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높푸른 하늘과 연갈색으로 타들어가는 산과 들판, 주렁주렁 열린 과일, 알알이 여문 벼이삭…. 모든 것이 넉넉해 뵌다. 여기에 9월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메밀꽃도 우리네 마음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메밀꽃 하면 평창이 떠오른다. 평창 중에서도 봉평면(창동리와 흥정리 일대)은 메밀꽃이 지천이다. 이곳(창동리 효석문화마을 일원)에서는 9월 6일부터 15일까지 가을 축제의 백미인 효석문화제가 열린다. <메밀꽃과 함께 하는 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문학과 공연예술, 체험 행사, 전통 민속놀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1975년부터 매년 열어 온 효석백일장을 발전시켜 1999년부터 효석문화제로 열리고 있는데 해가 갈수록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축제는 수만 평의 메밀꽃밭을 중심으로 전국사물놀이경연대회, 퀴즈대회, 평창아라리공연, 메밀국수 만들기, 도리깨질, 섶다리 건너기, 종이배 띄우기, 수수깡 체험, 봉선화 물들이기, 쑥버덩 소리공연, 타악과 퓨전뮤직 공연, 문학나눔콘서트, 시화전, 소설낭독, 우마차 끌기, 찹쌀떡치기, 지게지기 등 다양한 행사가 매일 여행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문화제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기획전에서는 봉평의 어제와 오늘 사진전, 전국 사진공모전 입선작 전시전, 문학행사사진전 등 400여점의 자료를 선보인다. 흥정천의 섶다리 근처에는 소설 속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를 만나 하룻밤 사랑을 나눈 물레방앗간이 재현돼 눈길을 끈다. 당시 소설 속 모습을 재현한 먹거리 장터에는 메밀묵과 메밀국수 등 갖가지 토속음식이 입맛을 당긴다. 축제문의: 이효석문학 선양회(www.hyoseok.com/ 033-335-2323-4).
봉평면 창동리는 가산 이효석이 태어난 곳이다. 말끔하게 단장된 생가터에 가을 햇살이 담뿍 내리쬐고 있다. 이효석은 이 집에서 6년 동안 살았다. 그는 저 앞에 펼쳐진 메밀꽃밭을 벗삼아 우리 문학사에 길이 빛날 작품을 잉태시켰다. 생가터 아래에는 가산 공원이 있다. 공원 안에는 이효석의 흉상과 문학비가 서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개울 너머로 물레방앗간이 보인다. 소설 속에서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사랑을 나누던 곳이다. 가산 이효석은 해방 3년 전인 1942년에 세상을 떠났다. ‘메밀꽃 필 무렵’은 그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 짧은 생애(36세에 요절)를 살면서 70여 편의 단편소설과 많은 수필을 남겼다. 고향의 자연과 고향 사람들 얘기를 작품 속에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현장감을 최대한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산공원 한쪽에 들어선 이효석문학관(033-330-2700)은 학예연구실과 메밀자료실, 문학교실 등 가산의 문학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가산공원 안쪽에는 봉평장이 선다. 봉평장은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분위기가 흡사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충주집과 물레방아도 재현해 놓았다. 봉평장은 끝자리가 2일과 7일에 서는 오일장이다. 감자, 고구마, 오이, 상추 등등 싱싱한 먹거리들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장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밥집이다. 봉평장에서 맛본 메밀묵과 부꾸미는 진미였다. 메밀묵은 입안에서 잘게 부서지는 맛이 일품이고, 감자를 갈아 지진 다음 그 위에 김치 조각을 얹어 만든 감자전도 별미. 메밀 반죽을 부친 다음 그 안에 김치, 잡채 같은 재료를 넣어 먹는 것이 부꾸미이다. 메밀 막국수는 봉평의 토속 음식이다. 메밀을 곱게 빻아 채로 친 다음 반죽을 해서 국수틀에 넣고 끓인 물에 뽑아내려 찬물에 헹궈낸다. 여기에다 무즙, 육수, 소금, 식초 같은 재료를 넣고 간을 맞춘 육수에 말아 열무김치와 함께 먹으면 입안에 감도는 달착지근한 맛이 일품이다.

