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 반도의 메세타(이베리아 고원) 서쪽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포르투갈로 가는 직항은 우리나라에 없다.
포르투갈을 가려면 으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곳이다.
필자 또한 스페인에서 근 한달간 힘겨운 카미노 길을 걷고 나서,
지겨움에 이를 갈면서, 갖은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시외버스에 몸을 싣게 된다.

마'치 유배지를 떠나듯 스페인 땅을 벗어난다. 포르투갈에 대한 자료는 종잇장 두장이 전부. 스페인에서도 그랬지만 이곳도 홀홀단신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이다.
막연한 불안감은 ‘그저 사람 사는 곳, 방법은 있을거다’는 합리화뿐이다.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3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 듯하다. 가는 중간, 루고 등, 두어번 터미널을 찾아가 잠시 멈추던 차는 포르투갈에서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아닌, 호텔앞에서 멈춘다.
낯선 도시, 그곳에서 우선 할일은 information을 찾는 일이다. 택시를 타면 될 일을 이미 걷는 것에 익숙한데다 그다지 멀지 않다는 말에, 서투른 영어 몇마디에 의존하고 그저 느낌만으로 발길을 옮긴다. 몇 번이나 물어보는 일을 되풀이 한다. 하루만 지나면 금세 익숙해지는 곳이지만 첫 발걸음을 떼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아무리 찾아도 안내대는 눈에 띄질 않아서 우선 손쉽게 찾을 수 있을 듯한 경찰서로 방향을 바꾼다. 왜냐하면 스페인 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예약하고나서부터 여권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은 경찰관들의 우호적인 태도 덕분이다. 이곳은 스페인 사람들과는 달리 영어를 잘했는데, 몇마디 말로 얼버무리는 동양인 여자에 대해 그들은 한국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 했다.
태권도를 배운다는 경찰관은 ‘하나 둘 셋’하면서 구호를 외쳤고, 자기 스승의 한국이름을 대주기도 했으며 조서를 꾸미던 경찰관은 자기 아들이 태권도를 배운다고도 했다. 외국인이 한국을 알고 있다는 것이 매우 행복한 일이라는 것은 느껴본자는 안다.
분실신고를 하고 바로 옆에 있는 관광 안내대(tourlism information, 이것은 영문표기지만 지역마다 틀리다)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도 그저 몇마디 영어와 제스추어로 숙박지, 그리고 시외버스 터미널, 꼭 봐야 하는 중요한 여행지, 음식점까지 추천해달라고 한다. 가격이 저렴한 호스탈을 원했더니 이름, 위치, 그리고 가격까지 친절하게 체크해준다.
실제로 포르투갈은 가는 지역마다 인포멘션이 있었고 아주 친절하게 방향설정을 해주어서 여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 지도가 닳고 닳을 때까지 갖고 다니면 되는 것이다.
그날도 무거운 등짐을 메고 숙박지 골목을 지도 한 장 들고 찾아다니는데 골목이름도 낯설고 모양도 낯설다. 늘 그랬다.
그날도 엇비슷한 골목을 헤메다니며 물어물어 찾고 있는데, 골목에서 서성거리던 초로의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can I help you'하는 단어가 귓전으로 흘러 들어온다. 그 분은 골목 깊숙이 숨어 있는, 펜션 집의 색깔을 말해주고 갔는데, 우선 숙소를 찾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poeis(22-332420). 18유로에 아침까지 준다는 집이다. 어색한 영어발음을 하는 젊은 여인. 하지만 예약을 하지 않았기에 숙박할 수 없다는 답변이다. 어찌 해야 하나. 난감한 상황에서 그녀는 또 다른 집을 지도에 표기해준다.
이 지역의 펜션에는 H라는 글자가 써 있다. 별 표시에 따라 등급이 결정된다는 것도 염두에 두면 되고 그것만 전문으로 올려진 사이트도 있다는데 다음 유럽 여행을 가게 된다면 활용할 생각이다.
어쨌든 어렵사리 광장 앞에 있는 펜션을 찾았고, 방 한칸을 얻는다. 가격은 20유로. 대신 조식은 없고 잠만 자는 곳이다.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다.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고 문을 여니 복도보다 밑으로 내려간 아담한 공간에 2인용 침대가 놓여 있고 정갈한 시트가 깔려 있으며 한켠에는 세면대가 있었고, 자그마한 탁자위에는 재떨이가 놓여 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은 경사진 지붕으로 난 사각진 창문이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올 수 있고, 새의 끼룩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근 한달만에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날 필자는 ‘방 한칸의 행복’이 이렇게 큰 것인가를 생각했다. 나만의 공간을 20유로에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날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욕실은 공용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지사. 유럽 욕실 수준은 아는 사람은 다 알터. 겨우 한사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비닐 천막이 쳐 있다. 배수관 시설이 없기 때문에 물이 밖으로 튀면 무조건 물을 닦아 내야 한다.
