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선 때마다 선거공약에 ‘중소기업 육성’이란 항목이 들어 있었다. 정부편제에도 중소기업을 전담하는 기관들이 엄연히 있고 지원단체, 연구소들도 많은데, 또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현실은 계속 막막하다.
예를 들면, 지난 주 모 일간지가 편집·보도한 中企대표 5인 난상토론 기사를 보니 “정말 한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소기업에 관한 학술세미나, 정책토론회들도 분위기는 비슷한 맥락이다.
흔히들 사업체수 99.7%, 종사자수 83.9%, 수출의 43%라는 중소기업의 비중을 말하면서도 그들은 이 시대의 주인공 입장이 아니라 늘 변두리 운동권처럼 말하고 울분을 토로한다. 중소기업은 영원한 운동권인가? 우리의 정원이 왜 이렇게 거칠어졌는가?
중소기업에 대한 관점의 문제가 무엇보다 심각하다. “기업 중에서 진짜 중요한 기업은 따로 있고 중소기업은 덜 중요한 것, 중소기업 중에도 꽤 괜찮은 기업이 있지만 대부분은 형편없는 것들”이라는 식의 중소기업 경시풍조가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돼 있고, 대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하니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가중된다고 한탄하는 소리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대학생들이 있다면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가?

中企 경시풍조 누구 책임?
1차적으로는 정책당국과 중소기업 유관기관들의 책임이고 2차적으로는 중소기업자 자신들의 책임일 것이다. 정책당국과 중소기업 유관기관들은 각종 세제, 자금, 인력, 판로 지원에서 그들의 인센티브 제공 기준과 관행을 수정해야 한다. 나무를 심고 가꾸고 키우는 원예사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진정한 원예사는 잘 자라는 나무만을 골라서 물과 비료를 주지는 않는다. 생명, 환경, 항존성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물론 경쟁력은 중소기업자 자신들의 책임영역이다. 상당한 경쟁력을 과시하면서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그렇지만 인큐베이터의 아기들에게 경쟁력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그늘에 심어진 나무에게 왜 잘 자라지 못하느냐 야단을 칠 수 있겠는가? 개별기업의 경쟁력과 인센티브라는 잣대만으로 모든 중소기업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하다.

이제 ‘항존성’에 초점 맞춰야
모든 산업은 상호연관적이다. 제조업이 망하면 서비스업도 흔들릴 것이다. 서비스업이 침체하면 제조업도 판로가 확대될 수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는 산업별·기업별 ‘단기적 경쟁력’을 최고·최선의 정책철학으로 삼았다. 이제 우리는 21세기 선진경제, 신경제를 지향하면서 정책철학을 바꿔야 한다. 이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인터넷 검색엔진 야후(www.yahoo.com)에 들어가 ‘sustainability(항존성)’이라는 단어를 넣고 한번 클릭 해보자. 무려 120만 건의 자료가 떠오른다.
세계는 지금 신경제의 새 용어인 항존성, 다시 말해서 기업의 항존성, 지역사회의 항존성, 환경의 항존성을 위해 경제와 사회와 환경을 종합 관리하는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단기적 경쟁력에 급급해 인센티브의 녹슨 칼을 휘두르는 방식으로는 중소기업을 살릴 수 없다. 외형적 수치에 치중하는 서투른 목표관리(MBO)를 집어던져야 한다.
심고 가꾸고 키우는 정원사의 마음가짐을 배워야 한다. 현명한 정원사는 자기 세대만 생각하지 않고 다음 세대가 가꿀 부분까지 생각한다. 자기 울타리만 생각하지 않고 세계를 생각한다.
jklee@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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