<주변의 볼거리>
봉평장터에서 장평 쪽으로 돌아나오다 보면 왼쪽으로 봉산서재가 보인다. 봉평면 평촌리 동편 산기슭에 자리한 ‘봉산서재’는 율곡 이이 선생이 태어난 것을 기리기 위해 마을 유림들이 1906년에 창건(創建)한 사당(祠堂)이다. 봉산서재 오른편 앞들 물가에는 조선 중종때 강릉부사로 부임하던 양사언이 빼어난 산수에 취해 8일간 노닐다 갔다는 팔석정(八石亭)이 있다. 이곳에는 8개의 큰 바위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 바위들은 주변의 풍치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양사언이 바위에 조각해 놓은 ‘팔석정’이라는 글씨체가 아직도 남아 있다.
팔석정에서 영동고속도로 장평 나들목 쪽으로 나오다 보면 흥정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10월이면 이곳은 계곡 양편으로 노랗고 붉은 단풍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흥정산에서 발원한 흥정계곡은 사철 아름다운 색깔로 길손을 유혹하는데, 오염 안 된 맑은 물에는 냉수성 어류인 송어, 산천어, 열목어가 집단으로 서식한다. 흥정계곡 중간쯤에는 허브나라농원(www.herbnara.com, 033-335-2902)이 있다. 130여 가지의 허브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탐방객들을 위해 방갈로형 방을 갖추고 있으며 약 6,000평에 달하는 허브꽃밭과 허브차를 맛볼 수 있는 찻집이 있다.
평창 여행의 진수는 오대산이다. 오대산 들머리인 상진부까지는 자동차로 20여 분 정도 걸린다. 오대산으로 가기 전 들러볼 곳이 있다. 월정사 입구 도암면 병내리 계곡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www.kbotanic.co.kr, 033-332-7069)이다. 3만3000여 평의 산자락에 1200여종의 야생화들이 자라는 국내 최대의 우리꽃 식물원이다. 가을빛이 무르익은 이즈음에 찾으면 구절초, 용담, 둥근잎 꿩의비름, 개미취, 쑥부쟁이, 물매화, 각시취 같은 꽃을 만날 수 있다. 1.2㎞의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기분이 참으로 좋다. 10월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한다. 입장료 5000원, 모두 둘러보는데 1시간 30분에서 2시간쯤 걸린다.
태백산맥의 허리에 해당하는 오대산은 숲길 사찰 꽃밭 계곡 약수터 등이 곳곳에 자리해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오대산이 품고 있는 월정사와 상원사, 적멸보궁은 사연도 사연이려니와 이 산의 깊이를 더해주는 고찰이 아닐 수 없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은 전나무 숲길이 에워싸고 있다. 수령이 수 백 년에 이르렀을 법한 굵디굵은 전나무들이 1㎞가량 늘어서 있다.
