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들의 단체행동이 심상치 않다. 연초부터 지속적인 원가상승 압박에 견디지 못해 벌써 두 차례나 납품중단 사태로 대국민 시위를 선언한 중소업체들이 7월 12일부터 납품단가 연동제에 관한 명시적인 법제화를 위해 백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앞으로는 납품단가 연동제에 구애됨이 없이 하도급 공정거래 협약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적인 납품단가 협의를 수시로 추진하겠다는 대국민 공표가 나온 지 몇 시간이 못돼 30년 가까이 납품해온 특정 중소기업을 납품단가 연동제를 지나치게 고수한다는 점 때문에 오랜 동안의 납품계약을 파기하는 야누스의 기업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주무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식경제부의 눈치를 보면서 시장원리에 맡기겠다는 소극적 논리에 맞춰 기존에 추진돼 온 표준계약서의 자율성을 보다 강화하는 납품단가 조정 협의제를 추진하겠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납품단가 연동제를 둘러 싼 중소기업들의 불만이 백만인 서명운동으로 번졌다.
기업간 자율협약에 의존해야 하는 원가문제에 정부가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에 위배된다는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납품단가 연동제를 강조한 한 중소기업에 대한 삼성의 일방적인 납품계약의 파기 사례와 같이 항상 약자인 ‘을’의 지위에서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자율적인 상생협약에 기초한 시장기능의 자율적 조정기능에 의지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정부는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납품단가 자율조정 현실성 없어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본질적으로 시장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보완과 육성에 의해 시장원리를 회복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이 백만인의 서명운동이나 전국적인 시위를 통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기 시작했는지 시위를 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은 착잡하지만, 무엇보다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들이 공장을 폐쇄해야하는 한계상황에 몰려 대국민에 대한 호소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제도적 요인 역시 안타까움을 지나 분노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례가 미흡하고, 관계 부처간 합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몸을 사리는 담당 공무원들의 안이한 사고방식이 자율적인 시장기능에 맡기겠다는 애매모호한 납품단가 조정 협의제로 귀결되고 있음을 보면서 참으로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정부 부처간 주도권 싸움도 하루 이틀이 아니요, 담당 공무원의 절충 노력도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적당한 타협으로 지켜지지도 못할 조정협의제를 기반으로 하는 자율적 납품단가 조정제도의 배경에는 한국경제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보다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협동조합에 조정권 부여돼야

중소기업들은 최소한 납품단가 조정 협의제를 의무사항으로 할 경우, 최소한 조정권만이라도 중소기업협동조합과 같은 제3의 기관에 맡겨서 보다 객관적이고 타당성 있는 협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분쟁당사자들이 다시 조정을 거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실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돼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다.
정책의 가장 중요한 기본원리가 보편타당성과 객관성의 유지라는 점에서 기존의 다양한 중소기업 지원기관들에 의한 납품단가 조정범위와 방법 등의 합리적인 제3의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제도만능주의적인 형식적 규정에 맡기는 현재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실효성과 그 성과가 보다 구체화될 수 있도록 세심하고 예측가능한 제도적 보완은 분명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경제학의 기본 상식에 매달려 적극적인 정부의 시장기능 조성을 위한 중개기능을 무시하는 현재의 납품단가 연동제 개선방향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분쟁당사자들이 다시 분쟁을 조정하는 것이 시장기능에 충실하다는 정책의 형식주의가 거버넌스로 강조되는 성과와 현장중심으로 조속히 바뀌기를 기대해본다.
가뜩이나 고환율과 세계경제의 침체 속에 원자재가로 인해 생존의 기로에 몰린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정책의 동반자로 새롭게 인식되기를 기대한다.

최용록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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