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천천히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 천천히 살아가려고 하고 있을까? 현실은 어떠한가? 강박관념에 쫓겨, 정적이나, 한가함이 오히려 불안해지는 직업병을 갖고 사는 현대인들이 일부 특정한 사람들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도 일상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어디에 와 있을까?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생기는 사람이라면 국내에 지금까지 단 네 곳뿐인 슬로우 시티를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

슬로우 시티(Slow city)라는 단어는 아직 귀에 익숙하지 않다. 2002년 7월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전 세계 10개국 93개 도시가 가입돼 있는데, 아시아 지역은 올초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전남 4곳(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을 슬로우 시티로 지정받았다.
슬로우 시티를 풀어 쓴다면 ‘속도지향의 사회’ 대신 ‘느리게 사는 삶’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과거로 회귀하자는 이념이 아닌 보다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 철학이 기본이 된다. 빠른 생활과 반대 개념으로 자연환경 속에서 고장의 먹거리와 지역 고유 문화를 느끼며 쾌적한 삶을 향유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아직은 단어조합도 인식되지 않은 때, 그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전남 담양 창평마을을 찾는다.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소읍. 약국, 이발소, 빵집, 떡방앗간, 손만두집 등등. 사람 모여 사는 곳이라면 으레 필요한 가게들이 마을 중앙 길을 사이에 두고 열 지어 이어진다. 부산하게 차들이 이동하는 길목, 그래서일까? 5일(5, 10일)장터 옆으로는 제법 오래된 듯한 순대국밥집들이 촌락을 이루고 있다. 새로 개조한 듯한 장옥은 굳게 철문을 내려 두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이 마을을 느끼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오래전에는 이른 저녁을 준비하려 군불 지피려는 시간이 다가온다. 흐릿한 날씨. 마을 안쪽의 좁은 길을 따라 가다 슬로우 시티로 지정되면서 지은 듯한 한옥 집을 만난다. 담장 낮은 골목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창평 쌀 엿’마을을 알려주듯 대문 앞에 조악한 간판들이 걸려 있다.
이 마을에는 제법 오래된 한옥들이 10여채 있다고 하는데, 정작 마을길에서 만나는 고옥은 손으로 셀 정도다. 대부분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들이어서 연륜은 그다지 깊지 않아서 오래 묵은 느낌은 적은 편이지만 안채에 따로 담장이 없고 마당이 넓으며 대부분 텃밭이 있어서 한눈에도 개방적인 느낌이 든다.
고재선(전라남도 민속자료 5호), 고정주, 고주환가옥(민속자료 47호)이 가장 눈길을 끌고 또 한군데는 남도민박집으로 이용하는 한옥 집과 식당으로 이용되는 갑을원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고씨 집성촌. 이곳의 지킴이는 따로 없다. 대부분 종부들이 지키는 반가 집하고는 조금은 다르다. 장흥고씨, 혹은 창평고씨라고 하는데, 그 성씨 본은 정확히 모르겠다.
이곳에서 만난 문화 해설사는 “의병활동의 대장이었던 고경명 의병장”의 후손들의 집성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고경명이 의병장이 될 때는 60살 때. 이미 그의 슬하에는 자식이 있었고, 데릴사위 식으로 이 마을로 장가를 왔다는 것이다. 긴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아주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돼서 집을 지키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고재선 가옥만 제대로 문을 열었고, 연결된 다른 한 채는 남도 민박집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저 문화재를 감상한다면 이 정도이고, 눈여겨 봐야 할 것을 굳이 추천해준다면 흙벽 돌담길인데, 고주선 가옥 바로 옆에 있는, 보성쌀엿이라는 간판이 달린 그 골목이 가장 눈길을 끈다. 고옥보다는 슬라브집, 그리고 일제의 잔재를 느낄 수 있는 일본식 건물이 있지만, 담쟁이 넝쿨이 뒤덮힌 좁은 담장길은 어릴적 추억을 뭉게구름처럼 떠오르게 하는 묘미가 있다.
그리고 이 마을의 특징이라면 쌀엿인데, 아직도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집들이 제법 많다. 사실 엿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은데다, 그 작업을 보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집집마다 만드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인데, 대부분 새벽이나 저녁 늦게 엿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연찮게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한집을 기웃거리게 됐고 그곳에서 거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80이 넘어간다는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인상 좋아 보이는 할머니는 이야기도 술술 잘한다.
“20살도 안돼 시집을 왔당께. 친정엄마가 몸이 불편해서 시집 가서도 집안일 도우라고 이웃집으로 시집 보냈어. 처음에는 얼굴도 보기 싫더랑께” 그렇게 말하면서도 곱게 늙어간 할아버지 얼굴을 흘깃거리며 쳐다본다. 아직도 눈치를 보는 것일까?
“몇 십년간 엿을 만들었제. 처음에는 바로 아랫집에 엿 만드는 노인이 살았어. 노인은 아들하고 엿을 만들었는데, 그 집에 가서 쐐기(엿 늘리는 것)를 도와주었는데, 첨부터 내가 솜씨가 있는 거야. 그러면 우리 꼬맹이들이 엿 한 점이라도 멕일 수 있응께, 가서 도와줬지. 눈치보잉께 몇 개 쥐어주고, 엿 만들고 남은 엿 뭉치를 갖다 주곤 했지. 그러다가 내가 직접 하게 되었지. 장사 잘 됐어. 예약이 밀려 드는 거야. 지금은 관절도 안좋고 몸 안좋아 접어 버렸지”
그러면서 집 한켠으로 데려 가면서 커다란 무쇠솥 걸린 부엌을 보여준다. 장작불 지펴서 조청을 만들고 그 조청을 화롯불에 녹이면서 두 사람이 여러 차례 늘리는 작업을 하게 되면 갈색 조청은 하얀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특히 엿을 잘 늘려야 구멍이 생겨 바스락 거리기 때문에 바람이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문을 꽁꽁 닫아 걸고 작업해야 하는 것. 엿가락을 늘리면서 생강과 깨를 넣어 맛을 더해낸다. 이 창평 엿은 인근 광주사람들에게 소문이 번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약이 밀려 들었다는 것이다.
“며느리가 안하려고 해” 그러면 딸한테 전수하지 그랬어요, 했더니 딸도 마찬가지란다. 그 번거로운 수작업의 댓가를 받기에는 어려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대를 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북하게 먼지가 쌓여 버린, 임자 잃어 버린 커다란 무쇠솥이 아쉽기만 하다. 특별히 볼 것 없지만, ‘느릿하게 걸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행’이라는 테마로 반나절정도 돌아보면 괜찮을 듯하다.

■이신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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