물론 방바닥의 난방은 안되는 것도 기본적인 일. 선진국이라는 기대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 호텔에도 방바닥 난방은 되지 않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날 짐을 방안에 던져 놓고 처음으로 가벼운 몸이 되어서 포르토 시내를 걷기 시작한다. 배가 고프다. 긴장감의 연속에서도 늘 배는 고파왔고, 평생 먹지 않던 빵으로 요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기할 일이다. 골목 너머로 강이 보인다. 햇살 좋을 때 무조건 강쪽으로 가는 것이 우선이다. 강물은 오후 햇살이 부서지면서 은빛으로 빛나고 웃통을 벗어제끼고 낚시를 하는 사람도 만난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포르토의 음식을 시킨다. 여자 종업원이 추천해준 확실치는 않지만 ‘traditional cured meats and cheese sandwiches’라는 메뉴는 보기에도 양이 많다. 샌드위치 빵 속에는 고기와 베이컨과 치즈가 들어가고 빵 위에는 치즈를 녹인 듯한 소스가 흘러내리고 있다. 이 음식이 포르토를 대표하는 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그런 메뉴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포르토는 리스본 북쪽 280km 지점에 위치하며, 리스본에 버금가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다. 오포르토(Oporto)라고 불린다. 포르토를 멋지게 빛내는 강은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도루강 하구다. 수로가 발달된 곳이어서 예로부터 항구도시로서 알려져 있는데 강변과 깍아지른 듯한 도심의 집들이 어우러져 더욱 멋지게 각인되는 곳이다. 이곳은 로마제국의 일부였고 8세기에 이슬람의 침입으로 지배를 받았다. 11세기에 이슬람교도로부터 국가를 되찾게 되는데 그 때 큰 역할을 했던 프랑스 백작은 도우루 강과 그 위쪽의 미뉴강 사이에 낀 지역을 선물 받았단다. 그는 그 지역의 지명을 따서 포르투카리아 백작이라고 불렸다. 이 지역의 명칭이 국가명 포르투갈의 유래이기도 하다.
첫날 강변을 따라 걷는 재미만으로 아름다움은 충분히 각인될 수 있었다. 강을 잇는 다리(ponte D luis)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바와 와인판매장 노천바가 이어진다. 배를 탈 수 있는 크로저가 있고 다리 앞쪽에는 푸니쿨라가 있다.
며칠 뒤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위해 포르토에 도착했고 처음 왔던 집에 다시 숙박지를 정하고 몇 개의 박물관을 찾아다니다가 다리를 건너 와이너리를 찾았다. 아쉽게도 와이너리는 문을 닫아걸 시간. 잠시 잠깐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쨌든 이곳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포도주 생산지다. 이곳 포도주는 도루강 유역의 포도를 원료로 하며, 가을 수확기에는 주변의 계절노동자를 모아서 양조를 한다. 포도주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영국, 프랑스 등지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포트와인’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곳이 포도산지로 유명해진 때는 17세기, 오랜 견원지간 영국과 프랑스가 다시 냉전에 들어갔다. 단단히 토라진 프랑스는 영국에 와인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와인의 공급지를 새로 구해야 했던 영국이 찾아낸 곳이 바로 포르투갈.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영국까지의 항해는 한 달이 걸렸고, 그사이 와인은 초가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와인에 브랜디를 넣어 숙성시킨 포르토 와인이 개발된 것이란다. 알코올 도수가 더 높아졌고, 당분의 발효가 중단되어 더 달콤한 맛을 냈는데, 이것이 큰 인기의 비결이었다고. 그 후 포르투갈은 발달된 항해술로 일찍이 신대륙과 아시아에 진출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으로 서양와인을 접한 것이 바로 이 “포트”란다. 1945년 해방 후 몇몇 회사에서 만들었던 포도즙과 알코올을 혼합한 술과 각 가정에서 포도를 으깬 다음 설탕과 소주를 넣어서 만든 술도 이 “포트”와 비슷한 것이다. 아직도 와인은 달고 은근히 취하는 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오래될수록 좋은 와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이 “포트” 때문이라는 것이다. 포트는 숙성을 어디에서(나무통 또는 병 속)시키느냐와 숙성기간 등에 따라 여러 스타일로 분류된다. 루비(Ruby), 타우니(Tawny), 빈티지 포트(Vintage Port) 등인데, 빈티지는 병 속에서 오래 숙성시켜 특유의 복합적인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는 고급 포트라고 한다. 포르토 포도주가 너무 유명하다고 해서 저녁에 그릴에 구운 닭고기에 포도주를 먹었지만 색깔이 스페인보다 진하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바로 제조 방법이 틀리기 때문이다.
그 외 시청 거리도 좋고 그리고 성프란시스 교회의 고딕식 대성당과 유리벽으로 유명한 수정궁(水晶宮) 등. 시간 되면 시내 골목골목을 누비는 재미도 쏠쏠하다. 에로틱 박물관 찾아 헤매다가 발견한 좁은 골목길, 그리고 강변 따라 내려오던 가파른 계단이 있는 빈민촌 같은 골목길 등등. 은근슬쩍 비춰주던 강변의 아름다운 전경. 햇살에 한껏 색깔을 내주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그래서 리스본에서 만난 중년 남자가 표현했듯이 ‘like china'같은 느낌을 주는 곳. 그곳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 포르토가 아니었나 싶다. 아직도 깊숙이 못들어간 포르토 여행. 누군가 말해준 칙칙폭폭 열차를 타고, 강변길을 3시간 이상 달려간 마을에 정착해 보고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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