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크게 자라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경제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튼실하면 경제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며 지은 용비어천가에도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나무는 씨앗을 심으면 처음 4년 동안은 아무 것도 돋아나지 않는다. 5년째에 죽순(竹筍)이 솟아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대나무는 15~25미터 높이로 자란다. 4년이란 기간은 뿌리를 튼튼히 내리기 위한 준비 기간이다. 위로 성장하기에 앞서 튼튼한 뿌리를 먼저 내려 그 뿌리의 힘을 바탕으로 성장하려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창업과 육성, 기술개발도 이와 같아야한다. 급하면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철저히 준비하라는 말이다.
선진국은 좋은 기업, 자랑할 만한 기업이 많고 더욱이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다. 중소기업이 건전하게 발전해야 대기업은 물론 국민경제 전체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우리가 대·중소기업 상생(相生)을 강조하는 까닭이다.
독일에는 숨은 강자들(hidden champions)이 많다. 이들 중소기업은 제품의 품질에 자신감을 갖고 제품을 가격이 아니라 품질로 팔겠다고 한다. 독일 중소기업에는 끊임없이 혁신하고 한 우물만 파는 장인들이 많고 그들이 만든 제품이 세계시장을 누빈다. 독일은 장인들에 의한 전문기술형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미국은 첨단기술에서 강하며, 일본은 오랜 기간 동안 기술을 축적, 기술경쟁력에서 앞서간다.
‘중소기업 지원 육성’이라는 구호가 여전히 등장하는 것은 중소기업의 사정이 어렵다는 걸 반영한다. 중소기업의 대기업 의존도는 높아졌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납품대금을 제때 또는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리고 있는 것은 이를 말해준다.
중소기업의 수명은 외국에 비해 짧고 생존율도 낮다. 5년 이상 생존하는 중소기업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일본(72%), 독일(62%), 미국(38%)에 비해 뒤져 있다. 왜 그런가. 중소기업은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고유의 기술이나 아이디어 없이 창업했거나 환경의 변화에 견디지 못해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11일 ‘제1차 중소기업 성공전략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 일부 예산낭비 지적도 있었지만 다시 한번 정부가 제2의 기술 창업의 붐을 일으킬 시점”이라고 했다. 방향은 옳지만 창업 붐을 일으키는 데에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벤처투자를 막는 ‘전봇대’는 없는지, 기술과 아이디어보다 지원에 기대어 벤처행세를 하려는 가짜 벤처는 없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벤처창업은 100% 성공이 보장되지 않고 실패확률도 높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해야하고 실패 그 자체는 또 하나의 자산일 수 있다. 그러나 도전한다는 것과 준비 없이 서둔다는 것은 다르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중소기업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면 정부 내에서 중소기업정책을 경쟁적으로 과다하게 도입한 경우가 흔했다. 단기간에 효과를 거두려는 성급함도 있었다.
우리의 대일(對日) 무역적자는 해마다 늘어 2007년에는 300억 달러에 달했다.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시급한 것은 부품·소재산업의 육성이다. 이들 산업은 조립산업과는 다르다. 기술개발에 매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나무처럼 오랜 기간 인내하며 기초를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중요하고 더욱이 기술개발이 중요하면 할수록 단기간에 효과를 거두려는 성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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