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인 악재로 인해 한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와중에서도 높은 경쟁력과 호황을 누리는 업종 중의 하나가 조선산업이다. 대중소기업간 상생 문제도 잘 안 풀리고 있지만 조선 관련 중소기업들의 경영성과는 매우 높고, 이에 힘입어 코스닥에 상장되는 회사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조선의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불과 30여년 만에 세계시장을 주도하게 되었을까? 아직 일본이 버티고 있고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향후 10년정도는 확고한 경쟁우위를 누릴 수 있다고 본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딜레마를 벗어난 모델로서 조선업의 성공요인을 통해 한국 경제에의 시사점을 찾아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선두주자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지만 그 가능성을 만들어 낸 것은 90년대 공격적 투자(aggressiveness)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일본은 조선업의 성장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합리화를 도모했지만, 한국은 과감한 투자전략을 택했다.
선행적 투자 없이는 일본과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다고 본 기업가들의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중국경제의 급성장과 유가 인상으로 인한 정유 수송의 증가 등으로 조선시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한국의 공격적 투자가 높은 성과를 실현하게 된 것이다. 물론 공격적 투자가 다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은 아니지만 남보다 한 발 앞선 대응과 투자 없이는 글로벌 경쟁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한 발 앞선 대응과 투자 필요

두 번째는 유연성(flexibility)이다. 일본이 표준선 중심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했을 때, 한국은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설계를 하고, 필요시 설계변경을 주저하지 않는 유연성이 고객만족도를 높였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설계인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맞춤 생산에 유리했었다. 일본에 비해 내수 시장이 빈약한 한국 기업들은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통신 네트워크 장비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인도 자신의 경쟁력의 핵심이 고객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유연성이라고 한다.
세 번째는 속도(speed) 경쟁력이다. 제작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육상공법, 침수공법, 해상건조 공법 등 혁신적인 생산방식을 창안했다. 한 곳에서 엔진과 보일러 및 연관 부품을 제작하는 집적화도 공기를 단축하는데 기여했다. 더욱이 노사분규 없는 산업평화도 시간싸움에서 유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우리 강점 최대한 살려야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들 가운데 여건 변화로 인해 곤경에 처한 기업들이 많지만 신속한 대응을 통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든 기업들도 있다. 최근 만난 한 기업가는 연안지역의 여건이 나빠질 조짐이 보이자 2시간 거리의 내륙 소도시로 공장을 이전해 인건비 절감효과와 함께 지방정부의 우호적 지원 속에서 높은 성과를 실현했다고 한다. 한 발 빠르게 움직이는 스피드 감각이 효과를 거둔 것이다.
한국의 조선회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공격적 투자를 한 것은 일본을 따라 잡겠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이 빈약하다는 약점이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긍정적 힘으로 전환되었다. 한국사람 특유의 신속성이 납기단축이라는 경쟁력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조선업이 성공을 하게 된 것은 이와 같이 다양한 요인들이 긍정적 시너지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게임을 해야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고정관념이나 과거의 관행에 사로잡히다 보면 유연성이 떨어지고 속도감각도 둔해 진다. 지금 한국의 현실을 보면 사회의 약점만 노출되면서 우리 특유의 강점은 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샌드위치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감한 도전정신, 유연성, 스피드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업가들이 앞장서서 뛰도록 해야 하며, 정부는 그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들로부터의 격려와 응원의 박수가 있다면 더욱 큰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한 정 화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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