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년 4대를 이어온 ‘옹기장이’고집
충남 예산에서 4대 150여년에 걸쳐 전통 옹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전통예산옹기’.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들에게까지 옹기의 혼을 이어나가려는 대를 이은 물레질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전통예산옹기 황충길 대표는 우리나라 유일의 옹기명장이다. 열일곱살 때 점토를 처음 만져봤다는 황 대표는 40년이 지난 1998년에 도자기공예부문에서 국내 최초 그리고 유일한 ‘옹기명장’이 됐다.
황 대표는 1958년 재래식 가마에 불을 때다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 아버지 황동월(당시 57세)씨를 발견하게 된다. 옹기장이였던 황 대표의 할아버지 춘백씨 밑에서 평생 옹기 만들기만 전념했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때 가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붙잡고 울면서 그는 다시는 옹기를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지긋지긋한 가난, 하루도 편할 날 없는 팔과 다리, 그리고 주변의 천대를 알았기 때문이다.
황 대표 가족의 옹기장이 역사는 1860년대 황 대표의 할아버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아버지 춘백씨는 그 당시 국가적 반역이었던 천주교 신자. 그런 이유로 할아버지가 박해를 피해 충북 영동 고향을 떠난 후 옹기 만들기는 황 대표의 아버지 황동월 씨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고.
황 대표는 “옹기는 만드는 아버지를 보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도 못 벌고 지긋지긋했다”면서 “손재주도 없는 지라 옹기장이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 황 대표가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는데 갑자기 몸이 아파 2년을 누워 지냈다. 겨우 몸을 추슬러 새로운 일을 모색하려는데 이번에는 어머님이 몸져누우시고 또 몇 년을 지극 정성 병수발을 들고 나니 그의 아내가 아프고 다시 아내가 병석에 일어났는데 얼 마 안 돼 태어난 아들이 아프더란다.
“그동안 병원비니 약값이니 뭐로 댔겠어? 배운 것도 재주도 없는데 옹기 만들어 생활했지. 그렇게 몇 년 보내다 보니 그냥 옹기장이로 눌러 앉을 수밖에…”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게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황 대표는 회고한다.
마땅한 작업장도 없는 궁핍한 상황에서 부지런히 옹기를 만들고 팔아 모은 돈으로 지금의 자리에 허름한 함석지붕 공장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그때가 1980년.
옹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3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었다는 황 대표는 입이 부르트고 발에 물집이 생기도록 서울을 헤집고 다녔고 거리에 모든 불이 꺼질 때까지 시장과 상점을 돌았다. 이런 황 대표의 노력에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옹기를 사겠다는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 대표는 1996년 11월11일 냉장고용 김칫독을 내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그 상을 받고서야 옹기 만드는 일이 천직이란 것도 깨달았다. 평생을 옹기에 받치려는 결심을 그제야 할 수 있었다고 황 대표는 말한다.
황 대표는 “도자기와 달리 숨구멍이 많은 옹기는 보존성이 뛰어나 겨울에 담근 김장김치도 이 옹기에 담아 땅에 묻으면 다음해 여름까지도 갓 담근 싱싱함을 즐길 수 있다”면서 “일반 소비자도 옹기의 장점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에 냉장고용 김칫독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국내 최초 냉장고용 김칫독은 국무총리상 수상 이후 더욱 탄력을 받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현재도 홈쇼핑은 물론이고 서울의 웬만한 유명백화점에서는 전통예산옹기 김칫독을 만날 수 있다.
국무총리상을 받을 당시 그의 나이 54세. 황 대표는 “누군가 이 옹기공장을 물려받아 전통을 이어야 할 텐데”하는 고민에 빠졌다.
“내가 젊을 때 옹기 만들며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우리 자식들한테만큼은 옹기기술 같은 거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
황 대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가기 전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을 옹기공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옹기 냄새도 맡게 하고 싶지 않은 절박함이 수년간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했다.
“그런데, 결국 막내아들이 내 뒤를 잇더구먼. 이것도 아마 하늘이 미리 점지 해둔 필연이라는 것이겠지.”
전통예산옹기의 4대 주인장은 황 대표의 막내아들 황진영 과장이다. 황 과장은 물론이고 도예과를 나온 그의 아내도 예산전통옹기의 대를 잇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자기는 학문적으로도 연구된 것이 많은데 옹기는 그렇지가 못해요. 체계화된 데이터가 없는, 구전되는 기술들이 전부거든요. 그래서 가업이 잘 맞는 지도 모를 일이지만요.”
황 과장은 갖가지 뛰어난 기능을 가진 옹기에 대한 학문적 체계화와 더불어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대중적으로 옹기를 알리고 그 명맥을 잇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남들은 대를 이어 기특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 말하는데 보기만 해도 아까울 만큼 가치가 있는 옹기를 알게 되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겁니다.”
옹기의 저변 확대를 위한 대중화는 물론이고 옹기도 도자기처럼 가보로서 소장가치를 갖는 명품옹기 만들기라는 두가지 큰 꿈이 4대 황 과장의 포부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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