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비만 넘기면’ 하고 사는 게 세상살이다. 그래서 세상살이는 끝없는 ’고비 넘기‘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기업경영은 순풍에 돛달고 항해하는 게 아니다. 파도를 만나고 또 다른 큰 파도를 헤치면서 항해하는 파도타기 장애물 경주와 다름없다.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경제의 위기상황은 한국경제에도 태풍을 몰고 왔다. IMF 한파를 경험한 탓에 우리는 더 큰 위기감에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KIKO 계약, 은행 장사속에 넘어간 것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특별하다. 문제의 키코(KIKO)가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기업들이 KIKO계약을 많이 했던 시기는 환율이 떨어지는 추세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환율이 상승하는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기만 한 상품이 있을까. 환율이 정해진 상한선을 넘어가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돼있는 고위험상품인데 그런 위험에 눈감고 기업들이 오버 헤지까지 했다.
고위험 투기상품에 많은 중소기업이 당한 건 환 위험 회피에 대한 지식의 부족에다 은행의 장사 속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은 KIKO를 ‘무위험 무수수료 상품’이라며 판매 경쟁을 벌였다. 이를 판매한 은행 당국자도 이에 가입한 기업도 KIKO라는 상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니 모두가 귀신에 홀린 것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도 있을 수 있지만 그걸 바라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하나. 하지만 어쨌든 이 고비를 넘겨야한다. 오늘날 암도 거의 극복되는데 죽으라는 법은 없다. 솟아날 구멍은 있다.
우선 KIKO로 고통받는 기업에 장기저리대출을 해주고 분할상환을 가능하게 해야한다. 멀쩡한 흑자기업의 도산을 막아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은행에 1조원 어치의 정부보유주식을 현물출자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에 자기자본의 12배인 12조 추가대출여력을 확보할 수 있게돼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들은 시간과 공간을 선점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한마디로 상대선수들보다 더 많이 뛰는 전략이었다. 체력훈련을 많이 해서 쉴새없이 뛸 수 있었고 그래서 허리부분, 즉 미드필더가 강화돼 수비와 공격의 연결이 원활했다. 4강 신화를 이룬 바탕이었다.
경제의 허리부분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이 만드는 부품과 소재의 품질이 우수하지 않으면 자동차 선박 등 한국의 대표적 수출제품의 경쟁력은 확보하기 어렵다. 대기업 제품은 거의 중소기업과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相生)을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스스로 일어서려는 노력 필요

KIKO문제가 발등의 불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이 스스로 발전할 힘을 길러야한다. 세계적 불황으로 세계 각국은 보호무역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12월 미국 대선에서 집권 가능성이 보이는 미국 민주당은 보호무역을 선호해온 정당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인 중국경제가 저조하면 한국의 수출에도 어려움이 닥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믿을 건 우리 자신이다. 기술개발은 물론 서비스 개선 등 모든 분야에서 열심히 뛰고 또 뛰는 길밖에 없다. 많이 받고 덜 일하려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부터 바꾸고 잘못된 관행이나 법질서 위반행위도 바로 잡아야한다. 지금은 고비용·저효율 요인을 털어내는 개혁을 할 때다. IMF때 그럴 기회를 놓쳤지만 이번에는 놓쳐선 안 된다. 위기가 기회라고 하면 한가한 소리라고 할 사람은 많을 것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불만만 토로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일어서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햇살만 내려 쪼이는 곳은 사막이 된다.” 위대한 투자가 존 템플턴은 호경기만 있는 사회는 오히려 위험한 사회임을 지적했다. 위기가 기회임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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