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 도착한 날, 한인 선교사 강목사를 만난 것은 오후 8시가 넘어서다.
낡은 봉고차에 아내와 아들, 그리고 다른 가족팀까지 차에 타고 있다.
켜켜히 쌓아 놓은 의자가 행사를 마친 흔적을 보여준다.
그는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곳에 자리잡은지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그가 안내한 숙소는 미국인이 지었다는 크리스찬들이 공부하는 그런 곳이었는데,
시내에서는 많이 떨어져 있는, 한눈에 봐도 고즈넉한 시골마을이었다.

포르토 펜션에서 자고 난 이후 난 또 독방을 쓰게 된다. 2인용 침대, 책상, 그리고 방안에 욕실을 갖춘, 유럽에서 최초로 만난 최상의 숙박지이고 가격은 가장 저렴했다.
강목사는 너무 친절해서 다음날 오전 10시경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매일 일찍 일어난 습관이 몸에 밴 탓에 버스 정류장을 앞당겨 걸었다. 배도 고파서 요기를 해야 할 터다. 마침 정류장 앞 동네에 자그마한 바가 있고 신문을 펼쳐든 중년 남자가 문을 열고 있어서 들어가 빵을 시킨다. 그는 햄버거 빵조각을 지저분하게, 생각없이 칼로 자르고 치즈 한조각과 우리나라 소세지 닮은 ‘초리서’를 넣으려 한다. 고개짓을 한다. 익히지 않은 고기에 익숙하지 않은 터라 정말 굶어죽지 않을 상황이라면 이제 그 초리서는 그만 먹고 싶다.
대신 베이컨 한조각을 넣어 만든 샌드위치 한조각과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말 통하지 않은 사람과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지 못한 강목사는 숙소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고 난 식사비를 계산하려고 했다.
그런데 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빵 만들면서 무어라 말을 했던 것이 그냥 주겠다는 말이었나보다. 이곳에서 돈을 안받는 경우는 없다.
물론 코스요리에 서비스로 무한정 포도주를 주는 곳은 봤지만 바에서, 영업집에서 돈을 안받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인심이 이곳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럽에 도착해서부터 느꼈던 내용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날은 그렇게 공짜 아침을 먹었고 그 숙소에 머무는 동안 매일 찾았던 것 같다.
휴일이 지나고 나서 우선 찾은 곳은 포르투갈 대사관이다. 건물 입구 한켠에 자그마하게 한글로 쓴 대사관 간판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오전을 보내면서 임시여권을 만들었다. 그 과정은 길지 않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여권을 받아들었을 때, 지독하게 준비없이 온 여행이지만, 그래서 지독하게 고생한 여행길이지만 사람 사는데는 웬만해서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반나절이라는 시간을 소비해버리고 나서야 하루 일정이 걸린다는 신트라(Sintra) 지역으로 찾아나선 것이다.
이곳은 기차를 이용하면 되는데, 로시오 광장 바로 앞에 있는 큰 건물 안쪽에서 표를 사면 된다. 그저 편도 표 한 장 구입하고 신트라행에 올랐는데 나중에 신트라-로카곶-카스카이스를 거쳐서 시내 지하철역까지 오는 표가 있었다는 것은 일본인 여성을 만나고서다.
1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신트라에 내렸고 어김없이 지역 안내대에서 지도 한 장 받아든다. 이곳저곳 동선을 짜주지만 세군데를 반나절에 돌려면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할 수가 없다. 그저 도심에서도 훤히 보이는 성만이라도 보고 가겠다는 생각이다. 우선 이 신트라는 포르투갈 리스보아주에 있는 관광도시로 리스본에서 서북서쪽으로 20km 지점에 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위대한 에덴(the glorious Eden)’이라 표현했고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경치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신트라 성까지 가는 버스(434번)는 매우 자주 있는데 버스 티켓은 왕복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마란다. 어쨌든 이 신트라에는 13∼15세기의 왕궁인 신트라성(城), 시가를 내려다 보는 페나성(城), 아름다운 정원인 몬세라테 등이 유명하다. 신트라성은 흰색 기둥탑 2개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으며 창문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고 분수대, 30m 높이의 부엌 등 볼거리들이 많다. 페나성은 16세기에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이었으나 1839년 페르난도(Fernando) 2세가 개축한 후에는 왕들의 여름철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해발 450m의 산꼭대기에 우뚝 솟아 있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날씨가 좋으면 리스본과 테주강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은 곳이다, 궁전 주위의 페나공원에는 세계 각국에서 가져온 30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지난 95년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필자는 12세기 중반까지 이곳을 지배하던 이슬람교도들이 조성한, 7-8세기의 성채유적지(Moorish Castle)만 시간관계상 찾았다. 성벽을 따라 오르는 길은 마치 담양의 산성산을 닮아 있다. 발밑으로 펼쳐지는 전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막힘없이 탁 트인 성벽 누각. 연인한쌍이 떨어질 줄 모르고 키스를 하고 있다. 어쨌든 이곳은 매년 여름 도시에 산재한 교회와 궁전, 공원 등에서 큰 규모와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신트라 음악 페스티벌’이 펼쳐진단다.
다음 행성지는 로카곶(403번)이다.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한 버스를 타고 로카곶이라는 곳으로 옮긴다. ‘곶’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제주도의 ‘코지’라는 이름과 엇비슷하다. 이곳은 유라시아대륙의 최서단으로 선원들은 ‘리스본의 바위’라고 부른다. 높이 144m의 화강암 절벽에 등대가 있어 좋은 항로 표지가 되는 지점이다. 말 그대로 바닷가 끝자락. 그곳에 키 작은 꽃들이 피어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멋진 풍치인가. 날씨가 꾸물거리는 것이 아쉬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는 루이시 드 카몽이스라는 시인이 쓴 시는 보지 못했다. 그저 우뚝 서 있는 탑만 보았을 뿐.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이지만 어디 놓친 것이 이것 뿐이겠는가.
어쨌든 이곳에서 또 한국인 단체는 물론 30대 후반이라는 혼자 온 일본 여성을 만났다. 동양인과의 만남이 좋은 것은 어색한 영어를 서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로카부터 카스카이스까지는 그녀와 함께 한다. 책을 들고온 그녀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얹어 듣는다. 에부라, 코임브라 등. 남녘의 바닷가도 갔다 왔다는 그녀지만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 포르토의 6일간의 일정이 너무 짧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날 그녀와 같은 버스를 타고 카스카이스의 바다보다 더 멋진 골목의 샵과 주택가를 보면서 기차를 같이 탔다가 표가 없는 탓에 헤어지게 된다. 하루 정도 꼭 할애해서 가야할 아주 멋진 여행장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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