 상념에 잠긴다. 멀게만 느껴졌던 백령도에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 내지 감격이다. 용기포 옆에는 나지막한 용기원산(136m)이 솟아 있다.
환경부 지정 보호야생동물인 쇠가마우지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산길을 따라 해안가로 내려가면 기기묘묘한 바위와 천연동굴이 위풍당당하게 늘어서 있는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용기원산 꼭대기에는 백령도 인근 바다를 항해하던 선박들의 밤길을 밝혀주던 등대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용기포에서 바다를 끼고 조금 올라가면 규사토로 이뤄진 사곶해수욕장(천연기념물 제391호)이 펼쳐진다. 3km쯤 이어진 평평한 모래밭은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서 단 2곳뿐인 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한데, 6ㆍ25전쟁 당시 유엔군이 활주로로 이용하기도 했다. 너비 300미터의 규사토 백사장은 자동차도 무리 없이 달릴 수 있다. 규사토의 입자는 모래보다도 고와서 맨발로 걷는 감촉이 아주 좋다.
일찍이 간척으로 섬의 크기를 확장해 왔는데 91년부터 99년까지 계속된 사곶-남포리 간척사업은 350ha의 농경지와 129ha의 담수호를 만들어냈다. 섬의 모양이 ㄷ자에서 ㅁ자로 바뀐 대역사였다. 섬 한가운데(사곶해변 뒤쪽)에 있는 백령호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다. 운이 좋다면 백령호 옆에 들어선 화동염전에서 소금 작업하는 광경도 지켜볼 수 있다.
사곶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콩만한 돌들이 2km 가량 깔린 콩돌해안(천연기념물 제392호)이 펼쳐져 있다. 콩돌은 규암이 수천만 년 파도에 깎이고 닳아 만들어진 것이다. 콩돌 해변은 걷는 재미도 그만이지만 파도가 밀려와 콩돌을 쓰다듬는 해조음은 무슨 악기소리처럼 잔잔하면서도 경쾌하다. 백색, 회색, 갈색, 적갈색, 청회색의 매끈한 돌들이 해안을 가득 덮고 있다. 이 콩돌을 밟으면 지압은 물론 무좀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콩돌이 깔린 바닷물은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지만 수심이 깊어 수영은 할 수 없다. 콩돌은 단 한 개라도 맘대로 가져갈 수 없다. 이는 천연기념물인 콩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백령도는 어딜 가나 절경이지만 북서쪽에 있는 두무진은 일찍이 ‘제2의 해금강’, ‘서해의 해금강’등으로 불릴 만큼 국가 지정 명승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오랜 세월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삐죽빼죽한 암석들은 환상 그 자체다. 사자, 코끼리, 촛대, 신선, 형제, 새, 구멍 등 투구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원래 두무진(頭武津)은 뾰족한 바위들이, 마치 장군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시대 충신 이대기가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했던 감회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포구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면 두무진의 빼어난 경관을 두루 구경할 수 있다.
백령도는 또한 전설의 섬이기도 하다.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백석에 팔린 심청이의 전설은 단지 구전되는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심청이가 빠졌다는 인당수(장산곶이 내려다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그가 환생했다는 연봉바위, 그의 효심을 기리는 기념관(심청각)은 꽤나 사실적인 모습이다. 남포2리 앞바다에 떠 있는 연봉바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심청이를 태운 연꽃을 닮았다. 심청각이 있는 진촌1리의 산기슭에 오르면 17km 거리의 북한땅 장산곶이 마주 보인다. 실향민들이 분단의 아픔을 체감하는 데가 바로 이곳이다.
백령도는 이 나라에 교회가 들어오는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섬 안에 교회가 10곳이 넘을 정도로 주민 대부분이 기독교를 믿는다.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있는 중화동 교회는 1898년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세워진 교회다. 백령도의 날씨를 예보하는 백령 기상대도 여행 코스에 넣을 만하다. 특히 기상대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 바라보는 백령도 북부 해안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맛깔스런 백령도의 특산물
백령도는 풍광도 아름답지만 특산물도 풍성하다. 자연산 해산물(꽃게, 굴, 광어, 소라, 해삼, 우럭, 전복, 미역, 다시마, 놀래미 등)과 함께 약쑥, 흑염소, 참다래, 고구마 등은 해풍을 먹고 자라 맛이 뛰어나다. 요즘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가 제철이다.
이 지역에서만 자란 약쑥(일명 싸주아리)은 쑥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며 백령도 야산에 방목한 흑염소는 여러 가지 섬 약초를 뜯어먹고 자라 약용으로 쓴다.
한편,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짠지떡도 빼놓을 수 없다. 찹쌀과 메밀을 섞은 떡피 속에 김치와 굴, 홍합 등 소를 넣고 쪄낸 일종의 만두다. 냉면도 백령도의 특산 음식이다. 해방 전 황해도 장연군에 속해 있었던 백령도는 황해도 사람이 유난히 많아 냉면 맛이 좋다. 까나리 액젓으로 국물을 내 미각이 남다르다.
특히 이곳의 특산물인 까나리액젓은 김치는 물론 각종 무침이나 찌개에도 들어가는 약방의 감초이다. 까나리는 멸치처럼 생겼으나 이보다 약간 큰 7-8cm 크기의 작은 바닷고기이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으로 주로 액젓을 만드는데 쓰인다. 까나리는 소금과 7대 3의 비율로 절여 드럼통만한 플라스틱통에 담아 햇볕 아래서 1년 6개월간 발효시킨다.
백령도의 포구나 갯마을에 가면 까나리를 삭히는 수백 개의 플라스틱통이 늘어선 광경을 볼 수 있다. 잘 삭힌 까나리는 용기에 포장해 수협직판장이나 인천 연안부두 등지에서 판매한다.
백령도는 생태계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천혜의 섬이다. 따라서 희귀 조류들도 많이 서식하고 있다. 새들이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예로부터 노랑부리백로, 쇠가마우지, 괭이갈매기, 백로 같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특히 ‘바다의 까마귀’란 별칭이 붙은 가마우지는 몸빛이 검고 긴 것이 특징인데, 독특한 습성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천연기념물 제331호로 지정된 바다표범이 바위로 올라와 노니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섬 북동쪽 고봉포 앞바다에서 300m쯤 떨어진 ‘물개바위’는 국내 유일의 물범 서식지이다.
다시 찾아온 여름. 섬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백령도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자연이 내려준 천혜의 섬에 몸을 맡기고 하루쯤 내가 누구인지, 삶이란 대체 무엇인지 진지한 물음을 던져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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