<목가적인 너무도 목가적인 풍경, 삼양목장과 양떼목장>
횡계읍내에서 시멘트 길과 흙길을 번갈아 타고 한참 거슬러 오르면 대관령 삼양목장에 다다른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풀을 뜯는 소떼와 하늘과 맞닿은 듯 이어진 둔덕이 길손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해발 800~1400미터 고지대에 광활하게 펼쳐진 삼양목장(도암면 횡계2리)은 넓이만도 자그마치 600만평. 이는 여의도 땅의 7.5배로, 그 중 450만평이 초지다. 목장 구석구석 돌아보는데 차(4륜구동)를 몰고 2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목장의 한가운데인 중동 초지(해발 1천1백미터)에 서면 목장 풍경이 한눈에 잡힌다.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린 듯 자연과 하나 되는 기분이다. 바람에 너울대는 나무들과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 아스라이 펼쳐진 초원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목장 입장료 5,000원. 숙박예약자는 입장료 50% 할인. 평일 아침 8시~오후 5시 개방. 주말엔 오후 6시까지. 정문 안내소에서 대관령의 야생화 사진과 함께 목장 지도가 실린 팜플렛을 나눠준다. 소떼는 오전 10시~오후 4시에 풀어놓는다. 하지만 넓은 목장에서 소를 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소를 보려면 먼저 방목 지역을 알아본 뒤 목장 지도를 보고 찾아가야 한다. 홈페이지(www.samyangranch.co.kr) 참조.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상행선) 뒤쪽, 선자령 등산로 들머리에는 양떼목장(www.yangtte.co.kr)이 있다. 이곳에도 삼양목장처럼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정말이지 목가적이고 아름답다. 야트막한 산비탈이 온통 푸르다. 6만여 평의 초원을 한 바퀴 둘러보노라면 동화 속의 목동이 된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초원길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 아이들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여기저기 피어 있는 야생화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목장 한쪽에는 방문객들이 직접 양들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장도 마련돼 있다. 문의: 목장관리사무소(033-335-1966)
시간 여유가 있다면 대관령의 한 자락에 솟아있는 선자령(1157m)에 올라가볼 것을 권하고 싶다. 가는 길은 흙길과 시멘트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군데군데 이어붙인 시멘트길은 산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키지만 흙길이 시작되면 비로소 선자령의 본래 모습이 드러난다. 등산로를 에워싼 짙푸른 수목은 벌써 가을 옷으로 갈아입었다. 해발고도가 높아 9월 중순이면 한기가 맴돈다. 산행은 대관령 휴게소에서 시작한다. 길가에 오종종 핀 야생화를 보며 10분 정도 올라가면 항공통제소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이어진다. 정상으로 오르다 보면 능선으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지만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장쾌한 맛을 선사한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33)=영동고속도로 장평 나들목을 나와 6번국도를 타고 봉평 방향으로 간다. 장평에서 봉평 행 시내버스가 다닌다. 자생식물원은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을 빠져나와 국도 6호선을 따라가다 월정사와 진고개로 갈라지는 삼거리 바로 직전 왼편길로 접어들면 된다. 삼양목장은 영동고속도로 횡계 나들목에서 456번 지방도로를 타고 횡계읍내 네거리를 지나면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해 들어가다 한일목장과 갈리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1.6㎞ 들어가면 삼양목장 정문이 나온다. 횡계읍내에서 목장 정문까지 7㎞ 정도. 신작로와 포장길이 반반씩 이어지므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양떼목장과 선자령은 횡계읍내에서 옛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대관령 고개(휴게소) 못미처에서 들어간다.
▲잠자리와 맛집=봉평면 소재지인 창동리와 흥정리 일대에 펜션이 많다. 아침이슬펜션(332-2023), 찔레꽃울타리(332-2207), 솔내음펜션(336-5525), 숲속의요정(336-2225), 계곡민박(336-2881) 등. 봉평에서는 이 지역 특산물인 메밀음식을 먹어볼 수 있다. 두레막국수(336-0074), 진미식당(335-0242), 방림막국수집(332-1151), 고향막국수(336-1211), 남촌막국수(335-0227) 등이 맛을 제대로 내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월정사 입구의 서울식당(332-6600)은 산채정식이 유명하다. 용평리조트 가는 길목에 황태찜을 내놓는 식당이 여럿 있다. 노다지(335-4448), 황태회관(335-5795) 등. 횡계 사거리 부근 새마을금고 옆 ‘대관령 숯불회관(335-0020)’에 가면 대관령 한우 숯불구이를 맛볼 수 있다. 숯불에 은근히 익은 맛이 쫀득하면서 고소하고 담백하다.

글: 김 초 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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