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최대 애로사항은 원자재가격 상승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원재료 물가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무려 79.8%나 뛰었다.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값이 치솟고 화물연대의 파업 등으로 물류대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국내 원자재와 중간재, 최종재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구매와 판매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소기업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먼저 중소기업이 구매할 때는 협상력이 약하기 때문에 해외나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오른 가격으로 사올 수밖에 없다.
유화원료·철강재 등 독과점 원자재를 공급받을 때는 대기업의 일방적인 가격결정과 통보로 값이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만든 물건을 납품할 때는 사정이 전연 달라진다. 마음대로 올릴 수가 없다. 중소기업의 약 60%가 조립 대기업 메이커나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수급사업자들이라, 원자재의 가격상승분을 제품가격에 제대로 반영시키지 못한 채, 대기업의 눈치만 살피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납품단가 연동제’를 강력히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자칫 인건비의 인상과 연쇄적인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납품단가 현실화는 中企의 오랜 바람

정책당국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의 대안으로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6월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를 제안한 바 있다. 이 제도는 당사자들이 계약을 맺을 때에 계약 이후 발생한 사정에 따라 원·수급자가 납품단가를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사전에 하도급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의무화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납품단가의 조정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자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고, 당사자 간에 조정협의가 안될 경우에만 하도급 분쟁조정위원회(중소기업 중앙회 등 11개 단체에 설치)를 통한 조정을 한다는 취지이다.
이에 곁들여 업종별 표준 하도급계약서 채택을 확산시켜 바람직한 계약문화를 조기에 정착시키겠다는 의욕도 보이고 있다.
그럴듯한 얘기이다. 수급업자(하청업체)의 입장이 다소 강화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반드시 실효성이 높다는 보장이 있을까. 우선 단가조정 협의조건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하도급계약서에 ‘납품단가를 조정 할 수 있는 방법’을 사전에 명시토록 하고 있지만, 자칫하면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들이 조정협의 의무제를 무력화 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中企 협상력 강화 방안 강구돼야

지금도 중소기업납품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직접신고를 받고 있다. 또한 대형 유통업체 등을 대상으로 불공정거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서면실태조사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거래단절 등의 보복우려 때문에 실태를 있는 그대로 밝히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 납품거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불공정거래 행위를 소신껏 신고할 간 큰 기업이 그리 많지 않다. 정부의 정책 노력은 평가할 수 있으나, 실효성이 낮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따라서 제도 도입에만 만족하지 말고, 제도가 현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고 있고, 그 효과가 과연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 파악할 필요가 있다. 철저한 현장 행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간 우리는 선진국 수준의 훌륭한 제도와 법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 정책효과가 매우 낮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개별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맞서 전면적인 협상에 나서기는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단가조정협의 조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개별 기업보다는 업종별 협동조합에 협상권을 위임할 수 있는 방안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취약한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기능강화방안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그간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상생협조노력이 강화돼 왔고, 그 효과도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의 법제화 과정에 중소기업의 협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는 안정장치를 보다 많이 강구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최용호
경북대학교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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